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서 한국관 문 열던 날, 30년 전 그날의 궤적

김신성 2024. 4. 25. 2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 Years: Passages’ - 백남준, 곽훈, 김인겸 展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
개관 공로 큰 6명 중 3명 소환
강남 예화랑서 6월 8일까지 진행
백남준, 사진·판화 등 초기 작품 배치
곽훈, 정신성 등 표현한 ‘할라잇’ 선 봬
김인겸, 면 통해 입체 구현한 조각 눈길

올해는 1995년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건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현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관 건립은 당시만 해도 아시아의 작은 국가 한국이 1986년 제42회 때 처음 참가한 이래 10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독립국가관을 갖지 못했던 한국은 마찬가지로 뒤늦게 참가한 소련, 동독,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등과 함께 외딴 건물에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1995년은 베네치아비엔날레 창립 100주년 해였다. 주최 측의 다양한 쇄신 노력과 대한민국 각계의 ‘세계화’ 기조가 빚어낸 성과였던 셈이다.

한국관이 건립되고 그 첫 전시가 열리기까지 공을 세운 인물들이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1세대 평론가 이일 그리고 당시 4명의 출전작가 곽훈, 김인겸, 윤형근, 전수천이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예화랑에서는 이 가운데 백남준, 곽훈, 김인겸을 소환해 지난 30년의 궤적을 되짚어본다. 5월2일부터 6월8일까지 열리는 전시회 ‘30 Years: Passages’(써티 이어스: 패시쥐, 30년: 통로)다.  

관람순서는 3층, 1층, 2층이지만 오르내리기 번잡하면 그냥 3층, 2층, 1층 순으로 내려오면서 보아도 무방하다. 
백남준, ‘비밀 해제된 가족사진’(1984)
화랑의 3층은 백남준(1932∼2006)의 작품들로 꾸몄다. 독일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그는 1980년대부터 한국과 해외 미술을 이어준 핵심 인물이다. 1984년 처음 시연된 서울, 뉴욕, 파리, 도쿄를 연결한 초국가적 위성 프로젝트 ‘굿 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은 국가, 민족, 문화 등의 경계선을 넘어 예술을 통해 대통합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독일관 대표작가로 참가한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선 ‘백남준: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중매체였던 텔레비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영상과 메시지를 독점적으로 전달하는 텔레비전을 적극적 능동적 매체로 전환시켜 쌍방향 소통을 추구하는 등 기존 예술어법을 전복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 일간지 축쇄판 위에 인쇄한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파르나스갤러리, 1963)의 전단지도 볼 수 있다. 예술과 정보를 하나로 생각한 예술철학과 미디어를 중히 여겼던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드로잉, 전시 브로슈어, 사진, 판화, 휘갈겨 써놓은 메모 등 ‘비디오아트 선구자’ ‘행위 예술가’ 이전 다소 생소한 느낌의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 파르나스갤러리 전시회 전단지(1963)
1층 전시장은 곽훈(1941∼)의 작품들이 포진했다.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해 일찍이 국제적인 감각을 익힌 그는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첫 전시에서 야외 공간을 활용한 설치 퍼포먼스 ‘겁/소리,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을 선보였다.
한국 가마에서 구운 옹기들을 길게 줄지어 버팀목에 매달아 마치 거대한 관악기처럼 보이도록 설치하고 옹기들 옆에 일렬로 앉은 20명의 비구니들이 대나무통으로 서로를 연결할 때 김영동의 대금연주가 함께 어우러지는 작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퍼포먼스 아트가 낯설었던 한국미술계에 몹시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옹기, 비구니, 대금 같은 생경한 요소들은 서양 관객들에게도 한국관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곽훈, ‘겁/소리’(1993)
곽훈, ‘할라잇’(2017)
이번 전시에서는 ‘찻잔 Tea Bowl’, ‘주문 Incantations’, ‘겁 Kalpa’, ‘기 Chi’ 시리즈들에 이은 근작 ‘할라잇 Halaayt’(신의 강림) 시리즈를 내놓았다. 물질세계와 대비되는 영성, 정신성 등을 키워드로 하는 작가가 걸어온, 걸어갈 길을 마주하게 한다. 
2층에 들어서면 1996년 파리 퐁피두센터 초대로 도불해 200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김인겸(1945∼2018)의 작품들이 관객을 반긴다. 그는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때 ‘Project21-Natural Net’(프로젝트21-내추럴 네트)를 출품했다. 아크릴 구조물, 물을 넣은 수조, 비디오 모니터, CCTV 등 인공적 구조물과 자연물, 테크놀로지 기기가 만나 1층과 2층을 연결하며 한국관 원형 전시장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설치 작품이다.
김인겸, ‘빈 공간’(2005) 
김인겸, ‘스페이스리스’(2016)
이번 전시에서는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이모저모를 촬영한 영상 및 아카이브 자료, 2010년대 중반 스퀴즈(유리닦이 같은 도구)를 이용한 특유의 페인팅 작업 ‘스페이스리스’, 면을 통해 입체를 구현한 조각 ‘빈 공간’, 특히 1996년 도불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스퀴즈 작업 ‘드로잉 스컬프처’를 진열했다. ‘드로잉 스컬프처’는 데생과 조각을 동격으로 놓은 작가 특유의 개념을 구현한 작업으로, 그린다는 개념과 조각을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의 것으로 해석하는 작가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스페이스리스’ 시리즈 조각과 페인팅 작업의 본원이 되며, 도불 이전과 이후 작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