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학가 반전시위
미국이 참전한 전쟁이 없는 시기에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는 외교 문제가 유권자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경제, 불평등, 인종, 임신중지 등 미국 국내 문제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 선거에서는 그런 공식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돼 다른 대학들로 확산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1968년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떠올리게 된다. 56년 전 조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 대학생들의 친구·형제가 전장에서 죽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대학이 이스라엘군이 쓰는 무기 사업에 투자하고,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데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그때와 비슷하다. 가자지구의 참상을 시시각각 접하면서 자신들이 공범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1968년의 대학생과 2024년의 대학생은 기성 체제에 대한 분노와 항의를 연결고리로 만나고 있다.
지금 미국의 젊은 세대는 이스라엘을 덮어놓고 지지하지 않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무기 지원이 계속되면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1968년 대선에서,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 민주당 대통령 린든 존슨은 일찌감치 후보직을 사퇴하고, 베트남전 종결을 외친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대학생 반전시위는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공교롭게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 장소도 시카고이다.
미국 대학가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는 파리, 시드니, 카이로 등 세계 각지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된 반전시위가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도쿄 등으로 번졌던 것과 비슷하다. 한국의 대학에서도 얼마 전 학생들이 붙인 팔레스타인 연대 벽보를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 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낮은 편이지만, 3만4000여명이 학살된 이 비극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감각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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