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가족의 모습 달라졌다”···국민 눈높이 새 입법 국회에 맡겨

유선희 기자 2024. 4. 2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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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5일 유류분 제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정효진 기자

헌법재판소가 고인 의사와 관계 없이 유산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유류분 제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배경에는 가족제도와 사회 환경 변화가 있다. 상속을 받는 가족의 생계를 보호한다는 최초 입법 목적은 인정했지만 핵가족화 등으로 가족 모습이 바뀌었고 사회 환경도 달라졌기 때문에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도 그에 맞춰 달리 다뤄져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헌재가 패륜적인 부모나 자식에게도 유산을 나눠주게 한 현행법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입법을 국회 몫으로 돌린 것은 ‘시민 눈높이’에 맞는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는 25일 유류분 제도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면서 “오늘날 사회구조가 변하고 가족제도의 모습 등이 크게 달라지면서 유류분 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이 퇴색되고 있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두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현행 민법은 자녀와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가 일정 비율 이상 최소한의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다. 유류분은 상속재산의 ‘의무 할당분’을 말한다. 피상속인인 고인의 유언이 따로 있다고 해도 고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각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은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민법상 유류분 제도는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는 상속인의 생계를 보호하고, 상속인이 상속재산 형성에 이바지하도록 도입됐다. 정보화·산업화, 핵가족화 등 사회 환경 변화 속에서 개인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점 등을 두고 시대변화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유류분 제도가 ‘유족의 생존권 보호와 가족 간 연대’라는 점에서 여전히 입법 목적의 중요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헌법 37조 2항의 취지를 다시 살폈다. 이 조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통해 패륜 부모나 자식이라고 해도 전체 상속재산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가질 수 있게 한 유류분 제도가 고인의 재산권 처분은 물론 다른 상속인의 재산권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형제자매까지 유류분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며 재판관 만장일치 위헌 결정을 내렸다.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가족 구성 세태를 반영해 형제자매에게 유류분 청구권을 인정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독일, 스위스, 일본의 유류분 제도와 비교해 봐도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로 규정한 입법례는 없다”고 밝혔다.

자녀, 배우자, 부모에게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지급되는 유류분 규정에 대해선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할 필요성을 설명했다. 가족이 부양 의무 등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도 일률적으로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시민 눈높이에 맞지 않지 않다고 봤다.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상세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헌재는 특정인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111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을 두고 고인을 오랜 기간 부양하거나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했어도 기여상속인과 비기여상속인간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 재산권·평등권 침해 여부가 제기돼 왔다.

헌재는 유류분 산정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는 민법 1113~1116조는 모두 합헌으로 판단했다. 다만 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1113조 1항과 1115조 1항은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공익 기부나 가업승계 등 목적으로 증여한 재산도 예외 없이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로 보고 입법 개선이 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또 유류분 반환 시 부동산 등으로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1115조 1항에 대해서도 “매우 복잡한 법률관계를 발생시킨다”며 “입법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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