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국제 네트워킹 넘어 공급망공동체로

2024. 4. 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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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정부 외교통상정책의 핵심은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동안 공급망 3법(소부장특별법, 공급망기본법, 자원안보법)을 제정해 경제안보를 위한 핵심 품목 및 자원을 정의하고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접근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공급망 위험을 항시 점검하고 조기경보하는 시스템도 운영해왔다.

리튬, 니켈 등 10대 '전략 핵심광물'에 대한 중국 수입 의존도를 50%대로 대폭 낮추겠다는 야심찬 수입국 다변화 정책목표도 수립했다. 그동안 60여개 국가와 맺은 FTA 체제를 경제동반자협정 및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체제로 보완하여 110개 국가로 파트너쉽을 넓힌 것도 경제안보를 위한 작업이다. 인도·태평양 전략도 발표해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원칙을 수립하고 9개 중점 추진과제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안보 체제는 아직 요원하다. 단순히 리스크를 분산하는 차원에서 핵심광물에 대한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취하는건 문제가 있다. 중국에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국 이외의 국가로 초점없이 수입선을 다변화하겠다는 발상은 또다른 리스크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광물자원의 중국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데 성공한다손 치더라도 대체 수입선 국가들이 차례차례 필수자원의 수출을 통제해버리면 다변화 정책은 무의미해진다. 이들과의 굳건한 공급망 협력체제가 확보돼야만 유사시 자원을 공급받게 된다.

현 정부들어 10여개 국가와 맺은 TIPF들은 별 내용이 없다. 국제 네트워킹 확산 차원의 협정 숫자 늘이기가 정말로 경제안보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점추진 과제도 최신 글로벌 관심 분야를 망라해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순서에 따라 어떠한 작업을 전개해나갈지에 대한 로드맵은 제시되지 않았다.

우리가 전략적 공급망 공동체를 형성할 만한 국가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공급망 파트너 경제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 이들 국가들과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공동으로 설립해 운영하고 각종 안정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단순한 무역투자 분야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널리 확산시키는 작업을 넘어 공급망 공동체를 집중적으로 형성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국가들은 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출범시켜 소련의 위협에 공동대응하며 필수자원에 대한 역내 공급망 공동체를 형성시켜나갔다. 특히 루르(Ruhr) 지방에서의 천연자원에 대한 유럽 국가들 간의 경합을 상쇄했다. 70년 동안의 평화로운 유럽의 통합과 번영은 공생의 자원경제 기반을 마련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제2의 석탄·철강공동체와 같은 공급망 공동체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구축해야 한다. 중국, 일본 등 대규모 경제권과의 공동체 형성이 미·중 패권경쟁하의 지경학적 문제 때문에 어렵다면 호주와 먼저 공급망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자원부국인 호주와 기술·인력 부국인 한국이 상호 자원과 기술의 공동 조달 운명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은 중국발 전체주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양국의 공동운명에 비추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과 호주의 지혜는 양국간의 전략적 공급망 안정화 파트너쉽 구축작업에서 발휘될 수 있다. 한·호주간 공급망 안정화 협정을 체결하고 안정화기금을 공동으로 설립해야 한다.

유사시 자립이 가능한 자원부국들과는 달리, 국제적 네트워킹을 통해 필수자원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먼저 호주에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며 적극적 구애를 해야한다. 유럽의 자원 공급망 통합과정이 시사하는 바를 한국과 호주의 상황에 맞추어 재해석해내야 한다. 경제안보 전문인력들을 대(對)호주 외교 분야에 대거 투입하고 양국간 문화교류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미 일본은 호주와 철강 분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에 와있다.

그동안 중국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호주는 중국발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주가 중국경제와의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는 지금은 우리 경제가 호주에 어필할 수 있는 적기다. 일본에 선수를 빼앗겼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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