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소통왕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박강현 기자 2024. 4.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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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차전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경기에서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뉴스1

불통(不通)이란 딱지. 가혹하다. “저 사람 불통이야.” 이 한마디에 그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같은 한국말을 쓸지언정, 순식간에 외국인마냥 어렵고 낯선 상대로 전락한다. 벽이 생기고, 오해가 뿌리내린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상책인 존재가 된다. 보이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이런 말 많은 세상에서, 불통이라는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스포츠에서 불통 딱지가 붙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상이 지휘봉을 쥔 감독들이다. 선수단 라인업·전술, 훈련 내용·분위기 등 한 팀에 관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처음엔 ‘소신’으로 보일지라도 성과가 안 나면 ‘불통 리더십’ ‘독불장군’이란 냉혹한 잣대가 가해지기 시작한다. 근데 이때 소통하려면 이미 늦었다. 불통 감독이 되는 순간, 선수들도 움츠러들고 남모르게 반기를 든다. 감독들도 불통 이미지를 가장 경계한다. “결국 경기는 선수들이 하잖아요.”

사실 요즈음 스포츠계에서 ‘불통 감독’은 많지 않다.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스포츠계에서 고안한 방지 대책은 무엇일까. 바로 ‘소통 정례화’이다. 야구·배구·핸드볼 등에선 경기 전후로 감독들이 취재진들과 의무적으로 만나야 한다. 좋은 얘기만 하다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도, 경기에서 져도 봐야 한다. 약속이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솔직하게 심정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불통이라 하긴 쉽지 않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는데, 제가 부족했습니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이었네요. 다음 경기에선 어떻게든 되게 해야죠.”

각 구단은 ‘감독과의 대화’ 같은 프로그램도 상시 운영한다. 운동에 관한 진지한 고민부터 인생에 대한 ‘아무 말 대잔치’ 등 모든 주제를 아우른다. 누가 올까 싶지만, 막상 하니 수요가 상당하다고 한다. 올해 여자배구 현대건설의 통합 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끈 강성형 감독은 “선수들과 또래인 딸에게 수시로 ‘눈높이’ 조언을 구한다. 경기 외적인 부분은 딸이 전문가라 생각하고 모시는 중”이라고 했다. 선수들도 “감독님이 이름을 부르며 내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셨을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귀를 열고 행동으로 옮기면 변화는 시작된다.

불통 이미지를 타파하고 벽을 뚫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래도 통하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자.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느니’와 같은 자존심 싸움은 필요 없다. 그런 것에서 우위를 느끼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나. 당장 대화가 어렵다면 통화도 괜찮다. 할 말만 하는 것이 아닌 상대 이름을 부르고, 귀를 연 채로. 단숨에 소통왕으로 가는 길은 없다. 일단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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