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대문구 대학가에 ‘전세 사기’ 집단 고소···보증금 떼이고, 부동산은 잠적

강한들 기자 2024. 4. 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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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인근 A 건물 엘리베이터가 건물주가 공용 전기 요금을 내지 않아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인근 A건물에는 사람이 들락거려도 전등이 켜지지 않았다. 보안문·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았다. 건물주가 공용 전기요금을 오랜 기간 내지 않은 탓이었다. 건물주의 우편함에는 “본인 외 절대 개봉 금지”를 알리는 신용 정보 관련 우편물도 무더기로 꽂혀 있었다.

A건물의 세입자들은 건물주인 B씨와 공인중개사들을 최근 경찰에 고소했다. B씨는 경희대·서울시립대 인근에 다수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계약이 끝난 세입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기자가 입수한 고소장을 보면 세입자들은 적게는 6000만원, 많게는 1억원이 넘는 보증금을 냈다. 세입자들은 “분양 대금 가액과 같거나 높은 금액을 임차보증금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뒤 임차보증금을 B씨에게 내면 이후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식으로 보증금 상당액을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인근 B씨 일가 소유 건물 중 한 곳에 수도요금 청구서가 쌓여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인근 한 건물 건물주 우편함에 “본인 외 절대 개봉 금지”를 알리는 신용 정보 관련 우편도 무더기로 꽂혀 있었다. 강한들 기자

세입자들은 계약 당시 부동산에서 ‘B씨가 일대에 건물이 많은 부자’ ‘집에 빚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금액은 B씨에게 소액’이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B씨와 그의 가족은 동대문구 지하철 회기역·외대앞역 인근에 다수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2022년 초부터 C건물에 사는 대학생 김모씨는 “지난 3월 말 만기가 되기 직전에 경매 통지서를 받았다”며 “계약할 때는 집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긴 하지만 근저당 금액이 전세금에 비해 적었고 B씨가 소유한 집이 많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관리비를 받은 B씨 가족은 수도요금을 제때 내지 않았다. B씨 일가 소유 주택의 수도요금 납부 현황을 보면 2021년 10월부터 수도 요금을 내지 않아 2000여만원 이상의 수도 요금이 미납된 곳도 있다. 통상 2년 계약을 하는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 시점에도 B씨가 자금난을 겪었으리라고 의심한다. A건물도 B씨가 건물을 소유하기 시작한 2021년 8월 이후 수도 요금이 계속 미납된 상태다.

세입자들의 불안은 점점 커진다. 지난 17일 B씨 가족이 소유한 건물 중 하나인 D건물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이미 여러 차례 압류가 들어왔다”며 “가끔 인터넷 연결 상태가 안 좋기만 해도 또 압류가 됐는지 수시로 등기부 등본을 떼 본다”고 말했다. C건물에 사는 대학생 딸을 둔 이모씨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도 않은 딸이 사기를 당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B씨 일가 소유 건물 중 한 곳에 B씨의 사무실이 차려져 있다. 한 세입자는 기자에게 “계약 당시 B씨가 전세 사기 우려가 커져서 직접 사무실을 운영하게 됐다고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강한들 기자

세입자들을 중개했던 부동산 중 일부는 폐업했다. 이모씨는 “규모가 큰 E부동산에서 계약했는데 당시 E부동산 중개사는 B씨가 소유한 건물을 줄줄 읊어서 B씨와 친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E부동산에서 ‘문제가 생길 리 없고 생기면 책임을 진다’고까지 말한 뒤 폐업을 해버리니 너무 괘씸하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고소장에도 “(부동산 측이) 과다 수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니, 빌라 임대를 중개한 공인중개사와 피고소인들과의 금전 관계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대상물의 거래상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된 언행을 해서 의뢰인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세입자 50여명은 정부에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신청을 마쳤다. 이중 다수는 피해를 인정받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건물의 건축주이면서 다수의 주택을 임대하고 있는 B씨가 본인 명의뿐 아니라 어머니, 누나, 배우자 등을 대리해 돈을 돌려줄 능력이 없이 임대하고 있어서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도 사건을 수사 중이다.

B씨는 지난 17일 경향신문과 만나 “자금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고 여러 사람을 만나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언론이 전세 사기 문제를 너무 확대해서 터뜨리니 전세 순환이 안 되고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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