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와 AI: 고슴도치와 여우 [아서 하먼의 The High Tech Frontier]

2024. 4. 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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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해외 석학 기고글 플랫폼 '헤럴드 인사이트 컬렉션'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MIT 연구진은 양자 컴퓨팅의 노이즈를 잡아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MIT 양자 공학 그룹의 이 양자 센서는 다이아몬드에 있는 NV 센터를 기반으로 연구팀이 설계하고 제작했다. [ MIT 연구진 제공]

1953년에 출판된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Isaiah Berlin)의 유명한 수필 “고슴도치와 여우”는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는 그리스 속담을 인용한 책이다. 벌린은 이 이미지를 사용해 사상가와 창작자들을 두 진영으로 나눴다. 하나의 중요한 생각 또는 비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고슴도치와 동시에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여우로 말이다.

결국 둘 중 어느 짐승도 다른 짐승보다 우월하거나 더 낫지 않다. 벌린은 고슴도치에게 명확함과 정밀함이 있다면 여우에겐 민첩함과 다재다능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둘을 합쳐보자. 폭발적인 창의성과 힘을 보게 될 것이다.

얼핏 보면 오늘날의 AI는 인간의 판단보다, 심지어 인간의 눈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챗GPT와 생성형 AI 앱의 능력 덕분에 속담에 나오는 여우처럼 보인다.

ChatGPT 로고가 표시된 스마트폰이 컴퓨터 마더보드 위에 놓여 있다. [로이터]

반면, 현재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아이온큐 및 여러 회사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컴퓨터의 연산력을 높이기 위해 얽힌 큐비트 개수를 늘리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양자 컴퓨터는 꾸준히 느릿느릿 움직이는 고슴도치처럼 보인다.

따라서 AI는 세계 경제 전반에 산불처럼 퍼지며 우리의 삶과 경험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대규모 양자 컴퓨터의 일정은 훨씬 뒤처져 있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양자 컴퓨터가 인간의 삶의 질이나 경제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는 시점이 과연 도래하기는 할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젠 이 문제를 다른 각도, 즉 이 두 기술의 기저 물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때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실 AI가 천천히 움직이는 고슴도치이고 양자는 쏜살같이 달리는 여우다.

왜 그럴까? AI의 통찰력과 결론이 그 아무리 빠르고 즉흥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예측 가능한 디지털 연산 패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AI의 진정한 일꾼인 머신러닝(ML)은 심층 신경망 상태에서도 인간의 두뇌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 인간 두뇌의 복잡성을 기계적으로 모방한 모형에 불과하다.

반면, 양자 과학은 에너지와 현실의 가장 기본 단위인 양자로 구현된 자연 그 자체의 예측할 수 없는 풍부한 무작위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양자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사실 빛의 속도를 정의하는 것이 양자이다. 예측 불가능하고, 번개처럼 빠르며, 인간의 확실성이나 통제를 넘어선 영역에 존재하는 양자는 예측할 순 없지만 자연 및 그 자연 속 인류의 위치에 대한 모든 무한한 가능성을 포함한 미래를 그려낸다.

마이크로소프트 양자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자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AI의 토대인 모든 머신러닝은 음성이든, 이미지이든, 전기 펄스든 금융 거래 데이터이든 일련의 데이터 세트에서 패턴을 인식하는 컴퓨터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을 텐서(Tensor)라고 한다. 데이터가 텐서로 변환될 수 있는 한 그 데이터를 ML에 사용할 수 있고, ML의 더 복잡한 파생물인 딥러닝에 사용할 수도 있다. 딥러닝은 뇌 신경망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알고리즘을 만들고, 이를 통해 예측 모델을 구축한다. 딥러닝은 초기 모델을 수정하고 검증하는 다른 테스트 데이터 세트들을 사용하여 “학습”한다.

ML 운영자들이 개발하는 것은 과거 패턴 인식을 기반으로 한 예측 곡선이다.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모델이 더 좋아진다. 수만 개의 예시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패턴이 백만 번째 또는 천만 번째 예에서 갑자기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AI/ML은 마법이 아니다. 점점 더 커지는 데이터 세트에서 통계적 규칙성을 찾을 수 있는 대용량 통계 모델을 만드는 것뿐이다. AI/ML의 심층 신경망은 사람의 눈보다 이런 규칙성을 더 빠르게 포착할 순 있지만 그 과정은 여타 디지털 기술들과 다르지 않다.

