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무너질 것”…의대 교수 사직 움직임에 폭풍전야
주 100시간 근무·15번 당직선 교수 “이러다 의사가 큰일”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병원 안팎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민법상 사직 효력이 발생하는 4월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은 언제든지 현장을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이날을 기점으로 직을 내려놓는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나 '실력행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은 이날부터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교수들의 뚜렷한 사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등 '빅5' 병원은 담당 의사의 사직으로 인해 외래진료나 수술 일정을 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달 전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도 이날까지 현장에 남아 진료를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기엔 남은 환자와 연구가 있어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한 수도권 대형병원 교수는 "병원과 대학에 함께 소속된 신분이면 당장 사표를 쓴다고 해도 바로 나갈 순 없다"며 "담당 환자들도 정리해야 하고 연구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마지막 외래진료를 끝으로 직을 내려놓는 교수들도 있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한 달 전부터 사직 준비를 해왔다"며 "담당 환자들은 전부 다른 교수들로 변경됐고 이들에게도 충분히 입장을 전달했다. 26일부터 본 병원에서 진료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년퇴임 생각없어…동료 교수도 '사직서' 품는다"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이 정부 압박용 수단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최 위원장은 "의대 교수는 임용 자체가 어렵고, 재임용은 더더욱 힘들다"며 쉽게 결정한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사직을 택한 이유는 세 가지로 꼽힌다. 주 80시간 이상 격무에 시달려 심신 안정이 필요하고 전공의 복귀 없이 업무를 지속하기 힘들며,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뒤 두 달간 주 100시간 근무, 15번의 당직을 섰다는 최 위원장은 "몸도 지쳤고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번아웃 증후군이 올 것 같다"며 "(휴식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의사들에게 크게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현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부회장(한림대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은 "대학병원 교수들은 (이번 사태로) 마음을 많이 다쳤다"며 "정년퇴임할 생각도 사라졌고, 주변 교수들도 사직서를 지니고 다닌다. 이대로라면 대학병원을 지원하는 교수들이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은 실질적인 사직 움직임이 8월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산하 소아신장분과 강희경·안요한 교수는 근무 종료 시점을 8월31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각자 사정이 있기 때문에 언제 사직을 하는지 특정할 수 없다"면서도 "교수들이 환자를 두고 촉박하게 사직 시점을 정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정부가 교수들의 복귀를 위해 진료유지명령 등을 내려 압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진료유지명령이나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은 법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면서도 "행정명령을 통해서 진료를 유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교수들을 의료 현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업무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막연히 '교수들은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외국처럼 중환자, 응급환자 위주로 대형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료진 집단 사직으로 인한 파장은 빅5에서부터 연쇄적으로 이뤄질 거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익명의 한 의대 교수는 "노동 강도가 높은 빅5 병원부터 천천히 무너질 것"이라며 "정말 위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으로 환자들은 동네병원에서 진료를 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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