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영의 정상에서 쓴 편지] 13. 낙동정맥 2- 백병산·구랄산: 겨울과 봄 사이, 밤과 아침 사이

장보영 2024. 4.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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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겨울 아쉬워 잔설 품은 춘산, 눈 못 뜬 꽃들이 반기네
다시 찾은 태백서 낙동정맥 종주 재개
늦은 겨울 간직한 백병산·구랄산 등반
조급함 없는 봄꽃, 제 속도로 개화 준비
부지런한 종주꾼 거친수풀 산길 닦아놔
방향 잃지 않고 숙박지 토산령 도착
하룻밤 사이 오묘한 생명의 기운 느껴
손난로 꼭 쥔 침낭 ‘나만의 우주’ 완성
▲ 거친 수풀을 헤매며 길을 찾는다. 초록의 바다 위에서 노를 젓는 모습이다.

지난밤은 태백 통리역 앞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습니다. 평일이라 손님이 우리뿐이더군요. 덕분에 호사를 누렸습니다. 산행을 하루 앞둔 밤이면 배낭을 싸고 풀며 이리저리 부산하기 마련인데 낯선 사람이 옆에 있으면 미안하잖아요. 침구에서 풍기는 세제 냄새가 좋았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해 숙소 주인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행 나온 기분을 만끽하며 둘러앉아 맥주 한 캔씩 마셨습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습니다.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통리(桶里)는 백두대간의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680m의 태백 산간 마을입니다. 산 가운데 길게 형성된 골짜기가 마치 여물통처럼 생겨서 통리가 됐다는 설도 있고, 오래전 이 마을에 통나무가 많아 통리가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지금은 통동(桶洞)으로 개칭됐으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흔하게 통리라고 부릅니다.

한때 영동선의 철도역이었던 통리역은 2007년 12월 31일부로 폐역이 됐습니다. 현재는 통리역에 철도 유휴부지 활용 관광 자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오로라파크’가 조성됐는데 이곳 역시 평일인 까닭에 한산합니다.

이번 달 낙동정맥 종주는 통리에서 시작합니다. 지난달 종주를 통리에서 끝냈으니 여기서부터 다시 여정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삼수령에서 출발해 매봉산 정상을 기점으로 낙동정맥에 오른 우리는 구봉산과 우보산을 지나 느티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정오경 통리로 하산했습니다. 12㎞ 남짓한 길이었는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이라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설원의 느티재에서 보낸 낭만의 겨울밤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눈 내리는 소리에 잠 깨기를 몇 차례 반복하니 아침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태백은 얼어붙어 있었던 모든 것을 녹이고 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설경은 마치 꿈에서나 본 것 같습니다. 오전 9시쯤 유유히 통리를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가로지른 뒤 다시 낙동정맥 위에 오릅니다.

초입부터 땅이 코에 닿을 듯한 된비알을 오릅니다. 이어지는 산길 또한 여전히 거칠고 험하고 친절하지 않습니다. 지난달의 고생이 선연하게 되살아납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태백은 1970년대 탄광개발과 함께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고장입니다.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졌지요. 가난한 자에게 태백은 황금의 땅이었고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높아지며 석탄산업은 사양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즐비하던 탄광이 우후죽순으로 문을 닫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습니다.

1980년대 말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태백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었고 지역 경제도 덩달아 낙후됐지요. 88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 탄광 기업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탄광인 장성광업소마저 올해 6월 말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실직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빠져나가면 태백은 지금보다 더 쓸쓸해질 것입니다. 그 많던 탄광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그 많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걷다 보니 백병산 삼거리입니다. 낙동정맥은 백병산을 우회해서 이어지지만 정상을 400m 앞두고 모르는 척 지나쳐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치 정상이 우리를 두고 자신에 대한 정성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삼거리에 마련된 쉼터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백병산 정상까지 잠시 다녀옵니다. 정상은 기대대로 조망도 없고 별 볼 일 없습니다. 하지만 정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므로 사진을 남긴 뒤 다시 삼거리로 돌아옵니다. 이왕 후회한다면 안 하고 후회하는 쪽보다 하고 후회하는 쪽이 더 낫습니다.

한동안은 조릿대가 허리까지 자란 수풀 사이를 걷습니다. 겨우내 부지런한 종주꾼들이 산길을 닦아놓은 덕분에 크게 방향을 잃지 않고 앞으로 진행합니다. 산그늘이 깊은 북면에는 아직 잔설이 그득히 남아 있기도 합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봄꽃이 곳곳에서 눈을 뜰 준비를 합니다. 남쪽 산은 일찍이 개화해 이 무렵이면 어디를 가도 꽃 반 사람 반인데 북쪽 산은 우리 외에 인기척 하나 없습니다. 이 산에서는 우리가 꽃입니다. 도리어 반대편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서로가 화들짝 놀랄 것이 분명합니다.

오후 4시 무렵 토끼 고개인 토산령에 도착합니다.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이 남았기에 산행을 더 이을 수도 있었으나 오늘 일정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산에서 좀 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산에 내가 누울 자리를 만들고 누워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내 노을이 지고 어둠이 스며드는 순간을 오래 붙잡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빠르게 달려 내려온 산이었습니다. 쫓아오는 것도 없었고 쫓아가야 할 것도 없었는데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습니다.

이르게 저녁을 먹고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잠을 청합니다. 준비한 핫팩을 패딩 안주머니 깊숙이 찔러넣고 침낭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내 온건한 우주가 완성됩니다. 당분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우주가. 그렇게 얼굴만 빼고 굼벵이처럼 누워 있는데 왠지 내가 이 시간을 아주 오래 기다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봄입니다. 저에게 이제 봄이란 산의 밤이 더는 춥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저 겨울과 봄 사이, 밤과 아침 사이를 산에서 보냈을 뿐인데 무언가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튿날 새벽부터 는개비가 흩날렸지만 이마저도 산뜻합니다. 산속의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생명의 오묘한 기운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구랄산으로 향합니다. 구랄산은 본디 ‘굴알산’이었습니다. 이 지역에 굴이 많아 붙은 이름인데 탄광 지대답게 곳곳에 까만 석회암이 유리조각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구랄산 너머는 면산인데 왠지 이정표가 나올 때마다 안개 때문인지 자꾸 ‘먼 산’으로 보입니다. 먼 산을 보며 긴 실을 꿰듯 한줄기 산길을 엮어 정오경 석개재에 이릅니다. 여기서부터는 경북 봉화 땅입니다. 작가·에디터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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