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플라스틱 협약…협상 시작되자 돌변한 나라들

김정수 기자 2024. 4. 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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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량 감축 vs. 폐기물 처리 중심 등 숱한 쟁점
기후변화협약처럼 선진국·개도국 차별 주장도
부산 5차 협상회의 성공 4차 회의 성과에 달려
전 세계에서 모인 환경단체 활동가, 기후운동가 등이 지난 21일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연방의회에서 플라스틱 협약문 성안을 위한 협상장인 샤우센터까지 행진하며 국제사회에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할 강력한 협약문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레스 플라스틱! 모어 라이프!” (플라스틱은 줄이고! 생명은 늘리고!)

지난 21일 오전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의회 언덕에 모인 세계 각국의 환경단체 활동가, 기후 운동가, 원주민 지도자, 과학자 등 200여명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시대를 끝내기 위한 행진’으로 이름 붙인 이들의 행진은 직선거리로 500여m가량 떨어진 샤우 컨벤션 센터까지 이어졌다. 샤우 센터에서는 23일부터 플라스틱 협약문을 성안하기 위한 제4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회의(INC-4)가 열리고 있다.

플라스틱 협약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체결하려고 하는 협약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이번 협상 회의에 제출한 ‘플라스틱 오염 과학’ 최신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0년 2억3400만t에서 10년 만인 2019년에 4억6000만t으로 두 배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19년 한 해에만 3억6000만t가량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으나 이 가운데 재활용된 것은 9%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90% 이상이 환경 중에 버려지거나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며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킨 것이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이 남극의 얼음 속과 심해저까지 없는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지구를 뒤덮으며 생물의 생명은 물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쌓여 가고 있다. 게다가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 등의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된다는 것도 문제다.

유엔환경계획 보고서는 2020년 플라스틱으로 발생한 온실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6%인 18억t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40년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7억t을 넘어서고, 2060년에는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이 10억t을 돌파해 플라스틱에 의한 위협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크다. 2022년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 참석한 160여개 나라가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를 포괄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2024년까지 협약문을 마련하기로 결의한 것은 이런 상황 인식을 공유한 결과다.

2060년 플라스틱 폐기물 10억t 돌파 추정

협약문을 성안하기 위해 오타와에서 열리고 있는 4차 협상 회의는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릴 5차 최종 협상회의의 성패를 가늠할 분기점이 되는 회의다. 3차례 협상 회의를 거치면서 합의되지 못한 숱한 쟁점들이 오타와에서 어느 정도 정리되지 않으면 부산에서 제대로 된 협약문이 완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4차 협상회의 의장은 회의 개막에 앞서 발표한 회의 시나리오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회원국들을 지원하는 협약의 문안을 5차 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수 있도록 협상을 진전시키는 것”을 4차 회의의 목표로 제시했다. 이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 과정과 4차 회의에서 내놓은 주요 국가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4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4) 회의가 열리는 캐나다 오타와 쇼 컨벤션 센터 앞에 설치된 플라스틱 쓰레기 조형물에 한 여성이 ‘플라스틱 없는 삶은 환상적’이라고 쓰인 팻말을 붙이고 있다. 오타와/AP 연합뉴스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2년여의 짧은 기간 안에 법적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문을 만들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던 많은 나라는 막상 협약문 협상장이 시작되자 태도를 바꿨다. 플라스틱 협약문의 조항 하나하나가 자국의 산업에 끼칠 영향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2차 협상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된 31쪽의 협약문 초안이 지난해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3차 협상회의가 끝나자 다양한 선택지가 덧붙어 69쪽으로 불어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국이 플라스틱의 원료 공급국인지, 플라스틱 제품의 주요 생산국인지 소비국인지 등에 따라 이견을 분출했기 때문이다. 오타와 협상회의 테이블에 올라온 개정된 초안은 협약의 핵심인 ‘협약의 범위’ 항목에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를 포괄하자는 제안부터 제품 설계부터 다루자는 제안, 원료의 추출·가공 단계는 제외하자는 제안을 포함해 모두 16개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대다수 국가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라는 공동 목표에는 공감했지만, 오타와 협상회의 이전까지 세 차례 협상회의에서 구체적인 목표 연도 설정을 비롯해 기술·제도적 쟁점 모두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참여국들은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 감축 △규제 대상 플라스틱과 규제 수준 △재활용 기법을 포함한 폐기물 관리 등을 어떻게 할지를 비롯해 △각 국가의 협약 이행에 대한 평가 형식과 구속력 △협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문제 등에서 이견을 보인다. 특히 1차 플라스틱인 폴리머 생산량 감축을 두고도 원료를 공급하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의 산유국과 주요 생산국인 중국 등은 반대가 완강하다. 생산을 감축하지 않고 생산된 이후 관리를 통해서도 오염 종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 공감…쟁점들엔 합의 못해

이들의 입장은 오타와 회의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이란은 공식회의 첫날인 23일(현지시각) 발표한 국가 성명에서 “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제품이 현대 생활의 초석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더 나은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를 통해 오염을 줄이고 제거할 수 있는 잠재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협상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도 같은 날 성명에서 “모든 당사국이 최대한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플라스틱의 환경 유출로 인한 오염을 방지하는 핵심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구의 날인 22일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연합뉴스

협약 이행을 참여국들에 구속력 있는 의무로 부여할 것인지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쟁점이다.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문 마련이 결의됐지만, 중국은 오타와 회의 첫날 성명에서 “국가자율 원칙을 충분히 존중하고 획일적인 해결책을 피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란은 같은 날 한 발 더 나가 “선진국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방식으로 주도하고, 개발도상국은 자발적인 접근을 통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온실가스를 대상으로 한 기후변화협약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협약도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RD) 원칙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에 분리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11월에 부산에서 성공적인 협약문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이번 오타와 회의에서 이런 쟁점들에서 큰 진전을 이뤄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획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지금까지 협상 진전 상황으로 미뤄볼 때 부산의 5차 회의에서 협약문을 마무리하려면 애초에 목표한 강한 구속력 있는 협약으로 가지는 못하고 절충해서 일단 협약을 체결한 뒤 보완해가는 방식으로 가고, 애초 목표를 고수하려면 협상 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 같다”며 “이번 오타와 회의에서 의장국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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