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발소는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꽃비’[그림책]

이영경 기자 2024. 4. 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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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꽃비
스케노 아즈사 지음·유하나 옮김
곰세마리 | 32쪽 | 1만4500원

바닷가의 작은 마을, 아담한 집들 사이에 파란색 문을 단 이발소가 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이자 그림책의 화자인 ‘나’는 여름방학마다 이곳을 찾는다. 할아버지의 작은 이발소에서 나는 심심할 틈이 없다. 소란스러운 이발소는 신기하고 재미난 일 투성이다. 손님이 가고 나면 할아버지는 나의 머리카락도 싹둑싹둑 잘라준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남자 아이’ 같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과 귀끝을 스치는 가위소리가 좋기만 하다.

거실에서 간식을 나눠먹다 창밖으로 펼쳐진 맑은 하늘을 보면서 할머니가 문득 ‘꽃비’ 이야기를 한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과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이 꽃비 구경을 가자고 했어. 바다로 저무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반짝반짝 알알이 퍼지는 노을빛이 꽃비 같았거든.” 할머니는 “꽃비는 소중한 사람이 꽃이 되어 만나러 오는 거”라고 말해준다.

‘꽃비’ 이야기는 복선과 같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시골 이발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기울어진 바다 그림과 함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이발소는 문을 닫는다. 어느날 하늘에 가득한 작은 뭉게구름들을 보면서 할머니는 나를 이끌고 꽃비를 보러가자고 말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등대로 가기 위해 긴 언덕길과 계단을 오른다. 마침내 등대에 올라 해변을 바라보자, 저물던 해가 수면과 만나 “반짝반짝 알알이 퍼지는 노을빛”이 ‘꽃비’처럼 하늘 가득히 퍼진다. ‘소중한 사람이 꽃이 되어 만나러 온다’는 꽃비는 할머니와 나에게 건네는 할아버지의 안부이자, 소중한 이를 상실한 아픔을 삶 속으로 마침내 받아들이는 순간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와 같다.

다시 이발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성장한 나는 바닷가 이발소의 새로운 이발사가 되고, 할아버지가 이웃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꼬마 손님의 머리를 잘라주며 웃음을 선사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떠났지만 그들이 물려준 유산은 나에게로, 또 다른 이에게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그림체, 맑고 섬세한 수채화가 이야기에 서정성과 따스함을 더한다. 스케노 아즈사는 작은 이발소 바닥의 타일, 할머니집의 유리잔 무늬까지 세심하게 그려넣었다. 일본 오사카 남부 와카야마시의 항구 도시 사이카자키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오사카 지역에서는 지금도 바다에 저무는 노을의 빛이 흩날리는 꽃처럼 보이는 현상인 ‘꽃비(하나후리)’를 바라보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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