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일상 그 너머] 2. 강릉살이에 스며든 길고양이 식구들

심상복 2024. 4.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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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 집에서 잇는 묘한 인연… 마음 어루만지는 위안
잘 들이대는 ‘이대’ 하얀 ‘설기’
이사 온 다음날 찾아온 손님들
집 앞 마당 내어주고 지극정성
길양이 돌봄 본업 ‘캣츠 테레사’
100여 마리 구조해 쉼터 마련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바람도

쭈그리고 앉아 한참 정원 손질을 하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유유히 공중을 배회하다 갑자기 수직 낙하한다. 적의 출현을 뒤늦게 인지한 직박구리가 우리집 쪽으로 도망치다 그만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떨어진다. 지근거리에 있던 ‘이대’가 바로 튀어가 그걸 물고 제집으로 끌고 들어간다. 한참 뒤 이대가 나온 집안을 들여다보니 깃털과 뼈만 남아 있었다. 야성이라곤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대는 올 초 우리집에 온 길고양이다.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녀석은 눈병이 걸린 데다 영양실조도 심해 보였다. 나를 보자 도망가기는커녕 마구 들이댔다. 배고파 죽겠으니 먹을 걸 달라는 거였다. 생후 세 달쯤 되었을까, 녀석은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아무에게나 잘 들이댄다고 해서 이름을 이대로 지어주었다. 석 달이 지난 지금은 살이 토실토실 쪘다. 캣맘 처제가 준 약을 먹였더니 눈병도 다 나았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산벚꽃이 하염없이 날리는 계절이다.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잡겠다며 폴짝폴짝 뛰는 이대를 보노라면 꼭 재롱잔치를 펼치는 것 같다.

지난 3년간 우리집을 거쳐 간 길냥이는 서른 마리쯤 되는데 그중 이대는 가장 친화적인 녀석이다. 지금은 완전히 우리집 붙박이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개가 싫었다. 무섭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게다. 그때 시골에서는 목줄도 없이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족보 따윈 없었지만, 집 지키는 덴 선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마을에 잔심부름을 보내곤 했는데 문제는 개였다. 녀석들은 멀리서 인기척만 나도 짖어댔고, 가까이 가면 달려들기도 했다. 줄행랑을 치다 몇 번 물린 적도 있다. 그런 기억은 커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집 짓고 고향 간다고 들었는데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같은 귀족견 한 마리 키워봐요. 사진으로 본 집과 잘 어울릴 것 같던데”

강릉으로 이주한다고 하자 이렇게 권하는 지인이 있었다. 주위의 다른 이들도 한적한 전원에선 개가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내 귓등을 타고 그냥 흘러가 버렸다. 이사 온 바로 다음 날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았다. 길냥이였다. 제일 먼저 만난 녀석은 털이 백설기처럼 하얘 설기란 이름을 지어줬다. 설기는 처음엔 눈치를 보았으나 곧 제집마냥 편하게 드나들었다. 친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나는 온라인으로 고양이 먹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대낮에 사달이 벌어졌다. 처음 보는 험상궂은 녀석이 나타나 데크에서 놀던 친구들을 완력으로 다 쫓아 버렸다. 저항하는 놈은 사정없이 물어뜯어 여기저기 털이 날렸다. 다음날 설기가 아장아장 걷는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한 시간쯤 뒤 험상궂은 그 녀석이 웅자를 뽐내며 나타나 주위를 스윽 둘러보더니 사라졌다. 녀석은 그 뒤에도 가끔 나타나 별일 없는지 살피곤 했다. 고양이 전문가에게 물어봤더니 험상궂은 녀석이 아빠고, 엄마와 새끼들에게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 주기 위해 다른 냥이들을 다 쫓아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세상의 수컷들은 비슷한 임무를 띠고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우리에겐 가깝게 지내는 두 집이 있다. 이름하여 이웃집, 사촌집이다. 가까이 사는 이웃집 커플은 도시생활을 하다 6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에 정착했다.

예전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는데 지금은 진정한 캣맘이 되었다. 치와와보다 큰 길냥이 열 다섯 마리를 정성 들여 건사하고 있다. 냥이 발톱에 종아리를 긁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그녀의 냥이 사랑은 변함없다. 몇 달 전에는 한 마리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부부는 정성껏 간호했지만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강릉에는 마땅한 병원이 없어 서울로 데려갔다.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보험통장을 깼다. 지인인 수의사로부터 아무리 냥이를 사랑한다 해도 이런 식으로 모든 고양이를 돌볼 수는 없다는 충고를 듣고 울면서 수술은 포기했다. 병원에서 필요한 처치만 하고 돌아왔는데 다행히 지금은 거의 정상이 되었다. 사촌 처제네인 사촌집은 서울에서 잘 나가는 마카롱 가게를 하다 어느날 휭하니 강릉 바닷가로 내려왔다. 이들도 가게 앞마당을 길냥이 놀이터로 내주고 밥과 간식은 물론 아프면 약도 먹이고 병원에도 데려간다. 언젠가 전염병인 ‘범백’이 번져 새끼냥이들을 다 잃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거리의 고양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

길냥이 돌봄이 거의 본업이 된 이들도 있다. 식당을 하는 분인데 2015년 ‘바다’라는 아이를 처음 만나면서 냥이 집사가 되었다고 한다.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조해 쉼터를 제공하는데 지금은 100마리도 넘는다. 6년 전 냥이들을 위한 별도 집을 마련해 지금은 ‘바다를 사랑한 용감한 고양이네’라는 간판까지 달고 있다. 캣타워는 물론 온갖 놀이시설이 구비돼 있다. 주위에서는 그녀를 ‘캣츠테레사’라고 부른다. 그녀는 고양이를 사지 말고 여기서 입양해 가길 원한다. 또 다른 구조묘 입양카페인 쓰담쓰담도 고양이 사랑이 지극정성이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개가 역시 주종을 이루고 고양이는 15%쯤 된다고 한다. 식집사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식물을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도 많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외롭기도 하고, 어디선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로봇과 같은 기계를 벗 삼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사람만이 위안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상처도 받지만 그걸 어루만져 낫게 해주는 이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젠 이 말의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일까.

컬쳐랩 심상 대표simba363@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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