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INSIGHT]무리수로 국력 소진시킨 왕, 인조
하지만 이 시기 인조는 세자 책봉과 강빈의 옥사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1645년(인조 23년) 4월 26일 인조의 적장자 소현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청나라에서 오랜 인질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인조실록’에 보면 소현세자는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서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소현세자가 죽은 뒤에 벌어졌다. 인조가 원칙을 무시하고 원손 적장손 석철이 아니라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후계자로 삼고 며느리 강빈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것이다. 조정은 혼란에 빠졌고 봉림대군, 훗날 효종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져야 했다.
사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있을 때부터 그를 견제했다. 청나라 황실과 밀접해진 소현세자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청나라와의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사재를 털어 포로 쇄환에 힘쓴 일도 애써 무시하거나 질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현세자가 사망하자 인조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겠다고 나섰다. 왕위 승계의 기준이 되는 종법(宗法)에 따르면 적장자가 죽으면 적장손이 후계를 승계해야 한다. 인조가 이를 무시하자 논의에 참여한 16명의 대신 중 영의정 김류와 낙흥 부원군 김자점, 병조판서 구인후를 제외한 모든 대신이 반대했다. 인조는 세조 때 맏아들 의경세자가 죽자 적장손 월산대군이 아닌 둘째 아들 예종을 세자로 삼은 일을 거론하며 뜻을 관철한다. 결국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됐는데 훗날 ‘체이부정(體而不正)’, 즉 왕위를 이었으나 종법상 정당한 계승자가 아니라는 논란에 휩싸여 ‘예송논쟁’이 촉발된다. 예송논쟁으로 조선 조정이 낭비한 에너지를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인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을 역적으로 몰아 사사했다. 인조는 강빈이 자신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며 궁녀들을 국문했는데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행실로 봤을 때 강빈이 저지른 일이 틀림없다며 비망기를 내렸다. 신하들 대부분이 반대했고 일부는 칭병하며 조정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지만 인조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폐서인하되 죽음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타협안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인조 24년 3월 15일 강빈은 폐출된 뒤 사사된다. 강빈의 죽음과 함께 강빈의 친정어머니도 사사됐고 남자 형제들은 곤장을 맞아 죽었으며 이미 죽은 친정아버지 강석기는 부관참시됐다. 강빈과 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됐다. 집안이 멸절되다시피 한 것이다.
인조가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둔 것은 소현세자와 강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 강빈을 역적으로 몰아야 원손 석철이 갖고 있던 왕위 승계의 정통성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목적한 바를 이룬 셈이지만 그로 인해 조정은 1년이 넘도록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세자 책봉과 강빈을 사사하는 문제로 온 조정이 혼란에 휩쓸렸다. 인조는 재위 초기에도 아버지 정원군을 왕으로 추숭하는 문제로 조정의 에너지를 낭비하더니 후반기에는 절차에서 벗어난 세자 책봉과 강빈 옥사로 국정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에 대비할 시간을 빼앗아 버렸다.
※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90호(4월 1호) “병자호란 겪고도…국력 소진시킨 인조”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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