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좋아 서울로 상경한 '시골청년'이 선택한 이 직업 [강홍민의 굿잡]

2024. 4. 2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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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원 영풍문고 종로점 북마스터
권기원 영풍문고 종로점 북마스터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에서 극중 ‘나영’의 직업은 서점원이다. 달동네 단칸방과 서점이 유일한 삶의 이동경로였던 그녀에게 유일한 해우소는 책이었다. 힘든 청춘을 보내는 그녀에게 책, 그리고 서점은 삶의 피난처이자 희망이었다. 극중 구두쇠 서점 사장 역시 직원들의 불만을 떠안고 있지만 그에게도 책은 삶의 끝자락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늘 그가 외치는 케케묵은 레퍼토리인 “책 속에 길이 있네~”는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극중 ‘나영’처럼 책이 좋아 시골에서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한 이가 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한 책 덕분에 국문학과를 전공하고 그 책을 쫓아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해 북마스터가 된 권기원 영풍문고 문학파트 팀장은 15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북마스터’의 직업의 세계를 들어봤다.

전 개인적으로 가끔 서점에 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매일 출근하는 서점 직원은 그렇진 않겠죠.
“처음 입사했을 땐 좋았죠. 좋아하던 책을 매일 볼 수 있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 국문과로 진학하고, 영풍문고 입사를 위해 무일푼으로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했으니까요.(웃음) 처음엔 일 하면서도 선배들 몰래 책을 훔쳐볼 정도였는데···지금은 일터예요.(웃음)”

15년 정도 되면 초심이 조금 덜 해지나 보군요.(웃음)
“전 좀 그런 편인 것 같은데요?(웃음)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책은 좋아합니다.”

보통 서점원에서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북마스터로 불리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쉽게 설명하면 서점 판매직원, MD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문학, 경제, 인물, 외국어, 아동, 자연공학 등 각 파트별로 담당직원이 나눠져 있고, 맡은 파트에서 판매된 도서를 주문하고 입고된 도서 정리가 기본 업무죠. 또 고객이 원하는 도서를 찾아주거나 추천하는 컨시어지(concierge) 업무를 비롯해 출판사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도서 큐레이션 서비스도 있습니다. 매월 진행되는 기획전 주제를 준비하고, 작가 사인회·북토크 및 이벤트도 저희가 기획하고 준비합니다.”

 

“책 물량 파악 및 정리, 고객응대·이벤트 기획 등 모두 서점원의 역할···매월 7~8개의 이벤트 기획해 연초 진행”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네요. 서점 이벤트는 주로 어떤 건가요.
“매월 이벤트가 바뀌는데요. 올 3월에는 영화 ‘듄’ 개봉에 맞춰 큐레이션 행사를 진행했어요. 서점 정문에 영화 하이라이트 장면이 재생되는 팝업 공간을 만들어 고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벤트였죠. 또 키워드를 지정해 도서 선별 큐레이션을 하기도 하고요.”

한 달에 몇 건 정도 이벤트가 진행되나요.
“보통 7~8개 정도 하는 것 같아요. 매월 기획회의를 통해 이벤트 주제를 정하는데, 이 주제 선정은 팀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게 특징이죠.”

기획했던 이벤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굉장히 많이 진행했는데요. 유명 문학작가들을 생일별로 구분해 진행했던 기획이 기억에 남아요. 작가 리스트를 뽑고 일일이 생일을 다 찾았거든요. 그 프로젝트를 할 때 자료를 찾느라 고생했는데 기억에 남네요.”

가장 인기 있는 파트는 어디인가요.
“문학이 독보적 1등이죠.(웃음) 아마 다른 서점도 마찬가지일 텐데, 특이한 건 서점 입지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어요. 저희 종로점의 경우 고급독자들이 많기 때문에 문학과 더불어 인문학, 경제·경영 비중도 높은 편에 속합니다.”

고급독자는 뭔가요.
“실제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죠. 보통 지점에 따라 책 구경을 하거나 시간을 때우려는 고객들이 많은 지점이 있거든요. 근데 저희 지점의 경우 실제 책을 구입하는 고객들이 많은 편이에요.”

문학·경제 등 직원별 파트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점장의 권한이에요. 어떤 분야에 적합할지 점장이 판단해 정합니다. 예컨대, 문학파트를 맡은 직원이 아동이나 다른 파트로 옮길 수도 있는데, 그것 역시 점장의 판단으로 정해지죠.”

 

“일일 500여 권의 책이 서점으로 입고, 유명작가 신작 입고날은 더 많아···매대 진열 등은 각 파트 팀장의 몫”



근무형태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보통 오전·오후반으로 나뉩니다. 오전은 9시 30분~18시 30분, 오후는 13시~22시까지 근무합니다. 도서 관리와 카운터 업무를 맡는 게 서점원의 일반적인 업무이고, 그날에 따라 입고된 도서를 매장에 진열 또는 창고에 정리하는 것도 일일 업무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하루에 책이 몇 권정도 들어오나요.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한 500권 이상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보통은 전날 판매된 책과 더불어 수십 종의 신간이 들어오는데, 행사가 있거나 유명 작가의 신작이 들어오는 날에는 물량이 더 늘어나죠.”

