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엔드게임’ [슬기로운 기자생활]

임재희 기자 2024. 4. 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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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게임이나 다름없었어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 전문가 패널로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지난 21일 마지막 숙의 토론회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유례없는 인구 감소 탓에 현행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꾸준히 의문이 제기됐는데도 2007년 이후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며 외면해온 데 대한 원망이기도 하다.

21대 국회는 연금개혁 영웅이 될까, 비겁한 구경꾼에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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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회원들이 최근 국회 연금특위에서 국민 공론화를 진행해 나온 결과를 발표한 것과 관련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계단앞에서 연금개혁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임재희 | 인구복지팀 기자

“엔드게임이나 다름없었어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 전문가 패널로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지난 21일 마지막 숙의 토론회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은 등장 인물들이 벌이는 최후 전투를 다뤘다. 대부분 대학교수인 전문가들은 전투를 준비하듯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학교 수업과 병행하며 한달가량 생중계 회의를 준비했다. ‘엔드게임’이란 부담이 컸던 걸까. 지난 13·14·20·21일 네차례 생중계로 치러진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를 보면,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정해진 시간을 다 쓰는 바람에 마이크가 꺼지기 일쑤였다.

전문가들이 공론화 회의를 ‘엔드게임’이라고 여긴 건, 여기서 나온 시민들의 선택이 상징성을 지닌 연금개혁 방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실제 인구구조에 맞춰 500명의 시민대표단을 추렸다. 국민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다. 또 학습과 토론을 거쳐 정책을 충분히 숙지한 뒤 나온 결정이란 점에서 일반 여론조사와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런데 공론화 조사가 연금개혁 논의를 마무리하는 ‘엔드게임’이어도 괜찮은 걸까. 복지 분야를 취재한 지 햇수로 6년째이지만 여전히 국민연금 개혁은 고차방정식의 해법처럼 난해하다. 국민연금 담당자도 잘 모른다는 연금급여 산식 때문은 아니다. 청년과 노인 등 세대 간, 직장인과 자영업자 등 직역 간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엇갈려서다. 당장 보험료를 내도 40여년이 지나야 혜택을 볼 수 있는 20대부터 은퇴를 앞둔 50대, 연금을 받는 60대 이상을 모두 만족시키는 개혁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론화 조사는 어찌 보면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시작 단계에 어울린다.

그런데도 공론화 조사를 엔드게임으로 만든 건 국회였다.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 등을 바꾸려면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22년 7월 여야 합의로 연금특위가 출범했지만 2년이 다 되도록 아무런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수밖에 없는 4·10 총선이 다가왔다. 결국 연금특위는 부랴부랴 공론화위원회를 꾸렸다. 사실상 연금개혁의 책임을 시민대표단에 떠넘긴 것이다. 정부도 이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연금을 3대 개혁 중 하나로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해 10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정도의 ‘맹탕 개혁안’을 내놓는 데 그쳤다.

“한달간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책 의사결정권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도적 불안정성을 남겨놨는지 많은 의혹이 남습니다.” 2007년 12살이었다는 20대 시민대표단 한명이 생중계 회의 마지막 날 남긴 소감이다. 유례없는 인구 감소 탓에 현행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꾸준히 의문이 제기됐는데도 2007년 이후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며 외면해온 데 대한 원망이기도 하다. 국회 연금특위가 공론화에 이르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는데, 앞으로 2∼3년 뒤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이번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지 못하면 연금개혁은 또다시 선거 앞에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21대 국회는 연금개혁 영웅이 될까, 비겁한 구경꾼에 그칠까.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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