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5.양평 이재효 갤러리

경기일보 2024. 4. 25. 14:3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각의 회색 건물 지붕에 우뚝 선 은빛 나무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양평군 지평면 초천리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에도 봄날의 싱싱한 기운이 충만하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재효 갤러리는 입구부터 환상적이다.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렁주렁 매달아 만든 터널을 연출한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허공에 달린 어둑한 터널 끝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나무가 새롭다.

양평군 지평면에 위치한 이재효 갤러리 전경. 자연을 주제로 하는 작가의 작품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국, 독일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 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나무와 돌로 빚은 치유와 휴식의 공간

작가는 일상의 사물을 신비롭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터널을 지나 매표소가 있는 2층 카페에 들어서면서 또 한 번 놀라운 풍경과 마주한다. 둥근 나무 공이 달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다. 부드러운 나뭇결이 살아있는 조각품이다. 이보다 흥미로운 풍경은 천장이다. 땅에 깔려 있어야 할 나뭇잎들이 천장에 가득하다. 돌이 허공에 달려 있고, 낙엽이 천장을 채우고 있는 낯선 풍경이 너무 재미있다. 이런 것을 ‘발상의 전환’이라 하리라. 과연 전시실과 다름없는 카페는 어떤 풍경일까? 주렁주렁 매달린 자갈돌이 커튼처럼 벽을 장식하고 있고 둥근 나이테가 가득한 나무 공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찻잔이 놓인 테이블도 조각품이다. 평일인데도 외진 시골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를 중장년의 관람객들이 줄지어 찾는 까닭을 알려주는 풍경이다.

제3전시장에 전시돼 있는 작품, 수백 개의 돌멩이를 줄로 매달아 기하학적인 공간감을 선사한다. 윤원규기자

카페를 벗어나면 2층 마당이다. 커다란 도넛처럼 생긴 조각품 사이로 붉은 나무 한 그루가 푸른 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돌멩이로 벽을 만든 돔처럼 둥근 공간이 있고 가운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잘린 아름드리 등걸에 고맙게도 새 가지가 돋아나 있다. 돌들이 꽃처럼 가득한 마당도 정겹고 사랑스럽다. ‘2전시장’ 문의 손잡이는 나뭇가지로 만들었다. 문을 여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십만 장을 꿰어 길게 늘어뜨린 갈잎 벽이다. 가을 숲길 같은 벽을 통과하니 나타나는 너른 공간에 UFO처럼 생긴 조각품과 백두대간처럼 힘이 느껴지는 조각품이 놓여 있다. 거칠게 톱질한 나무를 연결해 공룡의 등뼈처럼 탄탄하고 우람한 산맥을 연출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벽면의 한곳은 나뭇가지 더미로 채워져 있다. 나뭇가지들이 모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흥미롭다.

독특한 조각을 갤러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새집이 아파트처럼 설치된 작품. 윤원규기자

■ 모으고 모아 둥글게 둥글게

수천 개의 나무를 잘라 높낮이를 다르게 배치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둥글게 만 상수리잎 수만 개가 모여 연출하는 풍경도 사뭇 신비롭다. 제 역할을 마친 나뭇잎들을 모아 이처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이재효 작가의 상상력은 압권이다. 감탄사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전시실을 벗어나면 푸르른 자연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3전시장’으로 향한다. 산새들의 아파트일까? 새집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멋스럽다. 작은 정원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철사와 자갈로 벽을 장식한 전시장이 나타난다. 전시장 입구에서 작가 이재효의 화려한 경력을 알려주는 상장과 패널을 마주한다.

이재효 작가는 1997년 한국일보 청년 작가 초대전 대상 수상을 비롯해 1998년 문화관광부 제정 199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8년 오사카 트리엔날레 조각 대상, 2000년 김세중 청년조각상, 2002년 우드랜드 조각상, 2005년 일본 효고 국제회화공모전 우수상,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환경조각 작품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다. 전시장은 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크다.

