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가 발굴하고 4대 기획사에서 만개…장기성과 전략 필요할 때[K-컬처 위닝스토리]

2024. 4. 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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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베이스원으로 입증한 오디션 열풍
채널 발판으로 IP 확보, 매니지먼트로 수익
IP-매니지먼트-플랫폼 트라이앵글 전략
결국 단기 성과에 그쳐…자체 역량 키워야
제로베이스원 [웨이크원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원 자격 2010년 1월 1일 이전에 출생한 전 세계 소년들. 소속사 유무, 데뷔 경력 여부와 관계없음.”

전례없는 모집 공고가 나자 84개국에서 229개 기획사, 수천여 명의 소년들이 K-팝 그룹의 꿈에 도전했다. 지난해 방영된 Mnet(엠넷) 보이그룹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이다.

도쿄 올림픽과 맞물려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보잘 것 없었다. 1회(2023년 2월 2일) 방송이 0.3%대로 출발, 최종회에선 1.2%로 마무리 됐다. 다만 10대 시청률은 12주 연속 지상파 포함 전 시간대 1위였다.

사실 TV 시청률은 무의미하다. ‘보이즈플래닛’의 주 시청층인 10~30대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 패턴으로 완전히 돌아선 상황. TV와 달리 티빙에선 첫 방송부터 50%에 달하는 시청 점유율을 기록했고, 최고 62%까지 상승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투표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미국, 싱가포르, 페루, 브라질, 일본 등 다수 지역에서 연습생들의 이름이 회자됐다. 프로그램의 관련 영상은 방송 2개월 만에 4억뷰를 넘었고, 틱톡에서 누적 조회수 47억뷰를 기록했다. 184개국에서 940여만 표로 태어난 보이그룹 제로베이스원의 탄생기다.

제로베이스원은 CJ ENM 음악 사업의 ‘성적표’와 같다. 그간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CJ ENM의 음악 부문을 다시 살펴볼 계기가 것도 그나마 제로베이스원의 탄생 때문이다.

CJ ENM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4조3684억원으로 전년 대비 8.8% 하락했다. 영업손실은 146억 원으로 적자전환한 상태다. 영화, 드라마, 커머스에 이르기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발견한 ‘희망’은 음악 사업이다. 이 기간 음악 부문만 유일하게 15.6% 성장했다. 재개된 해외 투어와 소속 아티스트의 ‘원맨쇼’에 가까운 행보가 음악 부문에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안겼다. 특히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증가한 2567억원, 영업이익은 354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이랜드2 [CJ ENM 제공]
제로베이스원의 성공…건재한 오디션 시스템의 공과 실

대중음악계에서 후발주자의 성공은 쉽지 않다. K-팝 업계는 이미 2020년대까지 소위 3대 기획사로 불리는 SM, JYP, YG가 기반을 닦은 다진 상황. 다만 CJ ENM이 여느 중소기획사와 달리 대중음악계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채널 덕분이었다.

1995년 개국한 엠넷이 대중음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두 축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라이브 음악방송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음악 채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전통적인 지상파 음악방송이 가진 권력을 케이블 채널 엠넷의 음악 프로그램이 나눠가지며 가요기획사 사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만큼 가수들의 음반 홍보 채널이 많지 않았던 시절, 지상파 방송3사는 음악 프로그램(SBS ‘인기가요’, KBS2 ‘뮤직뱅크’, MBC ‘음악중심’)을 통해 가수들의 홍보 권한을 가지며 권력을 행사했다. 시청률이 1%대로 미미하긴 하지만,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가 방송계와 가요계를 긴밀히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한 방송사 PD는 “과거엔 신입 PD들이 들어오면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 음악방송 프로그램 PD로 보내곤 했다”고 귀띔했다. 중견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음악방송 PD를 만나 신인 가수나 컴백 가수 프로필과 음반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였다”고 돌아봤다.

