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망원경에 달린 ‘사진 쓰레기통’ 뒤져 존재 몰랐던 소행성 1000여개 찾았다

이정호 기자 2024. 4. 25. 1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NASA·ESA, 자원봉사자 1만여명과 AI 도움 받아
지구에서 3억8400만광년 떨어진 막대나선은하 ‘UGC 12158’를 찍은 허블우주망원경 사진. 은하 위에 노란색 곡선 형태로 소행성 궤적이 우연히 촬영됐다. NASA·ESA 제공

지구 고도 약 500㎞에서 1990년부터 우주를 관측 중인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을 과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노력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재확인한 결과, 지금까지 존재를 몰랐던 소행성 1000여 개가 새로 발견됐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 같은 긴급 상황에 사전 대비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쌓이게 됐다.

25일(현지시간) 호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얼럿 등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 소속 연구진이 허블우주망원경에서 수집된 사진들을 샅샅이 재확인해 새로운 소행성 1031개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실렸다.

연구진이 새로운 소행성들을 대거 발견한 것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저장장치에 담아 놓은 사진 가운데 3만7000여장을 꼼꼼히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는 소행성을 잡아내는 데 특화된 AI, 그리고 AI를 작동시키기 위해 교육받은 인력 1만1482명의 도움을 받았다. AI를 작동시킨 인력들은 천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 자원봉사자, 즉 ‘시민 과학자’였다. 이들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지구 관제소에서 지시받은 관측 목적대로 특정 천체를 촬영한 뒤 그렇게 생성한 사진을 저장장치에 장기 보관하는 시스템을 가졌다. 차곡차곡 쌓인 사진들은 차후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저장장치는 실질적으로 쓰레기통과 비슷한 셈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축적된 사진들에서 우연히 찍힌 소행성을 잡아내는 데 주력했다. 소행성은 행성이나 위성보다 작기 때문에 상당히 어둡다. 또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서 나타나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이 때문에 관측이 쉽지 않은데, 그런 문제를 허블우주망원경의 사진 쓰레기통을 뒤져 해결했다. 일부러 소행성을 겨냥해 사진을 찍으려 애쓰기보다 기왕 찍힌 사진에 잡힌 소행성부터 살핀 것이다.

연구진은 소행성이 우주를 계속 비행하기 때문에 허블우주망원경의 사진 속에서 기다란 줄과 유사한 궤적을 보여준다는 데 주목했다.

실제로 ESA가 허블우주망원경의 촬영 자료 가운데 공개한 사진을 보면 지구에서 3억8400만광년 떨어진 막대나선은하 ‘UGC 12158’ 사진 위에 부드럽게 휘어진 선이 찍혔다. 소행성 궤적이다.

‘UGC 12158’ 촬영이라는 목적을 중심에 놓고 보면 망친 사진이지만, 연구진은 이런 사진만 따로 모아서 지금까지 몰랐던 소행성들을 다수 발견한 것이다.

ESA는 공식 자료를 통해 “선이 구부러진 정도를 분석하면 지구와 소행성 간 거리, 소행성의 궤도를 추정할 수 있다”며 “사진에 잡힌 소행성 밝기를 지구와의 거리와 조합하면 소행성의 크기도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으로 인류는 기존에 존재 자체를 몰랐던 소행성에 대한 과학 정보와 특정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생기는 상황 등에 대비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ESA는 “이번 같은 연구 방식은 소행성 외에 다른 천체를 찾아내는 데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