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말을 걱정하는 친구

2024. 4. 25. 23:4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유난히 말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다.

하나 교무실에 다녀온 그는 그냥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새 땅의 발견'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교과서와 선생님이 말을 이상하게 쓰니 참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모르거나 이상한 말이 나오면 그걸 파고들곤 했다.

그런데 그가 말에 더 꽂히는 일이 생겼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말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다. 그가 그러기 시작한 계기를 안다. 고등학생 때 역사 시간에 한 질문 때문이었다. ‘지리상의 발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가 손을 들었다. “그때 다른 발견도 있었나요? 왜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합니까?”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따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호랑이 선생의 진도를 방해했으니 큰일 났다고 다들 떠들었다. 하나 교무실에 다녀온 그는 그냥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새 땅의 발견’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교과서와 선생님이 말을 이상하게 쓰니 참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날부터 그는 포르투갈에 대해 공부했다. 크지 않은 나라가 그 역사적인 발견에 앞장선 게 놀라서 그런다고 했다. 성적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공부였다.

그는 모르거나 이상한 말이 나오면 그걸 파고들곤 했다. 대화를 하다가도 별안간 그러니 핀잔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말에 더 꽂히는 일이 생겼다.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는데, ‘말로 정책을 바꿉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나눠 주며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 노인이 말하기를, ‘식량’은 알곡식만 가리키니까 사람이 먹는 것 전체를 다루려면 ‘먹거리’라는 말이 필요하다, 정부가 감자, 고사리 따위까지 포함한 먹을 것 정책을 바로 세우도록, 이 용어를 쓰자고 청원하는 운동을 벌인다고 했다. 내가 얼른 이해가 안 되어 멀뚱거리고 있자 그는 말을 만들고 바로잡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면서 흥분했다.

그러나 그는 반갑기보다 분통 터지는 일들과 계속 부대끼다 지쳐 가는 것 같았다. 신문과 방송이 날마다 ‘아이엠에프 사태’를 떠들던 무렵에 그와 만났는데, 파리한 얼굴로 정말 나라 창피한 일이라며 분개했다. ‘IMF가 무슨 잘못이냐, 구제금융으로 우리를 도와준 곳을 이 난리의 주범인 듯이 말하고 있으니, 도대체 얼마나 무지하고 비겁하냐’는 것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언론이 그 사건을 ‘구제금융 사태’라 고쳐 부르고 ‘먹거리’라는 말도 사전에 올랐다. 말글을 함부로 쓰는 이가 많아짐을 느낄 적마다 그가 생각난다. 질문에 답해 주는 인공지능(AI)이 출현했을 때, 이제 대답은 고사하고 질문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는 그의 걱정 소리가 들리는 성싶었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