독특한 조각을 갤러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물론 전시된 작품도 대작들이 많다. 둥근 고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조각이 관람객의 눈길을 압도한다. 자잘한 나뭇가지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두텁게 낙엽을 깐 바닥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갈색은 마음을 따스하고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저 강렬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꼬물꼬물 수백 마리의 벌레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휘어진 못이다. 휘고 갈린 못은 한글로 부활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나무에 박힌 못들이 노래를 들려주는 듯 물고기처럼 물결처럼 기둥을 채우고 있다. 반짝이는 못을 품고 있는 것은 그을린 5m 금강송이다. 작가의 가족과 스태프들의 가족 이름까지 못으로 심고 갈아낸 독특한 작품이다. 원형의 조각품은 무엇일까? 줄에 매달린 수백 개의 돌멩이가 빛과 어울려 연출하는 신비로운 풍경이 압권이다. 나뭇가지를 묶어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작품도 신비로운 빛에 감싸여 있다. 화투를 한 장씩 열을 가해 꽃잎처럼 구겨낸 뒤 붙인 부조는 몇 걸음 떨어져 보면 마치 장미꽃밭처럼 화사하다. 단순한 소재가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처럼 놀라운 작품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발한 실험과 상상력은 관람객을 빙긋 웃음 짓게 하고 연신 감탄사를 토하게 만든다.

독특한 조각을 갤러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자연에서 찾아낸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

나무 줄기를 모아 지구본처럼 둥글게 깎아 만든 거대한 나무 공, 이재효 작가의 작품들은 우아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 작품을 이루는 재료는 나무와 이파리, 못, 나뭇가지처럼 우리 주위에 널린 흔한 물건들이다. 역시 작가의 명성을 높여준 것은 나무 작품이다. 밤나무, 잣나무, 낙엽송의 분홍빛 속살에서 자연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못을 구부리고 갈아 글자들이 반짝이는 기둥이다. 나무에 새겨진 숫자는 얼핏 주민등록번호처럼 보인다. 0121-1110=112035, 0121-1110=1080815. 산수 문제처럼 보이는 글자가 사실은 작가의 이름이라니 놀랍다. 01은 ‘이’, ‘21-1’은 ‘재’, ‘110=1’은 ‘효’를 옆으로 누인 것이다. 그 뒤 숫자는 일련번호로 붙인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 곳곳에 뜻밖의 재미를 숨겨 놓았다.

철계단을 올라 들어선 ‘4전시장’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관람객들을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공간이겠다. 연필이 작품으로 변신했다. 깎은 색연필을 한데 묶고 잘라 붙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두꺼운 흰 종이에 칼날로 오려 살짝 들추면 2차원의 평면이 3차원의 입체로 변신한다. 오래된 책, 용접봉, 연필, 철판, 철사, 나뭇가지 등 버려지거나 보잘것없는 재료로 만든 작품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쓸모없는 것이 생명보다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진 작품으로 부활한 것이다. 창작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출한 드로잉을 만날 수 있는 ‘5전시장’은 더욱 친숙하고 편안하다. 포르텔 피아노가 놓인 전시장은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로 가득하다. 한 알의 씨앗에서 싹이 나와 거목으로 자라는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재효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나무 작업이다. 잔가지나 쓸모없이 버려진 나무 둥치들을 한데 뭉쳐 둥그런 원형으로 잘라낸다. 버려진 나뭇가지나 냇가의 돌멩이처럼 하찮은 소재를 고도의 집적을 통해 하나의 미술품으로 재탄생시킨 작가의 손길이 사랑스럽다. 작품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조형으로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거쳐야 했을까.

수사슴 모양의 조각. 윤원규기자

■ 풋풋한 시골의 감수성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다

이재효 작가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경남 합천군 가야면 출신이다. 해외에서 더욱 유명한 스타 조각가지만 무명의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 1992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5년간 작품을 한 점도 팔지 못했을 정도였다. 오롯이 한 우물만 판 이 작가는 이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 명성을 누리고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조각가 이재효의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의 나무 작품 ‘미로’를 비롯해 63빌딩, 여의도 메리어트호텔에서도 만날 수 있다. 미국 워싱턴의 파크하이엇과 라스베이거스 MGM호텔, 스위스 제네바 인터콘티넨털 호텔, 중국 파크하이엇, 독일 그랜드하이엇, 오스트리아 크라운 호텔 등 세계 유명 호텔에 작품이 설치됐다. 작가가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고백은 자연의 위대한 가르침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시골 논밭에서 뛰어논 감수성과 경험이 지금 제 예술의 모태가 됐습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