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만 생각하다 내수 망가질 수도···재정 적극적 역할해야”

임지선·김경민 기자 2024. 4. 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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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덕현 중앙대 교수(왼쪽부터),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지난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여다향에서 3고 장기화 우려에 따른 한국 경제를 주제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국경제가 환율·유가·금리가 고공행진을 하는 ‘3고’에 갇혀있다. 미국의 나홀로 성장세, 중동·우크라이나 등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 기후변화에 따른 먹거리 공급 불안 등 대외 변수가 녹록치 않다. 그나마 반도체 수출이 좋아 성장률 수치는 높아졌지만, 서민과 취약계층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22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과 함께 ‘3고 위기, 한국경제 어디로’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의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에만 집착하다가는 내수가 망가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대통령을 필두로 경제관료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만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두고는 의견을 달리했다. 류덕현 교수는 한시라도 빨리 추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김 센터장과 주 실장은 하반기를 기다려보자는 쪽이었다. 다음은 대담 전문.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평가하자면.

김학균 센터장(이하 김)=올해 성장률 수치가 개선되긴 했지만 생활에서 느껴지는 건 전혀 없다. 지난 10년간 내수가 구조적으로 좋지 않다는 건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잘 나가는 건 다행이지만 낙수효과는 매우 약해졌다.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했다. 유연하게 정부가 재정 정책을 쓸 필요가 있다. 경기 사이클로 보면 작년에 금리를 낮췄어야 하는데 미국보다 한국 금리가 낮으니까 그것도 못하는 상황이다.

주원 실장(이하 주)=3고는 외부 요인이다. 어느 정부가 들어왔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전임 정부 때 재정 부채가 컸으니 방향을 반대로 갈 수 있다. 재정건전성이 유효하지만 내수회복이 잘 안 되면 유연하게 재정기조를 바꿨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다. 내수가 안 좋다면 통화정책도 미국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을 할 법한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그런 말은 없다. 산업구조가 변하는 과정 속에서 신기술 투자는 못하고 있다.

류덕현 교수(이하 류)=통화정책은 제약 조건이 있고 운신의 폭이 좁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재정정책이다. 그런데 재정건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이미 작년에 경기 하강이 예견됐다. 지난해 추경을 했어야 한다. 국가 채무수준 50%를 넘지 않겠다는 기조가 있다보니 더 제약이 됐다. 지금까지 위기시점을 돌아보면 성장기여도에서 민간부문보다 정부가 더 높았는데지난해 1~2분기는 반대였다. 지금까지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요인이다.

-유가가 오르고 물가도 오른다.

류=우리나라는 물가가 낮은 국가에 속했는데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넘어섰다. 생필품과 식료품이 오르니 서민들이 어렵다. 단기적으로 물가를 관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수급 관리는 정부가 실패한 면이 있다. 유통 면에서는 적극 대처가 필요하다.

주=물가는 기대 심리다. 사회적 분위기를 잡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많이 소비하는 생필품 일부의 부가가치세를 일시적으로 면제해주는 파격도 생각해보자. 세수는 감소하겠지만 물가가 너무 높다는 인식은 꺾을 수 있지 않을까.

김=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이 물가를 연착륙시킨 적이 없다. 경제가 망가지면서 그 대가로 물가가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정책은 연착륙시키려고 하는 조치다. 대파와 같은 식료품보다 우리는 주거비 항목 부담이 크다. 실제 수치로는 주거비 항목이 미국에 비해 과소계산돼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안 잡히지만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다.

-환율은 달러당 1400원대를 찍고 내려와 1370~80원을 오가고 있다.

김=2008년 이후 원·달러 환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문제 때문에 원화가 약한 게 아니라 강달러 상황이라고 보는게 맞다. 고환율로 인한 플러스 마이너스 효과가 있지만 1~2년을 놓고 보면 마이너스 효과는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본다.

주=1300원대가 뉴 노멀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그 상태가 오래 가긴 하겠지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한국경제가 3~4년 사이에 크게 바뀐 게 없다. 1200원대로 내려가야 한다.