필자는 AI/ML 물리학(과학이 아니라)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대조적으로, 양자 물리학은 매혹적이고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양자 컴퓨터의 힘은 물질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에너지 양자의 물리학에 달려 있다. 양자 과학자가 다양한 상태에서 즉각적인 계산을 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양자 기반의 비트, 즉 큐비트(Qubit)는 인간의 지시나 예측 가능성에 저항한다. 우리는 양자 연산 과정 중 무작위적이 되려는 큐비트의 고유한 경향을 “노이즈(잡음)”라고 부른다. (바로 이 속성 덕분에 디지털 난수 생성기와 달리 양자를 활용하는 암호화용 난수 생성기는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 무작위적이다.) 오늘날의 양자 컴퓨터는 매우 “노이즈가 많고,” 큐비트를 질서정연한 얽힘 패턴으로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시 말해, 양자 컴퓨터는 여러분의 질문에 대해 올바른 답변만큼이나 자주 잘못된 답변도 생성할 것이란 뜻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이 “노이즈”를 단점으로 본다. 물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양자에 의해 발생되는 “노이즈”가 양자 컴퓨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는 사람의 눈에서도 발생하는데, 광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백만 개의 양자가 혼란스러운 배열의 광학적 신호를 보내면 우리 눈의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는 패턴과 색상을 인식하기 위해 이를 분류해 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양자 노이즈는 자연과 생명의 일부이고, 이제는 미래 컴퓨터의 핵심적인 부분이 됐다.

바로 여기서 AI/ML이 도움이 될 수 있다. AI는 “노이즈”를 제거하고 민첩한 양자 컴퓨팅 프로세스에 의해 생성된 신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도록 도울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양자는 AI/ML이 실행하는 계산을 더욱 심화하고 또 정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자 컴퓨팅은 조합 최적화, 즉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 및 공급망을 할당하는 작업에 뛰어나다. 양자 컴퓨터는 이미 분자 시뮬레이션과 같은 복잡한 시스템의 행위를 모델링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행렬 대각화와 패턴 매칭 등 ML 작업을 향상하고 더 정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양자 컴퓨터의 능력은 수많은 데이터와 가능성 중에 가장 좋고 가장 빠른 해결책을 선별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여우와 고슴도치를 합친다면, 즉 양자의 빠른 능력과 AI/ML의 견고한 기반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합쳐진다면 그 결과는 놀라울 것이다.

일부 결과는 우려스러울 수 있다. 하이브리드 양자/AI 플랫폼이 RSA에서 AES에 이르는 공용 암호화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큰 소수를 인수분해할 수 있게 되면, 정부와 산업계가 모두 우려하는 “암호 관련 양자 컴퓨터(CRQC)는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결과들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 개발을 포함한 신약 및 생명공학 연구 방법론의 급속한 발전으로 생명을 살리고 삶을 향상시켜 줄 것이다. AI와 양자가 결합하면 주저함 없이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독성이 있거나 위험한 작업 및 재료를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산업용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주 영역에서는 양자와 AI가 함께 점점 더 혼잡해지는 지구 저궤도(LEO)에서 위성 트래픽의 통행을 원활하게 유도하고, 헬륨3과 같은 새로운 전력원의 개발을 가속함으로써 태양계 깊은 곳까지 우주 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우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원자력 추진 장치의 개발 정도는 일상적인 성취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또한 양자/AI 결합은 전력망에도 변화를 가져와 생산성을 높이고 더 안전하게 만들 것이며, 핵융합 등과 같은 분야의 발전은 흔한 일이 될 것이다.

요약하면, 다가오는 양자/AI 융합은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거대하고 더 생산적인 미래를 의미한다. 일단 우리가 어느 것이 진짜 고슴도치이고 어느 것이 여우인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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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인사이트 컬렉션 (Herald Insight Collection)
'헤럴드 인사이트 컬렉션(HIC·Herald Insight Collection)'은 헤럴드가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지혜의 보고(寶庫)’입니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배리 아이켄그린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 등 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뿐 아니라, 양자역학·인공지능(AI), 지정학, 인구 절벽 문제, 환경, 동아시아 등의 주요 이슈에 대한 프리미엄 콘텐츠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칼럼 영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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