출판사에선 출간한 책이 잘 보이는 위치에 진열되길 원하잖아요. 진열순서 또는 매뉴얼이 있나요.
“사실 정해진 건 없고, 각 팀장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파트선임의 니즈대로 ‘이 책을 빼라, 빼지마라’ 선택하는 식이죠. 전 팀원들에게 오롯이 맡기는 편이에요.”

팀장은 어떤 기준으로 진열하나요.
“보통 유명 작가의 책이나 인기도서 위주로 노출을 시키는 편이에요. 그래야 잘 팔리거든요. 그리고 광고사(출판사)의 신간은 우선 배치하죠.”

어떻게 보면 중소 출판사의 책들은 메인 진열대에 설 자리가 없을 수도 있겠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소자본 출판사라든가 1인 출판의 경우에도 책의 퀄리티나 만듦새를 보고 노출을 시키는 편이에요. 반대로 다 그렇진 않지만 작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신간의 경우 책의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책들은 직원들이 걸러내기도 합니다.”



출판사와의 미팅도 많겠어요.
“출판사와의 소통도 저희 몫이죠. 보통 신간이 나왔을 때 홍보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반대로 저희가 출판사에 광고 영업을 하기도 합니다.”

광고 유치에 대한 부담도 있겠는데요.
“그렇죠. 지점별로 목표치가 있는데, 코로나19 땐 정말 힘들었죠. 당시엔 광고 유치도 그렇지만 오프라인 매출이 빠지는 게 눈으로 보였거든요.”

 

“영풍문고 본점 문학 분야 3만여 권의 책 위치 대부분 알 수 있어···출판업계의 상황을 잘 파악해야 매출과 연계”

영풍문고 본점에는 몇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나요.
“매번 달라지는데, 종로본점에는 전체 14만7557종(4월 기준)을 보유하고 있고, 그 중 문학 분야 2만8283종입니다. 문학 분야에 있는 웬만한 책은 제목만 들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죠.(웃음)”

보통 서점엔 책을 구입하러 가기도 하지만 자료수집이나 시간을 때우러 가는 분들도 있잖아요. 딱 보면 고객의 성향을 구분할 수 있나요.
“체류시간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죠. 책을 살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 반면에 한 자리에서 오래 있는 분들은 구입보다 독서를 위해 오신 분들이 많거든요. 특히 저희 본점의 경우엔 1호선과 연결돼 있어 연령대가 좀 높다는 특징은 있어요.”

북마스터가 갖춰야할 조건은 뭐라고 보시나요.
“책, 그리고 출판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외부의 이슈를 통해 베스트셀러가 만들어 지는데, 예를 들면, 정치·경제적 상황, SNS를 통한 추천도서나 원작을 다룬 드라마·영화 등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서점 밖의 상황을 늘 주시하고 있어야 하죠. 북마스터가 바깥상황을 모르고 책을 판다면 실적이 떨어질 테니까요.”

그럼 북마스터는 책을 잘 알아야 하나요.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책을 몰라도 서점원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면 일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직업적 장점은 뭔가요.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신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서점원만의 특권인 셈이죠. 또 하나 꼽자면 책을 취급하다보면 존재조차 몰랐던 책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어요. 숨어있던 책이 저만의 인생 책으로 다가오는 경우 굉장히 짜릿하죠.”

출판사와 친하면 읽고 싶은 책을 무료로 받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출판사에서 증정하기도 하고, 필요한 책이 있으면 부탁하기도 하고요. 그것도 장점이 될 수 있겠네요.(웃음)”

단점은요.
“생각보다 일이 많아요. 기본적인 서류업무에 직급별 처리할 업무, 그리고 각 부서마다 창고관리를 해야 하죠. 덤으로 책 먼지를 늘 마시게 된다는 단점도 있어요. 책이 좋아 서점에 입사한 분들 중에 환상이 깨져 나가는 분들도 더러 있어요.”

체력적으로도 부담될 수 있겠네요.
“저희는 근무시간 내내 서 있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통증을 늘 달고 살죠. 처음엔 통증 때문에 힘들지만 그것도 몇 년 지나면 적응됩니다.”

직업병이 있나요.
“집은 정리하지 않더라도 매장 내 책은 정리를 해야 마음이 편안해져요. 종종 다른 서점을 가곤 하는데, 거기서도 책이 정리가 안 돼 있으면 자연스레 정리를 하는 버릇이 있어요.”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오프라인 서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프라인 서점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개인적으론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이유는 오프라인 공간을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찾아주시는 고객들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온라인으로 책 구매가 늘었지만 그런 분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책을 구입하길 원하시거든요. 무엇보다 열혈독자가 존재하는 한 서점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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