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차별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김시원 객원기자 2024. 4. 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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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곤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인터뷰

치안이 좋은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야간 산책’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밤 10시가 넘어도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 지난달 르완다 개발 협력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중곤(53·사진)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종족 간 갈등으로 100일 동안 100만명이 사망한 1994년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의 트라우마를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고 했다.

-제노사이드를 경험한 나라가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다는 게 놀랍네요.

“내 가족, 내 친구가 목숨을 잃는 참혹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그 어떤 나라보다 높아요. 정부 차원에서도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그간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유엔(UN)과 국제사회도 적극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고요.”

김종연 객원기자

-여러 국가가 르완다에 ODA(공적 개발 원조)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개발도상국에서 사업과 투자가 잘 이뤄지기 위해 선행돼야 할 조건이 몇 개 있어요. 첫째가 ‘안전’이에요. 또 하나 중요한 게 ‘행정의 투명성’입니다. 르완다는 지방까지 행정력이 골고루 미치는 나라예요. 경찰부터 지방 공무원들까지 투명성이 확보돼 있어 개발 협력 사업이 효율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출장은 어땠나요.

“현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라코제’입니다. 르완다 말인데 ‘고맙습니다’라는 뜻이에요.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무라코제’ 하며 인사해 준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반가워하는 이유가 있겠죠.

“굿네이버스가 르완다에서 아이들과 주민들을 도운 지 올해로 30년이 됐습니다. 제노사이드 난민 긴급 구호로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한국 후원자들과 연결된 결연 아동 수는 1만 1300여 명. 굿네이버스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을 모두 합하면 10만4500명이 넘습니다.”

-30년간 한 나라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요.

“르완다 면적이 경상도 크기예요. 국민의 75%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산지와 언덕이라 농사지을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굿네이버스가 주력하는 사업은 농촌 개발 사업이에요. 200만평이 넘는 땅을 개간해 농지로 바꿨습니다.”

-규모가 상당하네요.

“대규모 사업이죠. 개간한 땅이 여의도 면적과 비슷하니까요. 주민들이 여기에 옥수수, 감자, 콩, 바나나를 재배해 소득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르완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업이지만, 사실은 아이들 때문에 시작한 사업이에요. 애들 학교 보내려고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개간 사업을 한다?

“굿네이버스는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사명을 가진 단체예요. 아동의 권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교육받을 권리입니다. 그런데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이들이 ‘노동력’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이 노동에서 벗어나 학교에 다니려면 가정 경제가 안정돼야 하는데 가족 단위의 지원 사업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족 단위의 사업으로도 안 되고, 마을 단위로도 부족해요. 적어도 한 주(州) 단위의 광범위한 개발 사업이 일어나야 지속 가능성을 만들 수 있어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200만평 규모의 농촌 개발 사업이 일어나면 생산이 증가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직업의 기회가 생겨납니다.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런 구조가 마련돼야 한 가정이 지속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됩니다. 아동의 권리도 지켜질 수 있고요.”

-르완다의 농촌 개발 사업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나요.

“주민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어요. 기본적인 생계가 가능해지면서 자립 기반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교육권을 보장받는 아이들도 늘었겠네요.

“학교에 다니게 되면 교육만 받는 게 아니라 영양식도 받을 수 있어요. 굿네이버스가 르완다 학교 18곳에 여학생들을 위한 ‘소녀 공간’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것도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소녀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르완다에는 여성들의 생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존재해요. 여학생들이 위생 관리를 할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공간이 학교에 없어서 생리 중에 결석하는 여학생이 많습니다. 잦은 결석이 학업 포기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소녀 공간이 마련된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여학생들의 결석률이 평균 73% 감소했다고 해요. 이번 출장 때 소녀 공간이 설치된 학교도 살펴보고 왔습니다.”

김중곤 사무총장은 “굿네이버스의 모든 국제 개발 협력 사업은 궁극적으로 아이들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설립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존중’입니다. 존중은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죠. 사람이 태어날 때 자기가 태어날 나라, 가정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지 않습니까. ‘랜덤’이죠. 그러니 그것 때문에 누군가의 삶이 결정돼선 안 됩니다.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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