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애도에 깊이 감사”…광주학살 알린 ‘앤더슨’ 기자 별세

한겨레 2024. 4. 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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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테리 앤더슨 기자를 추모하는 편지글
레바논 무장 집단에게 억류됐다가 약 7년 만에 풀려난 당시 에이피(AP) 통신 중동지국장 테리 앤더슨이 1991년 12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980년 5월 고립에 처한 광주를 찾아 5·18 학살의 진상을 세계에 알렸던 테리 앤더슨 전 에이피(AP)통신 기자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세상을 떴다. 당시 도쿄 특파원이었던 그는 5월22~27일 광주 현장을 취재해 전두환 반란세력이 숨겼던 사망자 숫자를 널리 알렸다. 이후 레바논 무장 세력에게 억류됐다가 1991년 12월 약 7년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원이 고인의 딸 술로메 앤더슨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보낸 위로의 편지와 딸의 답신을 싣는다.

친애하는 술로메 앤더슨 양에게

먼저, 부친이신 테리 앤더슨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아마 앤더슨 양은 내가 누군지 잘 모를 겁니다. 하지만 나는 테리 앤더슨을 통해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씩 당신이 쓴 중동 분쟁에 대한 기사를 읽는답니다. 시엔엔(CNN)에 가끔씩 출연하는 것도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한국 남서부 도시 ‘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기자였고, 지금은 은퇴 후 5·18 기념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합니다. 내가 테리 앤더슨을 만난 건 2010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서울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당시 테리 앤더슨은 일리노이대학의 저널리즘학과 책임자였는데, 학교의 기금 모금 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테리는 나에게 책을 한 권 선물로 줬습니다. 그가 1985년 레바논에서 7년 동안 헤즈볼라(레바논 무장 정파)의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겪은 일들을 기록한 책(‘사자굴’)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뛰는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80년 5월 광주항쟁 취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레바논으로 향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5년 뒤 그와 같은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테리 앤더슨, 80년 광주 국제 사회에 알려”

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무자비한 군사정권의 탄압에 맞서 10일 간 총으로 무장한 채 저항했습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자 시민군의 한 사람으로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 기간 테리는 광주에 와서 우리의 시위 활동을 취재하여 국제 사회에 소식을 알렸습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국내 언론을 강제 폐쇄했기 때문에 우리는 고립된 채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이피통신의 기자였던 테리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큰 힘이 되는 기사를 썼습니다. 아쉽게도 그때 나는 테리를 광주에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1980년 5월27일 AP통신의 테리 앤더슨 기자가 작성한 ‘광주진압’ 관련 기사. 문화체육관광부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제공

항쟁이 끝나고 17년이 지난 1997년, 나는 광주시민연대라는 모임을 만들어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취재했던 외국 기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책자를 발간하기로 하고 급하게 일을 추진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책의 편집 책임 역할을 맡았었지요. 미국 ‘볼티모어 선’ 특파원으로 80년 광주를 취재했던 브래들리 마틴에게 미국에 살고 있는 테리를 수소문해서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테리는 매우 기뻐하며 광주 항쟁 당시 취재하던 상황에 대한 기억을 자세히 적은 원고를 나에게 보내왔습니다.

테리의 원고를 읽는 순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랐습니다.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그가 취재했던 장소와 시각,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상세하고 생생했습니다. 엘에이 타임스의 샘 제이슨, 뉴욕 타임스의 헨리 스콧 스톡스, 그리고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의 노먼 소프, 독일의 엔디아르방송국 힌츠 페터도 모두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노먼 소프는 1980년 5월22일 내가 전남도청 상황실에 있을 때 나를 만나 직접 인터뷰한 사실도 있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5·18특파원리포트’(1997·풀빛)와 ‘광주항쟁(‘The Kwangju Uprising’·2000)이라는 훌륭한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앤더슨의 취재 원고로 ‘5월 특파원리포트’ 등 발간

그 후로도 나는 가끔씩 테리에게 이메일로 연락했습니다. 2017년 5월에 5·18기념재단은 유엔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의 영문판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테리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꺼이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엔 1980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장군도 참석했는데, 테리는 광주항쟁 당시 미국의 책임을 두고 위컴에게 날카롭게 따졌다고 들었습니다.

테리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1980년 광주에서 목격한 사실에 대해 진실하게 증언했고, 그의 증언은 오랜 세월 정부가 왜곡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온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광주는 테리가 기증한 광주항쟁 관련 기사들을 옛 전남도청에 세워질 기념관에서 영구히 보관하고, 전시할 계획입니다. 그가 쓴 글과 용기와 진리에 대한 믿음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한국사람들의 정신에 깊이 남을 것입니다.

테리 앤더슨의 딸 저널리스트 술로메 앤더슨. 술로메 앤더슨 사회적관계망 사진 갈무리

테리의 딸인 당신이 중동 분쟁을 취재하는 베테랑 기자로 성장한 것도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광주를 꼭 방문해 보길 바랍니다. 테리의 죽음에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합니다. 4월22일

다음은 술로메 앤더슨의 답장이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메시지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사랑했던 아빠의 죽음으로 마음이 산산조각이 난 상태입니다. 아버지와 저에 대한 광주와 대한민국 여러분의 친절한 애도와 사랑스러운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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