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비서실장이 ‘내정자’ 꼬리표 달았던 까닭은 [여의도가 왜 그럴까]
‘겸직 금지’가 인사 고차방정식 이유 되기도
의원직 사퇴는 주로 대선·지방선거 출마 목적
대장동 50억 사건 논란 등으로 내려놓기도
정진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임명장을 받고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내정 발표를 한 지 이틀 만이다. 현직 국회의원(5선) 신분으로 발탁된 까닭에 사직서가 수리되기까지 잠시 동안 ‘내정자’ 신분이었던 셈이다.
국회법상 현직 의원은 △국무총리 △국무위원(각 부처 장관 등) △공익 목적 명예직 △다른 법률에서 의원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 △당직 등을 제외하면 다른 직을 맡을 수 없다. 윤석열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됐던 권영세 의원이 지난해 7월 장관직을 마치고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것과 달리 정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려면 의원직을 내려놔야만 했다.
이같은 겸직 문제는 대통령실 인사의 주요 고려사항 중 하나다. 윤 대통령 취임 전 장제원 의원 등이 초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됐으나, 결국 정통 관료 출신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발탁됐다. 국민의힘 소속 현역 의원을 대통령실로 불러들이면 가뜩이나 적은 여당 의석수가 더 줄어드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대로 겸직이 가능한데도 의원직을 사퇴한 경우가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그런 사례다.
두 사람은 비례대표 출신이라 의원직을 내려놓더라도 국민의힘 의석수가 줄어든다는 부담이 없었다. 비례 명부 후순위자가 의원직을 승계하기 때문이다. 신 장관은 지난해 10월 장관 임명 직후 “의정활동 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는 그달 말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신 장관의 비례대표직은 우신구 의원이 바로 승계했다.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정 실장은 22일 비서실장 발탁 발표 전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유로는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을 들었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거취는 동료 의원들이 표결로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앞서 신 장관 사직의 건은 본회의에서 이의 유무를 물어 처리됐다. 반면 지난 1월 정의당 이은주 의원(비례) 사직의 건은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까지 거친 끝에 의결됐다. 이 전 의원은 당내 경선 중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황이어서 논란이 됐다. 후순위 승계가 가능하도록 당선무효형이 나오기 전에 미리 사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직서는 표결에 참여한 264명 중 179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 76표, 기권 9표가 나왔다.
정 실장 사직서는 본회의로 넘어가지 않고 김 의장 결재로 대체됐다. 지금은 회기 중이 아니어서 국회법 135조 1항의 단서 조항(‘폐회 중에는 의장이 허가할 수 있다’)이 적용됐다. 정 실장 사직서 제출 당시 해외 순방 중이던 김 의장은 귀국 다음날인 23일 사직서를 수리했다.
국회에 따르면 현역 의원 사직은 다른 선거 출마 때문이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을 한 달 앞둔 2012년 11월23일 대구를 방문해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치를 처음 시작한 곳에서 배수의 진을 치면서 대선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준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직서에 “대통령 선거 출마의 사유”라고 적었다.
21대 국회에서는 이밖에 홍준표 대구시장,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등이 2022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포기했다.
윤희숙 전 의원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곽상도 전 의원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아들 퇴직금 50억원 수령’ 논란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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