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한겨레 2024. 4. 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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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85)
수련의들 목소리는 누가 들을 것인가
현재 상황을 만든 것이 일단 수련의이고 학생이라면, 어리다고 훈계할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만난 문제들에 대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한다. 서울 한 대학병원의 신입 전공의 모집 공고. 연합뉴스

4월22일, 서울대·울산의대 교수들이 진료를 1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서울대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 전원이 8월 말까지만 진료하고 모두 사직할 예정이니 환자들에게 다른 병원을 찾아볼 것과 그에 관한 지원을 제공함을 공지하였다. 교수들의 이런 결정은 의료 제도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이 일절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대한 실망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더는 현재 진료 환경 및 노동 강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좌절의 표출로 이해해야 한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 차관은 14일만에 브리핑을 하면서 마무리 발언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래간만에 브리핑을 드렸습니다. 왜 브리핑을 나오지 않느냐 이런 질문도 있으셨는데 (…) 왜냐하면 최근에 통계 상황이나 이런 것들이 초기와는 달리 숫자가 굉장히 안정적이고 변화가 잘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브리핑할 필요성이 조금 떨어져서…” (유튜브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

4월22일 발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공의 사직 이후 의료 환경에 변화가 있었으나 현재는 안정되었다(정부 발표). 이것이 가능한 것은 교수들이 억지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고, 이들은 현상이 더는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교수 발표).

의료진의 좌절, 피로, 소진이 누적되는 것은 그 자체로 환자와 사회에 위험한 일이다. 1989년 미국에서 수련의의 수련 및 노동 환경을 규제하는 벨 규제(Bell regulations, 한국의 전공의법과 유사하다)가 발표되었던 이유는, 뉴욕의 한 병원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가 수련의 개인의 잘못이 아닌, 과도한 노동과 피로로 인한 제도적 오류라는 최종 확인 때문이었다.

의료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갈아 넣어선 안 된다. 이는 의료 사고를 증가시키는 지름길이며, 의료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제일 원인 중 하나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정부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

의대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이루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자신들이 희생하는 것처럼 포장하며 자신들이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가 대변하는 국민에는 환자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들이나, 희소 질환 등 대형병원에서밖에 관리할 수 없는 질환군은 ‘통계’에 들어가지 않으니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통계만 있고 개인의 관점이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이런 사안 인식은 기계나 과학을 대할 때는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과 의료에선 안 된다. 개인을 쥐어짜서 만드는 의료 체계도, 개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의료 제도도 옳지 않다.

문제는 이런 현장의 상황이 지금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의대증원’ 사안의 시초도 이런 개인에 대한 무시에서 나왔다. 당장 수련의 문제다.

2월20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담긴 박단 전 대전협 회장(왼쪽)과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수련의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번 2024년의 상황이 이전 의료 관련 사안들과 구분되는 점은 누구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행위자 중 누구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집단적인 쟁의행위를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말해서, 파업이라면 누군가 주도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수련의와 학생들은 소위 ‘자발적’ 사직과 휴학을 택했다. 이들을 설득한 이가 누구이든 간에, 대표의 결정에 따라 집단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개인 각자가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결정했다는 뜻이다.

여러 공적 담화나 개인적인 경험을 참조할 때 수련의들이 요구하는 것은 처우 개선이다. 예컨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터뷰나 공적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박단, 류옥하다 수련의의 발화는 수련의의 수련 실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오래 묵은, 사실 해결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주어지지 않았던 문제지만 정부의 의대증원 논의로 터져 나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오랜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난을 참으면 더 나은 미래가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지금, 이 약속이 깨어지고 있다. 예컨대 대학을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성공의 보장으로 이해되었고, 학생들은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시간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받았다. 취직, 결혼, 주택 구매에서도 사람들은 참을 것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선 어떠한가.

예컨대 저출생을, 현생에만 집중하는 생활 양식을 엠지(MZ) 세대의 특징이라고 비난해선 안 된다. 그것은 그저 미래 없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불이 수련의들에게 떨어진 것이다.

특히 이들은 그런 삶의 양식에 익숙하다. 나도 그랬다. 대학 입시 전엔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공부하라는 압박에 시달렸고, 입학 다음에는 졸업해서 의사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며 공부와 실습을 견뎌야 했다. 그 다음에는 수련의였고 강사직이었으며, 지금은 조교수로 주어지는 강의, 연구, 학교 일의 압박과 부담을 집안일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나는 감내할 일이라고, 또는 내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은 더 편한 미래를 약속하며 이 일들을 할 것을 요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지금 수련의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보장이 흔들린다. 이것을 단지 돈 많이 버는 이들의 밥그릇 싸움이네, 투정이네, 말도 안 되는 요구네 하며 무시해선 안 된다. 지금 자리를 잡은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렇게 보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수련의이고, 삶에서 의사면허 취득 외에는 아무것도 확정 짓지 않았다. 심지어 의사라면 받는다는 역대 연봉을 받아 본 일도 없다. 그저 미래에 그런 것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지금을 희생하고 있었을 뿐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월20일 연 전공의 임시대의원총회 현장. 백소아 한겨레 기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이 말하려는 것은?