CJ ENM의 음악 자산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축적됐다. ‘서바이벌 공화국’ 트렌드의 도화선이 된 ‘슈퍼스타K’(2009년)를 시작으로 10년 장수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 ‘아이돌학교’, 2019년 ‘아이랜드’, 2021년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 2023년 ‘보이즈 플래닛’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아이랜드2(I-LAND2) : N/a’를 방송 중이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CJ ENM 제공]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일본의 AKB48,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식의 오디션 모델을 가져와 경쟁시키고 고난 서사를 통해 종교적 팬덤을 형성하는 것이 엠넷식의 아이돌 오디션”이라며 “프로그램의 인기를 발판 삼아 제작 역량을 키워 방송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를 만들고, 매니지먼트로서 수익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고, 이러한 자본력으로 레이블을 인수해 확장한 것이 CJ ENM의 음악 사업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CJ ENM은 아티스트 발굴, 음반, 음원 기획 제작 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요계 관계자들이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속내는 복잡다단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눈도장을 찍어야 갓 데뷔한 그룹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데, 프로그램 자체의 투명성 문제로 늘 고민이다. 대중음악계를 충격에 빠트린 ‘프로듀스 101’ 시리즈 조작 사태 이후 ‘보이즈 플래닛’을 비롯한 타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기획되자 업계에선 하소연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조작 논란 이후 대형기획사가 출연하지 않으니 중소 기획사 중심으로 연습생 섭외 요청이 들어왔는데 방송에 나가 데뷔조에 들어가면 자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사례도 있고, 나갈 만한 얼굴을 찾기도 쉽지 않은 기획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럼에도 “오디션의 과오를 떠나 제로베이스원을 비롯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그룹들이 여전히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이즈 플래닛’을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이 직접 뽑은 데뷔조 9인이 결정, 제로베이스원은 CJ ENM 산하 음악 레이블 웨이크원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데뷔 청사진을 그려갔다. 출발도 전에 팬덤을 확보한 이 그룹은 데뷔 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 K-팝 그룹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뷔 앨범 ‘유스 인 더 셰이드’(YOUTH IN THE SHADE)는 발매 당일 124만 장(한터차트 기준), 1주일 만에 182만2028장을 팔아치웠다. 데뷔 직후 1만8000석 규모의 고척돔에서 팬콘서트를 연 것도 TV 오디션을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기에 가능한 일었다. ‘보이즈 플래닛’ 역시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으나, 제로베이스원은 ‘프로듀스101’ 시리즈의 조작 사태 이후 휘청였던 엠넷표 오디션의 건재함을 보여줬다.

다음 달 컴백하는 제로베이스원은 미니 3집 ‘유 패드 미 앳 헬로(’You had me at HELLO)에 수록된 ‘스웨트(SWEAT)’를 선공개, 전 세계 25개 지역 아이튠즈 톱 송 1위에 올랐다. 국내외 주요 음원 차트에서도 두각을 보인다. 멜론 핫100(발매 30일 이내) 7위에 올랐고, 일본 최대 음원 사이트 라인뮤직 실시간 TOP100 4위, 일본 아이튠즈 K-POP, POP 차트에서 1위, 전 장르 차트에서 11위를 기록했다.

아티스트 발굴 장터 역할…트라이앵글 성공 방정식 통할까?

“영화, 드라마는 잘 만드는데 음악은 왜?”

CJ ENM은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독특한 회사다. 문화 산업으로의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모기업 CJ그룹의 든든한 지원으로 방송 채널, 영화 제작과 배급, OTT, 커머스, 음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아우른다.

