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40시간 근무합니다"… 발달장애인 대명씨는 9년 차 직장인

최지은 객원기자 2024. 4. 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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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김대명씨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설립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동그라미파트너스에서 9년째 일하고 있다. 클리닝센터에서 주 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대전=김종연 객원기자

발달장애인 김대명(28)씨는 매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 6시 50분 통근버스를 탄다. 업무 시작은 8시. 점심시간에는 여느 직장인처럼 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잠시 쉬다가 오후 근무를 시작한다. 퇴근은 오후 5시다. 요즘엔 퇴근 후 헬스장에서 PT를 받고 있다. 월급이 나오면 부모님께 한 달에 30만원씩 용돈도 드린다.

대명씨가 일하는 곳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2015년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한국동그라미파트너스다. 대명씨는 대전 대덕구 클리닝센터에서 한국타이어 공장 직원들의 근무복과 수건을 세탁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6년 11월 취업을 했으니 올해로 벌써 9년 차다.

동그라미파트너스에는 대명씨와 같은 장애인 직원이 전체 직원의 절반을 넘는다. 157명 중 84명이 장애인이다. 이들은 한국타이어 판교 본사와 대전공장, 금산공장 등 5개 사업장에서 세탁과 세차, 제빵, 바리스타, 사무행정 등의 업무를 한다. 2016년에 입사한 장애인 39명 중 26명이 지금까지 일하고 있을 정도로 근속 연수도 길다. 천진우 동그라미파트너스 운영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가깝게 지내면서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 근속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회식이 기다려져요”

지난 15일 방문한 클리닝센터에서는 건조기에서 막 나온 수건을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명씨를 포함한 직원 대여섯명이 넓은 테이블에 둘러 서서 각자 수건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세탁기에서 나오는 열기로 작업장 온도가 후끈했지만 한눈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대명씨도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위쪽 모서리 각을 맞춘 다음에 아래쪽 각을 맞추면 돼요. 중간에 한 번씩 꾹 눌러줘야 안 쓰러져요. 이제 노하우가 생겨서 1분에 20개 넘게 정리할 수 있어요.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요. 보세요, 저 진짜 빠르죠?”

클리닝센터에서는 하루에 의류 3000장, 수건 1만6000장을 세탁한다. 클리닝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직원들이 각자 집에 가서 근무복을 빨아와야 했다. 지금은 클리닝센터 직원들이 작업복을 수거해 세탁 후 현장으로 배송까지 해준다. 클리닝센터가 생기면서 한국타이어 직원 복지도 좋아진 셈이다.

이런 점은 대명씨에게도 큰 자부심이다. 그래서 항상 일을 더 잘하고 싶다. 대명씨는 평소 조장님이 말한 내용을 틈틈이 휴대폰에 적어두고 집에 가서 다시 읽어본다. ‘수건 양이 적으면 건조기 세 대, 많으면 네 대에 나눠서 넣는다. 앞으로 그렇게 하자.’ ‘세탁기에 수건 넣을 때 밑에 끼는지 확인한다. 앞으로 그렇게 하자.’ 이렇게 써놔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단다.

업무 외에도 대명씨는 회사와 관련된 일정이 많다. 대명씨 휴대폰 캘린더에는 회식, 사내동아리 모임, 연차 일정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퇴근 후에 볼링동아리 동료들과 볼링을 치러 간다. 점수별로 상품도 걸려있는데, 대명씨는 얼마 전 2등을 해서 컵라면을 받았다. 종종 회식도 한다. 주로 무한 리필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오전 근무 반 직원들도 회식에 참석하려고 저녁때 다시 회사로 올 정도로 직원들은 회식을 좋아한다. 대명씨는 “안 친했던 직원들과도 밥 먹으면서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재밌다”며 “많은 사람이 같이 먹으면 고기가 왠지 더 맛있게 느껴져서 회식이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회사가는 게 싫다고 하는데 저는 출근을 매일매일 해도 재밌어요. 일도 재밌고, 식당 밥도 맛있고, 카페에서 팀장님이 사주는 커피도 맛있거든요. 근데 다음 달에는 하루 연차 내고 쉴 거예요. 개인적인 스케줄이 있어요. 쉴 땐 또 쉬어야 해요.”

이곳 클리닝센터 직원은 총 37명. 장애인 23명과 비장애인 14명이 함께 근무한다. 비장애인 직원은 대부분 40·50대 여성이다. 이 직원들은 20·30대 장애인들을 자녀처럼 돌봐주고 챙겨준다. 장애인 직원이 일을 하다가 그다음엔 무슨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실수했을 때, 다음 순서를 알려주고 빈틈을 메꿔주는 역할을 맡는다. 천진우 팀장은 “비장애인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서로 배려하면서 일할 준비가 됐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어 “작업장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야 장애인 직원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안전사고도 나지 않는다”며 “앞으로 동아리를 추가로 만드는 등 분위기를 더 활력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작업장 설립 초기에는 조용한 통근버스에서 장애인 직원이 큰 소리로 떠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많이 퍼가는 등 특이한 행동을 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고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설립 9년 차가 된 지금은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장애에 대한 직원들 이해도도 높아졌다. 이제 그런 민원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합’이 좋은 직원을 뽑는 법

한국타이어는 장애인고용률이 높은 기업이 아니었다. 2015년에는 당시 민간기업 장애인 의무고용률 2.9%를 달성하지 못해 고용부담금 17억원을 냈다. 장애인 고용 의지가 있어도 고용률을 당장 높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제도를 알게 된 한 임원의 제안으로 사업이 본격 추진됐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클리닝센터 설치에만 25억원, 베이커리 설립에 6억원, 카페 조성에 1억원 등이 들었다. 장애인고용공단은 시설 설치비용 10억원을 무상 지원했다.

더 큰 문제는 채용이었다. 직무에 적합한 장애인 직원을 구할 루트가 없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채용의 어려움을 장애인 고용의 장애물로 꼽는다. 고용노동부와 장애인고용공단의 ‘2023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장애인 채용이 쉽지 않은 이유로 업무능력을 갖춘 인력의 부족(16.5%), 장애인 지원자가 없어서(12.7%),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부족해서(10.1%) 등을 이야기 했다.

장애인고용공단은 동그라미파트너스에 취업 알선 서비스를 제공했다. 동그라미파트너스는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운영하는 직업능력개발원,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맞춤훈련센터 등에서 취업 교육 과정을 이수한 장애인을 39명을 클리닝센터와 베이커리 등에 고용했다. 추가 채용도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공단은 취업 준비를 마친 장애인을 사업장에 파견해 3주 동안 직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일종의 ‘수습기간’인 셈이다. 천진우 팀장은 “전문가도 20분 남짓한 면접만으로는 장애인이 잘 적응해서 업무를 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을 받아 사업자와 장애인 근로자가 장기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을지 각자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진 후 정식으로 입사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장애인고용공단은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기 위해 장애인 고용 컨설팅도 실시하고 있다. 사업체를 방문해 기관 특성과 조건에 맞는 장애인 고용 가능 직무를 발굴하고, 맞춤형 장애인 고용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2022년에는 대기업전담팀을 신설해 52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했다. 그 결과 2023년에는 총 388명의 신규 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평균 장애인고용률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300개 대기업으로 컨설팅을 확대할 예정이다.조향현 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은 “앞으로 대기업 장애인 고용컨설팅을 확대하는 등 더 많은 양질의 신규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더 많은 기업이 공단의 맞춤형 고용컨설팅을 통해 ESG 경영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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