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말을 걱정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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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말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다.
하나 교무실에 다녀온 그는 그냥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새 땅의 발견'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교과서와 선생님이 말을 이상하게 쓰니 참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모르거나 이상한 말이 나오면 그걸 파고들곤 했다.
그런데 그가 말에 더 꽂히는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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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르거나 이상한 말이 나오면 그걸 파고들곤 했다. 대화를 하다가도 별안간 그러니 핀잔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말에 더 꽂히는 일이 생겼다.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는데, ‘말로 정책을 바꿉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나눠 주며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 노인이 말하기를, ‘식량’은 알곡식만 가리키니까 사람이 먹는 것 전체를 다루려면 ‘먹거리’라는 말이 필요하다, 정부가 감자, 고사리 따위까지 포함한 먹을 것 정책을 바로 세우도록, 이 용어를 쓰자고 청원하는 운동을 벌인다고 했다. 내가 얼른 이해가 안 되어 멀뚱거리고 있자 그는 말을 만들고 바로잡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면서 흥분했다.
그러나 그는 반갑기보다 분통 터지는 일들과 계속 부대끼다 지쳐 가는 것 같았다. 신문과 방송이 날마다 ‘아이엠에프 사태’를 떠들던 무렵에 그와 만났는데, 파리한 얼굴로 정말 나라 창피한 일이라며 분개했다. ‘IMF가 무슨 잘못이냐, 구제금융으로 우리를 도와준 곳을 이 난리의 주범인 듯이 말하고 있으니, 도대체 얼마나 무지하고 비겁하냐’는 것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언론이 그 사건을 ‘구제금융 사태’라 고쳐 부르고 ‘먹거리’라는 말도 사전에 올랐다. 말글을 함부로 쓰는 이가 많아짐을 느낄 적마다 그가 생각난다. 질문에 답해 주는 인공지능(AI)이 출현했을 때, 이제 대답은 고사하고 질문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는 그의 걱정 소리가 들리는 성싶었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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