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낀 美경제 소프트랜딩할까...가장 큰 위협은 ‘연준의 오판’

홍준기 기자 2024. 4. 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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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글로벌 전문가 37명 설문조사
73% “美 경제 연착륙한다”
“코로나 등 충격 해소되고, AI 등 새 기술 발전도 미국이 주도”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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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중심축. 전 세계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 경제에 암운(暗雲)이 드리우고 있다. 인플레이션 불길은 여전히 거세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를 기록했다.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중동 리스크가 커지며 유가까지 물가를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고물가를 잡기 위해 틀어쥔 금리 고삐를 느슨하게 하기엔 경기가 너무 뜨겁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최근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기존 전망치보다 0.6%포인트 올려잡았다. 전체 선진국 그룹(성장률 전망치 1.7%) 사이에서 독야청청하는 셈이다.

그래픽=김하경

그렇다면 미국 경제라는 거대한 비행기는 고물가와 고금리 장기화란 덫에 걸려 거칠게 내려앉을까. WEEKLY BIZ는 글로벌 유수의 경제학자와 싱크탱크·금융사 소속 전문가 37명을 대상으로 미국 경제의 미래를 물었다. 미국 경제의 항로를 점치기 위한 이번 대형 서베이에서 전문가 37명 중 27명(73%)은 “미국 경제는 그래도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연착륙)할 것”이라고 답했다. 통상 물가가 안정을 찾고, 성장률이 둔화하더라도 경기 침체에 이르지는 않는 상황을 비행기의 안정적인 착륙에 빗대 소프트 랜딩이라고 한다. 글로벌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마에스트로(거장)’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990년대 중반 이뤄낸 소프트 랜딩을 미국이 30년 만에 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Q1. 왜 미국의 소프트 랜딩 가능성을 높게 보나.

우선 ‘시간’이 인플레이션이란 발등의 불을 자연 치유하고 있다. 앞서 코로나 팬데믹 때 인도나 중국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는 공급망 문제가 불거졌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잇단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며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 불길이 타올랐다.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적기에 하지 못하고 실기(失機)하는 바람에 2022년 한 해에만 금리를 4.25%포인트 끌어올리는 ‘극약처방’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화정책 외의 요소들은 팬데믹 사태가 종식되고, 공급망이 재구축되며 자연스레 원상태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해석이다. 마크 잰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글로벌 쇼크’가 해소되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이 (2022~2023년보단) 잠잠해지면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가 경제에도 작용하며 미국 소프트 랜딩 가능성을 높인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미국에 유입되며 낮은 임금에도 기꺼이 일하려고 하니, 임금과 서비스 물가 상승을 억제해준다는 얘기다. 라이언 스위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노동력 공급의 꾸준한 증가와 생산성 향상은 미국 경제를 지켜주는 중요한 버퍼(완충 장치)”라고 했다. 미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 발전을 주도하면서 끊임없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소프트 랜딩 가능성을 높인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도 ‘브레이크’(긴축적인 통화정책)와 ‘가속 페달’(확장적인 재정정책)을 동시에 밟는 모순적인 정책이 되레 기묘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해석을 하는 이코노미스트도 있었다. 앨릭스 조이너 IFM인베스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통화 긴축 국면에서도 확장적인 재정 정책이 탄탄한 민간소비와 함께 견고한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중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재정 정책은 지속 불가능한 형태”라고 비판했다. 점증하는 나랏빚(국가 채무)에 IMF 등에서도 “미국의 재정 정책 방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미국의 나랏빚 문제는 “지금 당장 곪아 터질 일은 아닐 것”이란 게 전문가들 생각이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미국 정부의 채무 문제는 2030년대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Q2. 그렇다면 미국 경제는 걱정 없나.

미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현재로선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미국 경제가 소프트 랜딩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한 27명 중에서도 “가벼운 경기 침체조차 피해갈 수 있다”(소프트 랜딩)고 내다본 전문가가 22명이었다. 나머지 5명은 경기가 냉각되면서 “경미한 수준의 침체가 찾아올 수는 있지만 미국 경제가 수렁에 빠져드는 일은 없다”(소프티시 랜딩·경미한 침체는 겪는 소프트 랜딩)고 봤다. 노 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를 지지한 7명의 전문가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 경제 역시 빠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필 매킨토시 나스닥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노동시장이 탄탄하고 실질임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며 “덕분에 금리가 매우 높은 상황에도 소비가 위축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그러나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니다. 제임스 에인절 조지타운대 교수는 “고물가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다”며 “지정학적 갈등과 자유무역의 후퇴, 고금리의 지속으로 실질 생계비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표로 드러나지 않는 미국 국민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스티브 한케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아예 명시적으로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고 예견했다. 그는 “연준이 미국 경제를 과격하게 움직이는 롤러코스터로 밀어 넣었다”며 “유동성(광의통화·M2)이 줄어들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미국에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시중 유동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광의통화량(M2)이 연평균 6%는 증가해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데, 최근 통화량(2022년 3월~2023년 10월)은 4.5% 감소했다는 게 한케 교수가 경기 침체를 내다본 근거다. 한케 교수는 “통화량 4.5% 감소는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통화량 수축”이라고 덧붙였다.