류= 어떤 상황이 교과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 ‘뉴노멀’이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고 우리도 따라 내리면 환율도 안정화될 가능성이 있다.

-고금리로 내수 부진이 크다. 금리는 언제쯤 내려야 할까.

김=결정적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금리는 내수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부채가 많은 상황이다. 부동산 문제는 감수해야 한다. 아무런 비용 지불 없이 (안정화가) 가능할 수는 없다. 부동산이나 가계부채 쪽에서 위험신호가 온다면 한은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주=국민계정 기준으로 올해 중 성장률이 나빠지는 분기가 있을 것이다. 그땐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은 소비나 투자가 버티고 있지만 둘 다 마이너스가 온다면 고려해야 한다.

류=미국과 금리가 벌어진 지 꽤 됐다. 역사상 가장 큰 금리 차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지 않는데 우리가 내릴 것인가. 재정당국은 통화당국을, 통화당국은 재정당국을 서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이 9월 안에 내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재정당국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총선 패배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 동력을 잃은 상황이다. 경제수장이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류=경제부처 장관들이 전면에 안 보인다. 3고 문제 등 대내외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책임자가 나타나야 한다. 경제부처 장관과 타 부처 장관들이 모여서 민생 텐트를 만들고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부터 비상하게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목표는.

주=내수에 신경써야 한다. 정부는 연초부터 수출이 좋다고 말하지만 반도체를 빼면 수출도 마이너스다. 수출이 좋은게 아니라 반도체 수출만 좋은 것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심각하다. 철강, 2차 전지, 자동차 대부분 마이너스다. 수출 경기 하나만 보고 있는데 수출 회복세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면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 내수가 받쳐줘야 하고, 재정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신경 써줄 주체는 정부뿐이다. 수출이 좋아진다는 데 너무 무게를 싣지 않는게 좋다.

-야당에서 추경 편성을 제안했는데.

주=아직은 섣부르다. 돈을 풀면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국회도 정리되어야 한다. 원 구성 마치고 한국경제 흐름을 봐야 한다. 다들 상저하고를 예상했는데 하반기 전망이 생각보다 나빠질 수 있다.

김=관성적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건 좋지 않다. 재정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하나하나의 결단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류=추경 해야한다. 정책적 여유를 가질 여지가 없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게 재정이다. 지금이야말로 정치적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회 원 구성 하고 나면 8월이 넘어간다. 빨리 해야 한다.

-재정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나.

류=전국민 재난지원금 말고 중위소득 계층 50%까지 줄 수도 있다. 광범위하게 서민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과 취약계층 복지지출을 두텁게 해야 한다. 지금은 실질적으로 취약계층 지원은 1조원 내외 밖에 안된다. 과감한 정책 시도도 필요하다. ‘1만원 무제한’ 교통 패스 같은 아이디어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국가채무 50% 넘으면 나라 망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국민 삶을 우선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저성장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주=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 못 따라가고 있다. 예전에는 ‘빠른 추격자’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조차 못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찾아야 한다.

김=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일본도 하다하다 안되니 관치로 들어간 것이다. 예전 잣대로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다. 거대담론으로 바꾸려고 하면 해결책이 있을까 싶다. 약간은 미시적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부처에 조언을 한다면.

김=경제 대책으로 한 방은 없다. 예전처럼 고성장을 할 수는 없다. 소소한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

주=정부가 너무 방어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확신이 서면 밀어붙여야 된다. 대외적 충격이 많지만 공격적인 경제 정책도 필요하다.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면 성과도 없고 국민들도 정부가 뭐하는지 모른다. 너무 겁내지 말고 틀을 벗어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류=올 초 민생토론회도 그렇고 정부 정책이 너무 갑작스럽게 나오는 게 많다. 기존 세제 기류와 다른 것들도 나온다. 원칙에 맞는 정책을 구상하고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 기재부가 책임감을 갖고 나가야 한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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