음악 부문 역시 타 분야 못지 않게 역사는 길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선 성과가 미미한 편이다. 제로베이스원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서다. 업계에서도 “CJ ENM은 영화, 드라마는 잘 만드는데 음악 제작 역량은 떨어지는 회사”라고 평가한다. 방송 채널, 매니지먼트, 팬덤 결집을 위한 온, 오프라인 플랫폼까지 갖췄음에도 자체 기획이 돋보이는 스타와 음악의 탄생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CJ ENM의 매니지먼트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발탁한 인재들을 소속 아티스트로 확보해 가요계에 안착시키며 수익을 냈다. 지금은 제로베이스원이 주요 아티스트로 자리잡은 웨이크원엔터테인먼트엔 케플러와 아이즈원 출신의 조유리, ‘슈퍼스타K’ 출신의 로이킴, 하현상 등이 소속돼 있다. 일본판 ‘프로듀스 101 재팬’을 통해 태어난 JO1, INI가 소속된 레이블 라포네엔터테인먼트,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처 등도 있다.

임희윤 평론가는 “CJ ENM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제작 역량을 키워 3, 4대 기획사 못잖은 음악기업으로 발돋움하려 했으나 잘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봤다.

세계 최대 규모의 K-컬처 페스티벌 KCON [CJ ENM 제공]

일련의 문제 의식과 지지부진했던 음악 사업 성장은 쇄신으로 이어졌다. 최근 몇 년 새 CJ ENM은 대대적인 비전 선포로 새출발을 알렸다. 지난 2021년 CJ ENM의 음악산업은 ‘IP(지적재산권) 생태계 확장 시스템(Muisic Creative ecoSystem·MCS)’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다져온 노하우와 역량을 체계화했다. ▷글로벌 오디션을 통한 IP 기획과 발굴 ▷아티스트를 성장시킬 매니지먼트(웨이크원) ▷K-팝 놀이터가 될 플랫폼(KCON, MAMA어워즈) 등을 통한 ‘트라이앵글 성공 전략’이다.

이 전략엔 CJ ENM이 K-팝 업계에 세운 혁혁한 공로가 포함돼 있다. 아이브 안유진·장원영, 르세라핌 김채원·사쿠라 등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무수히 좋은 자원들을 K-팝 업계에 공급했고,K-팝 글로벌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플랫폼을 다진 점이 그것이다.

업계엔 긍정적 영향을 끼쳤으나, 문제는 자체 역량의 강화와 자원 확보가 잘 안됐다는 점이다. 채널에서의 오디션을 통해 아티스트 IP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굉장한 강점이나 이들은 지속력이 짧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통해 탄생한 워너원, 아이즈원, 케플러 등 걸출한 K-팝 그룹은 활동 기간이 정해진 ‘시한부 그룹’이다. 활동을 마치면 각자의 소속사로 돌아가야 하기에 CJ ENM의 미래 자원이라 볼 수 없다.

김도헌 평론가 역시 “오디션을 통해 초기 화제성을 끌고 가고 서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장점이나 이후 활동 기한을 마치면 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되고 CJ ENM의 IP도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서 보다 총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봤다.

[CJ ENM 제공]

가장 큰 실책은 CJ ENM의 주요 음악 매니지먼트사인 웨이크원이 회사의 간판으로 오랜 기간 동행할 만한 아티스트의 발굴 및 음악색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배경으로 SM, JYP, YG, 하이브의 4대 기획사와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임 평론가는 “CJ ENM은 좋은 아티스트를 발굴한 장터 역할은 해왔으나, 자체 콘텐츠를 발굴하는 역량이 부족했다”며 “지금은 음악 제작 시스템이 집단지성이 필요한 구조이지만, 회사가 자리잡기 위해 훌륭한 프로듀서가 음악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일 수 있는데 CJ ENM에선 이 부분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지금 CJ ENM에 필요한 것은 장기 계획이다. 오디션을 통한 아티스트 발굴에서 매니지먼트로 이어지는 전략은 단기 성과를 내기엔 안성맞춤이나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김 평론가는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해 오디션의 성공을 거뒀고, 그로 인해 얻은 성취들이 많지만 CJ ENM에 오디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이미 조작 논란이 큰 충격파가 된 상황에서 연습생 확보, 기획사 관계에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오디션을 통한 IP 확보 이전에 안정적인 체제와 지속적인 창작 환경 구축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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