의사 수만 단순히 늘리는 것은 의료 서비스 증가를 위한 직접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전체 보건의료 체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대증원이라는 정부의 선택은 그저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의료 제도 전반의 변화를 불러온다. 그리고 뒤바뀐 미래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미래 세대다. 예컨대 지금 수련의다.

무엇이 바뀌는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가깝게는 급여부터 시작해서, 고용 안정성이나 심지어 의사직의 대우, 사회적 위치, 역할까지 모두 다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의사 수 및 의료 제도의 변화다.

수련의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고령화 사회 돌봄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핵심에서, 그것이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미래에 더 낮은 보상을 개별 의사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정부가 공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수의료 영역이나 일차의료 영역은 지금도 제대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예상되는 결과는 분명하다. 주로 필수 영역의 미래를 약속하는 수련을 받을 이유는 사라지고, 빨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선택을 하도록 정부가 부추긴 셈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통령 담화를 떠올려 보라. 의사가 늘어나도 그들에게 수입 보장을 약속한다며 대통령이 말한 것은 의료 산업과 해외 진출이었지, 현행대로 진료할 때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의료계 안에는 오랜 불안감이 있다. 가까운 예로는 드라마 ‘내과 박원장’이 있다. 웹툰 원작인 이 작품은 원래 현직 의사가 필수과 개업의의 현실을 한편으로 비관하고, 한편으론 희화화하면서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이 초기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살리고 싶지만 현실은 당장 빚을 갚는 데 전전긍긍하며 진료를 사업으로 보아야 하는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의사 개인의 모순된 현실이었다.

약간 과하게 말하면, 의료계는 양극화되어 있다. 시장 질서 속에서 경영과 홍보, 이익 창출을 위해 노력하며 많은 돈을 버는 데 초점을 맞추는 집단이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미용·성형계나 실비보험과 얽힌 몇몇 영역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쪽에는 어려운 데다가 당장 경영도 안정되지 않는 필수계가 있다. 정부가 필수와 지방을 강화한다면서 숫자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면, 간단히 말해 불안정하고 위험한 자리만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보장이나 약속 없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가.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현재 수련의들에 대한 분석이지 의사 일반에 대한 분석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집단, 대형병원을 지탱했으나 이제 일할 동력을 상실한 집단은 바로 이들 수련의다.

의대증원이 어떻게 타결된다고 해도, 이들이 돌아올까. 솔직히 나는 심지어 의대증원이 무효화된다고 해도 필수과 수련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도 필수과를 전공하는 이들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억측은 아닐 것이, 이미 기초의학 분과는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수련의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가 잘못되었기에 그들은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가. 비어 있는 의과대학 교실. 와이티엔

싸움 한편에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나는 다시 물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수련의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정부나 사회, 심지어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것을 ‘파업’이라고 진단했기에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다. 수련의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가 잘못되었기에 그들은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가. 이들 중에는 돌아오겠다는 이들과 돌아오지 않겠다는 이들이 나뉜다. 무엇이 이들을 가르는가.

문제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의대증원이나 의료개혁의 시의성이나 적절성, 또는 그 진행을 따지는 것과 현재 사안은 별개의 문제다. 문제에 맞지 않는 해답을 내고 있으니, 전혀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과 투쟁 구도로 이 문제를 끌어가려 한다. 하지만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을 싸움으로 인식하니 보건복지부는 자꾸 대표가 누구인지, 단일안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물론 싸워서 관철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300명일지 500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의학 교육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의사 수가 어느 정도 늘어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도 하나의 싸움이, 협상과 협의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기에 상대방은 필요하다.

하지만 수련의가, 또는 학생이 그 상대인가. 정부가 급하게 수련의의 처우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솔직히 무엇을 말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수련의 급여를 국가보험이 감당할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들에게 힘든 수련 이후의 보상을 약속할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그것이 어떤 개선안이긴 한가.

의대증원 문제는 계속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에 관해선 의협이 주장하는 의정 단독 협의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정부안은 현재 환경에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관련 사안들은 계속 함께 검토되어야 하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모두가 승인할 수 있는 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한국의 의료 위기 핵심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전문의 중심으로 삼차 의료기관을 재편한다고 해도 그것은 연착륙의 대상이지 지금 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장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대형병원들의 상태는 실로 위험하고, 이를 정상화하지 않을 때 진짜 위기가 벌어진다. 그들이 감당해 왔던 환자들을 대신 받아줄 기관이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선 수련의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투정을 부리는 대로 받아주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누구도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불안이 있으며 두려움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생각과 염려, 주장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만든 것이 일단 수련의이고 학생이라면, 어리다고 훈계할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만난 문제들에 대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한다. 그다음에야, 그들에게 이런 부분은 잘못이었다고, 전문가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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