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불붙은 美대학가 `친팔 시위`, 베트남전 반대 운동 닮아가나
美 대선서 바이든에게 불리하게 작용
反유대주의 방치말라는 외부 압력 커
1968년 베트남전 반전시위 후 56년만
트럼프, 바이든 탓하면서 시위대비판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는 캠퍼스 내 텐트를 치고 건물을 점거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경찰은 무단침입 등의 혐의로 수백명을 체포했다. 백악관과 미 정치권은 격화되는 대학가의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심상치 않는 이번 시위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자전쟁 규탄, 전국 캠퍼스로 확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후 이어졌던 대학 내 반전 시위가 지난 18일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 시위를 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컬럼비아대의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기습적으로 '텐트 농성'에 돌입하면서 '행동하는 상아탑'의 최전선에 섰다. 전날 네마트 샤피크 총장이 하원에 나가 "반유대주의는 우리 학교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 맞서 학생들이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들 학생은 샤피크 총장실 근처 잔디밭에 천막 수십개를 설치하고 사실상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를 방치하지 말라는 의회 압박에 시달려온 샤피크 총장은 즉각 경찰을 부르는 초강수를 뒀다. 결국 100여명이 연행됐고 이는 학생들의 저항에 불을 당기는 도화선이 됐다. 이후 더 많은 텐트가 들어섰다. 현재 컬럼비아대는 전체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할 캠퍼스가 경찰에 짓밟혔다는 반발심에 다른 대학에서도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번져나갔다. 예일대, 뉴욕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시간대, 미네소타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 브라운대, 뉴멕시코대, 에머슨대 등 미 전역 캠퍼스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이스라엘은 학살을 중단하라"고 외치면서 대학 당국이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의 전쟁을 돕는 기업들과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이 낸 등록금을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경찰이 해산 작업에 나서면서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캠퍼스에 기마경찰과 곤봉이 등장했고, 다수의 학생들이 무단 침입과 난폭 행위로 체포되고 있다. 지난 22일 밤 경찰은 뉴욕대 인근에서 시위에 참여한 133명을 구금했다. 이들은 일단 치안방해 혐의로 법정 출두 소환장을 받고 풀려난 상태다. 같은 날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소재 예일대에서도 가자 전쟁 반대 시위를 벌인 학생 47명 등 총 6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예일대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연행한 건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예일대는 체포된 학생들에 대한 정학 등 징계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대학가 시위는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어떤 형태로든 시위가 학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거의 확실하다"면서 "5월 졸업식장이 긴장감이 감도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컬럼비아대, 56년만에 '반전 불씨' 재점화
미국 동부 명문대인 컬럼비아대가 가자 전쟁을 규탄하는 대학가 반전 운동에 불씨를 붙이면서 베트남전 이후 56년 만에 다시 '저항하는 젊은피'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번 시위에선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던 1968년 이래 가장 많은 컬럼비아대 학생이 체포됐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컬럼비아대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배치하라고 요구했다. 주 방위군 배치는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가 결정하게 된다.
컬럼비아대가 이처럼 반전 운동의 선봉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1968년 4월 대학측이 흑인 거주지 할렘 인근 공원에 체육관을 지으려는 것을 인종주의 문제로 간주해 학생들이 나섰다. 그 저변에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가 있었다. 학생 수백명이 캠퍼스 건물 5곳을 점거하고 베트남전과 인종차별 반대를 외쳤다. 당시 일주일 만에 경찰 수천명이 캠퍼스에 진입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700명을 체포했고, 이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학생과 경찰이 다쳤다. 이를 계기로 반전 운동은 크게 확산됐다. 1969년 8월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컬럼비아대는 유대인, 아랍인 재학생이 많은 대학 중 하나다. 중동 연구를 선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과 이중학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텔아비브 대학과의 학위 연계 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들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5월 졸업식 전에 시위를 끝내려는 압박을 받고 있다.
◇11월 대선에 미칠 파장, 바이든은 난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반년을 넘긴 가운데 이 전쟁에 반대하며 휴전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는 이제 팔레스타인 지지를 넘어 반유대주의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백악관은 물론 정치권도 그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부대변인은 지난 23일 기자들에게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 "물론 바이든 대통령도 시위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의 평화적 시위 권리를 지지하지만 폭력과 신체적 위협, 증오, 반유대주의 주장을 목도했을 때 이를 용납할 수 없으며 비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난감하다. 바이든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충성 유권자였던 아랍계·젊은 층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시위는 바이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우크라이나·가자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바이든으로서는 반전 여론이 대선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바이든과는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트럼프는 이번 시위를 바이든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표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대학가 시위를 '폭동'이라 부르며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미 대학가에서 자취를 감췄던 정치 시위가 다시 부활했다. 미국의 대학생들을 행동에 나서게 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이 과연 가자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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