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불효자는 안 줍니다"… 유류분 제도 47년만에 전면 손질

김경렬 2024. 4. 2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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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헌재 찾아 직접 헌법소원
지난 3차례 합헌 판단 뒤집은 판결
故人 돌봐 증여받은 재산은 예외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는 유류분 제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연합뉴스>

2020년 이민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사건을 맡은 권순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심리를 멈췄다.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이 잘못됐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판사가 헌재를 찾아 직권으로 헌법 소원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류분(遺留分)은 상속인에게 상속분의 3분의 1에서 2분의 1까지 보장해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배우자, 아들, 딸이 1명씩 있는 A씨가 7억원을 아들에게 모두 물려주고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배우자와 딸은 소송을 통해 각각 1억5000만원과 1억원을 받을 수 있다.

유류분은 오랜 세월 법률가들 사이에서 제도적 문제점이 발견됐다. 원래 유언(고인의 의사)에 따라 재산을 분배해야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유류분은 고인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는 수단으로 활용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패륜 자녀나 형제자매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경우다. 실제로 고인을 돌봤던 사람들에게 상속분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지적에도 헌재는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유류분을 세 차례 합헌 판단했다.

◇형제·자매 유류분 위헌… "가문 지킨다"는 건 '옛말'

헌재는 25일 그간의 판단을 뒤집었다. 1977년에 도입된 현행 유류분 제도는 47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는 즉시 효력이 사라졌다. 이런 내용을 담은 민법 1112조 4호가 위헌으로 결론 났기 때문이다. 형제·자매에 대한 상속 문제를 다룬 조항이다.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간 형제·자매의 유류분에 대해선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많았다. 자식, 부모, 배우자는 고인의 죽음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지만 형제·자매는 기존 생활이 있기 때문에 꼭 상속받아야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헌재가 위헌 판결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형제·자매가 상속받아야 하는 경우를 염두 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가문에 대한 시대적인 판단 변화를 보여준 셈이다.

◇패륜아 유류분, 법률 수술대… 내년 말까지 개정해야

헌재는 학대 등 패륜 행위를 한 가족이 유류분을 청구하는 경우에 대해선 법 개정을 명령(헌법불합치)했다.

계기는 가수 고(故) 구하라 씨가 사망한 지난 2019년. 오래 전 집을 박차고 나간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하며 나타났다. 유류분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구씨의 오빠인 구호인 씨는 '부양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동생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며 국회에 입법 청원을 올렸다. 당시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패륜아나 못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일명 '구하라법'이 국회 발의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20대·21대 국회 내내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를 헌재가 입법 강제했다. 헌재가 제시한 기간(2025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고치지 않으면 민법 제1112조(유류분의 권리자와 유류분)는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고인을 돌봐 증여받은 재산, 유류분 예외로 인정

BYC의 사례(현재 1심 소송 중)처럼 장남에게만 상속했다가 배우자와 딸들이 소송을 내는 경우 기업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 중 고인을 보살핀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하는지, 고인이 사망하기 전 증여한 재산도 사후 유류분 다툼의 대상이 되는지, 현대 사회에서 사실상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는 형제자매에게도 유산을 반드시 줘야 하는지 등도 문제 시 된다.

헌재는 고인에게 생전 특별히 기여한 자가 증여받은 재산은 명백히 "유류분의 예외"라고 결정했다. 고인 생전에 증여한 의사와 받은 사람들의 재산권 침해를 두루 감안한 결론이다. 기존 제도는 패륜아 유류분과 마찬가지로 법률(민법 제1118조 일부)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판결문을 통해 "유족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보장 및 가족 간의 연대라는 공익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제도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이 공익보다 더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가족 제도의 공공성을 수호한다는 공익과 개인 소유 재산을 본인 뜻대로 처분한다는 사익을 저울질해, 유류분 제도 자체는 정당하다고 봤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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