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폭발과 함께 상처입은 세월…서근숙 할머니의 기억

유용두,강재윤 2024. 4. 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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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4·3의 역사를 증언으로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서근숙 할머니는 1949년 당시 서귀국민학교에서 벌어진 폭발사고로 크게 다쳐 평생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야했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서근숙/4·3후유장애인 : "제주시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서귀포 소장으로 와서 온 식구가 여기로 와서 3년간 살게 됐어요. 8살 때니까 서귀초등학교 입학하고 1년 다녔는데. 겨울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개학했는데 개학하는 날 우리들은 집으로 가라고 했고요, 1학년 학생들은. 비가 막 왔어요. 언제면 비가 개서 집에 갈까, 어떻게 집에 갈까 하면서 교실을 나와서 교실 처마 밑에 서 있었거든요.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근데 갑자기 '팡'하는 소리가 나면서 정신을 잃었고."]

[서근숙/4·3후유장애인 : "어머니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그때 5학년 학생이 저를 업어서 병원으로 데려다줬다고요. 그날 다친 사람 중에서 제가 제일 중상자였고, 다친 학생들은 28명이 다쳤고, 또 그 이후에 5명이 죽었다고. (저는)배에 파편 구멍이 7개가 있었고, 다리 밑으로는 피범벅이 돼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그냥 다쳐 있었으니까. 의사 선생님이 완전히 이제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부모님이 저를 안고 집으로 가서 그날 밤에 죽으면 데려다 어디 가서 묻으려고. 어머니는 그냥 목숨만 붙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밤새 기도를 하셨다고 그래요. (나를 묻으러 왔던 인부가) 손을 등 뒤로 이렇게 넣어봐서 "아이고 이 애기 오늘 안 죽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렇게 하곤 친구분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럭저럭해서 그날 저녁을 숨이 안 끊어지고 넘겨서 살아난 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진 것 같습니다."]

[서근숙/4·3후유장애인 : "거의 병원에 매일 다니다시피 하면서 치료를 하고, 영양주사를 맞으면서. 피가 너무 빠졌기 때문에 너무 몸이 허약하고 해서 제대로 생활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한 1년 이상 학교를 못 가고 쉬었다가 2학년 말 돼서 전학하는 걸로 해서 제주국민학교에 2학년 후반기에 와서 등록하고. 학교 다니는 건 3학년 때부터 정상적으로. 제가 중학교 때지만 교복을 입어서 상처가 막 나 있는 걸 가릴 수가 없어서 치마를 입고 다니면 학생들이 "그 상처 뭐니?" 하고 물어봐도 저는 그냥 폭발사고로 이런 거라고 말하지 4·3이라는 걸 전혀 몰랐거든요. 결혼한 다음에야 주위에서 삼촌들이랑 말하는 거 듣고 좀 (4·3이라는 것을)알았고. 4·3 때 토벌대들이 여기 학교에 방학 동안 와서 주둔했다가 산으로 폭도 토벌하러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걸(폭탄) 두고 갔나봐요. (당시)5학년 학생들은 청소를 하다가 그것을 마당으로, 운동장 마당으로 던져버린 거예요.그래서 폭발사고가 났고 그때 그날 비가 와서 그때 희생자들 업고 부상자들 병원으로 업고 하는 바람에 솔동산 쪽에 병원이 있었는데 솔동산에는 피바다가 흘렀다고."]

[서근숙/4·3후유장애인 : "결혼하고 보니까 남편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려고 이력서를 들고 취직하려고 하니까 연좌제에 걸려가지고 취직을 못했어요. (남편)큰 형님이 4·3사건 때 돌아가셔서 그거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가지고 취직을 못 한다고. 그걸 보면서 4·3이 이렇게 무서운 거로구나 생각하면서. 제가 4·3희생자라는 걸 알면서 숨겨서 산 것 같아요."]

[서근숙/4·3후유장애인 : "저 혼자 희생자로 등록이 되니까 참 마음이 아파가지고 (당시 사망한)제 친구 춘강이를 찾아서 (등록하게)했지만. 다른 사람 5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누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서귀포에 4·3사건 나서 학생들이 다쳤다는 거를 지금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사고로 죽은 사람 학생들이라도 우리가 위로할 수 있는 비석이라도 세워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유용두 기자 (yyd9212@kbs.co.kr)

강재윤 기자 (jaey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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