제임스 갤브레이스 텍사스대 교수도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최근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긴급지원금과 같은) 일시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경향이 강했는데 연준은 고금리 정책으로 대응에 나섰다”며 “이에 아프리카 국가 등 저개발국에서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본이 이탈하게 하고, 부채 위기만 초래했다”고 했다.

◇Q3. 연준은 기준금리 인하 나설까.

미국 연준이 언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지는 전 세계적 관심사다. 미국이 2022년부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시작된 달러 강세는 특히 개발도상국엔 재앙에 가까웠다. 외채 상환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달러로 거래되는 연료나 식량의 가격이 사실상 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로 낮아진다는 확신에 이르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히자, 한국 외환시장에서도 지난 16일 장중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기도 했다.

이번 설문에 응한 전문가 37명 중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말 연준의 목표치인 2% 아래까지 떨어질 것으로 본 전문가는 경기 침체를 전망한 스티브 한케 교수 한 명뿐이었다. 다만 현재보다는 낮은 2.5~3%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37명 중 16명(43%)으로 가장 많았다. 2~2.5%까지 내려온다는 예측(7명)은 최근과 비슷한 3~3.5%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6명)과 엇비슷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절대적인 수준보다는 ‘방향성’에 주목한다. 물가상승률이 3% 이상이더라도 한때 9.1%(2022년 6월)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의 기세가 꺾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히카르두 헤이스 런던정경대 교수는 “올 연말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3~3.4% 수준일 것으로 본다”면서 “(그럼에도) 연준이 이번 여름(7월) 정도에는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악관이 금리 인하를 두고 연준을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크 플랭클린 매뉴라이프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사실 현재는 물가나 경제 성장 두 가지 측면에서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오는 11월) 재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러스 몰드 AJ벨 투자책임자와 콜린 그레이엄 로베코자산운용 멀티에셋 전략 총괄은 “파월 의장이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의 전철을 밟는다면 연준은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70~1978년 연준을 이끈 번스 의장은 성급히 기준금리를 인하했다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악화시켜 ‘최악의 연준 의장’으로 꼽힌다.

그래픽=김의균

◇Q4. 중동·유럽 지정학적 리스크는 어떤 영향을 줄까.

전문가들은 특히 최근 불거진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문가 37명 중 12명(32%)이 미국 경제를 추락시킬 수 있는 ‘악천후’로 중동이나 유럽에서 이어지는 군사적 충돌을 지목했다. 1973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시작된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 전쟁)과 1979년 이란 혁명은 오일 쇼크(유가 폭등)를 불러왔다. 산유국이 몰려 있는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이 원유 가격을 자극하곤 했다.

마크 잰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선까지만 오른다면 괜찮겠지만 ‘100달러’를 넘어가게 되면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나 재점화를 우려하는 전문가(4명)들도 중동 지역 분쟁의 확산을 걱정한다. 연준 부의장 출신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유가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기대한 만큼 빠르게 둔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Q5. 소프트 랜딩에 영향을 줄 또 다른 걸림돌은.

지정학적 갈등만큼이나 미국 국내 정치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까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데, 그의 경제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을 때 어떤 정책을 펼칠지 예상이 어렵다”고 했다.

장기간 이어지는 고금리 정책은 은행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관련 대출의 70%를 담당하는 미국 지역은행 실적을 악화시키고 있다. 캠벨 하비 듀크대 교수는 “은행의 예금 금리가 (금리 인상이 즉각 반영되는) 머니마켓펀드(MMF)의 수익률은 쫓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자금 이탈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의 조종간을 잡은 ‘연준 인사들의 오판’이 미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 전문가도 37명 중 7명(19%)으로 많았다. 사이라 말리크 누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매우 긴축적인 통화 정책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효과(lagged effects)가 닥쳐올 수 있다”며 “높은 이자 비용이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부담을 주고, 부동산 시장의 ‘난기류’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연준에서 근무하면서 본인의 이름을 딴 불황 관련 지표(샴 경기 침체 지표)를 개발했던 클라우디아 샴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미국 경제에 가장 위협이 되는 건 연준”이라며 “금리 인하 타이밍이 너무 늦어지면 소비자(가계)나 금융시장 둘 중 하나에 타격을 주며 불황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 랜딩(soft landing)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친 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경제 상황. 물가 상승률은 둔화되면서도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하거나 실업률이 치솟는 경기 침체는 피해가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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