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신청에 사망 1년4개월 만에 산재 승인 직속 부장 폭언·압박·차별적 업무지시 증거 제출 "언론계 부조리한 조직문화·근무형태 개선돼야"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2022년 뉴시스 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뉴시스지부는 뉴시스 기자였던 고 A씨의 유가족이 지난 3월28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로부터 산업재해 승인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고인이 2022년 12월12일 숨진 지 1년 4개월여만이다.
12년차 뉴시스 기자였던 A씨는 지난 2022년 12월12일 국제부에 발령된 지 7개월 만에 숨졌다. 당시 A 기자가 직속 상사인 B 국제부장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했다는 고발이 나왔고 사내에 신고가 접수됐다. 뉴시스 측은 노무법인에 의뢰해 B 부장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자 2명의 피해를 확인했으나, 고 A 기자에 대해선 당사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지 않았다.
뉴시스 측은 '피해 구성원과 이를 지켜본 구성원'에게 사과했으나, 같은 시기 B 부장의 인사위원회를 소집한 상황에서 그의 사표를 수리해 '가해자 온정주의'라는 비판이 일었다. 사측은 비밀유지 협약을 이유로 유족에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유가족은 A 기자의 생전 업무 기록과 메신저 대화, 언론계 동료들의 증언 등을 수집해 지난해 8월22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유가족은 B 당시 부장의 폭언 등 언어적 괴롭힘, 공개적 모욕, 차별적 업무형태 강요, 무리한 업무 지시와 과도한 근로시간 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긴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제출된 자료엔 고인 사망 2주 전, B 부장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고인을 특정해 우크라이나 국가원수 젤렌스키 내외 인터뷰 추진을 지시하고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 현실성 없는 업무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뉴시스가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체제를 가동하던 당시 B 부장이 고인을 장기간 재택근무에서 제외했다는 복수 증언도 담겼다. 당시 부서 신규 발령자들도 업무 적응차 한 달간 내근하다 재택근무를 했지만 고인은 B 부장 지시로 12월 초까지 7개월가량 B 부장과 같은 공간에서 내근했다는 것이다.
A 기자의 유족은 “산재 신청을 위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언론계에 군대나 검찰같은 조직문화가 있다고 느꼈다”며 “A 기자의 죽음과 산재 인정이 앞으로 언론계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특히 사내 부조리와 불합리한 근무 형태 개선을 돕는 자료로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광원 전국언론노동조합 뉴시스지부장은 A 기자의 산재 인정에 대해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부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해 사규 내 관련 조항 강화와 직원 심리상담 지원사업 등 조치를 회사에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직장 내 괴롭힘을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과 함께, 고인이 고통을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했던 상황에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도 돌아보려 한다. 동료의 안위를 서로 돌보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근로복지공단에 자살 산재 신청은 97건이 접수됐으며, 이중 업무상질병 판정서가 확보된 85명 가운데 30%(25명)의 사망 배경에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
뉴시스 전무는 25일 통화에서 “근로복지공단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결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B 부서장은 같은 날 통화에서 산재 승인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게 전화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한 뒤 “(산재 인정은) 모르는 내용이니 회사와 얘기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이후 전화와 메시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