[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69] 일본판 솔로몬의 지혜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2024. 4.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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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1717년부터 1736년까지 무려 19년 동안 에도 마치부교(町奉行·현대의 도쿄도지사에 해당)를 지냈던 오오카 다다스케(大岡忠相)는 수많은 개혁을 주도하고 선정을 펼친 ‘행정의 달인’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에도 주민들의 애정이 얼마나 컸던지 그의 인물됨과 치적을 친근하게 묘사한 ‘오오카정담(大岡政談)’이라는 대중물이 창작되어 인기를 모을 정도였다.

서민용 오락인 라쿠고(落語·만담과 유사한 전통 화술 예능)에 전승되는 오오카정담에는 ‘삼방일량손(三方一兩損)’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A가 거금 석 냥이 들어있는 지갑을 주우면서 시작된다. 지갑 속 쪽지로 B가 주인임을 안 A는 돈을 B에게 돌려주려 했다. B는 이미 자기 품을 벗어난 돈이기에 이제 그 돈 임자는 A라고 손사래를 쳤다. A는 남의 돈을 자기가 가질 이유가 없다고 펄쩍 뛰면서 둘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분쟁 해결을 의뢰받은 오오카는 자기 지갑에서 한 냥을 꺼내 석 냥을 넉 냥으로 만들고는 A와 B에게 두 냥씩 나눠주었다. B는 잃어버린 석 냥 중에서 두 냥을 되찾았으니 한 냥을 손해 보고, A는 다 가질 수도 있었던 석 냥이 아니라 두 냥을 얻었으니 한 냥을 손해 보고, 오오카는 자기 주머니에서 한 냥이 나갔으니 한 냥을 손해 보는 것으로 분쟁이 해결되었다는 것이 ‘삼방일량손’의 줄거리다.

물론 이는 사실(史實)이 아닌 창작 허구다. 설정한 상황이나 계산법도 비현실적이다. 다만 행간의 핵심은 분쟁이 발생했을 때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해법을 오오카가 꿰뚫어 보았다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주장만 고집하면 갈등은 풀기 어렵다. 조금씩 양보하면 전체의 조화와 신뢰 증진을 통해 모두가 득을 보는 ‘손즉득(損卽得)’의 이치가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러한 이치를 성심(誠心)으로 설득하고 실행하는 것이 유능한 행정의 덕목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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