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알차다… 제철보다 ‘봄철의 맛’ [이우석의 푸드로지]

2024. 4.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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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봄 바다 별미’ 주꾸미·도다리
3~4월 쌀같은 알 품는 주꾸미
특유의 야들야들한 식감 좋아
피로해소 효과 ‘타우린’ 듬뿍
숙회·샤부샤부·볶음으로 즐겨
겨울 산란기 거친 ‘봄 도다리’
뼈 약해지고 살 부드러워져
실제 제철 가을엔 횟감으로
봄엔 쑥과 함께 국거리로 딱
위 사진은 각종 재료를 우린 육수에 주꾸미를 넣어 데쳐 먹는 전남 장흥군 ‘삭금쭈꾸미’의 샤부샤부. 아래는 복국처럼 맑은 탕으로 끓여내는 경남 통영시 ‘동해식당’의 도다리쑥국.

봄은 유혹의 계절임이 틀림없다. 눈부시게 화사한 색색의 꽃망울과 아지랑이 가득한 신록의 들판, 그리고 비취 옥색으로 빛을 발하는 봄 바다에 과연 넘어가지 않을 이가 누구일까. 내려와 꽂히는 뜨거운 여름 햇볕도, 조각조각 부서질 거친 겨울 한파도 없다. 하릴없이 마음이 들뜨고 괜스레 싱숭생숭해질 때 ‘봄’을 갖다 붙인다. 춘수(春愁), 춘심(春心), 상춘(傷春), 향춘(享春) 등. 옛날부터 괜히 춘(春) 자를 이런 뜻에 쓴 것이 아니었다.

봄날의 음식도 우리를 유혹한다. 산과 들에 연두색으로 차오르는 상큼한 나물이며 남새는 물론, 바다에도 봄소식이 전해온다. 보고 듣기만 해도 당장 군침이 흐르고 배가 불러올 봄의 유혹이 아니던가. 다만 오랫동안 기다려 온 반가운 계절의 등장이라, 오해까지 곁들인 ‘화려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야 마는 것이 함정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동방횟집’에서 가지런히 썰어낸 도다리 회.

봄 바다의 별미는 주꾸미와 도다리다. 이들은 봄에 가장 인기 많은 해산물이지만, 따져보면 사실 봄이 아닌 가을이 제철이다. 봄날의 스타, 주꾸미와 도다리의 명성을 감히 망칠 의도는 아니다.

우선 주꾸미. 두족류 문어과 연체동물인 주꾸미는 거개 ‘쭈꾸미’라 부른다. 짜장면처럼 언젠가는 ‘쭈꾸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갯벌을 깊이 파고드는 뻘낙지나 바위틈에 숨어 사는 문어와는 달리 주꾸미는 얕은 바다 밑바닥에서 산다. 종류도 다양하다. 대가리가 골무처럼 아주 작은 것부터 웬만한 작은 문어만 한 것까지 크기나 생김새가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 서해와 남해의 연근해에 두루 서식하는 습성 탓(?)에 많이 잡힌다. 특히 3∼4월 봄에 반투명한 밥알 같은 알을 가득 품는 까닭에 각종 매체에 ‘봄 별미 주꾸미’로 소개되며 큰 인기를 모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주꾸미는 봄이 제철이 아니고 가을에 성체가 되었을 때 가장 맛이 좋다. 그리고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산란기를 앞둔 봄날에 많이 소비되는 것은 개체 보존에 악영향을 준다.

예전에는 많이 나던 식재료였으나 요즘은 예전만큼 잡히지 않는다. 남획으로 어획량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알배기’ 주꾸미를 대량으로 포획한 탓이 크다. 이러다 명태 꼴 날까 싶어 근심이 되는 어종 중 하나다. 가을이 제철이지만, 봄 주꾸미가 영 맛없는 허드레는 아니다. 특유의 부들부들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는다. 주야장천 ‘알배기’만 찾아다니지 않으면 된다. 꼭 밥알처럼 생긴 주꾸미 알은 신기하긴 하지만 뭐 꼭 달려들어 먹어야 할 만큼 맛있지도 않다.

전남 장흥군의 해산물 식당 ‘불금탕’의 명물 주꾸미 요리.

작지만 감칠맛이 뛰어난 주꾸미는 그대로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숙회), 샤부샤부, 볶음 등으로 즐겨 먹는다. 예전에 흔하고 값쌀 때는 중국집 우동이나 짬뽕에도 많이 넣었다. 서해안에선 잡히지 않던 오징어(살오징어) 대신, 또 비싸서 쓸 수 없던 갑오징어의 대체재로도 썼던 것이다. 갑오징어는 주꾸미와 생태가 비슷하며 서식 환경이 겹친다. 말이 대체재라지만 실제로 살이 부드럽고 적당한 탄력까지 갖춰 다양한 요리에 두루 어울린다.

국물용이 아니라 볶음을 해도 식감이 좋다. 뜨거운 국물에 푹 익히는 것보다 살짝 볶으면 식감이 좋다. 요즘 시중에는 오징어가 하도 비싸 오징어덮밥 대신 주꾸미를 볶아 얹은 덮밥 등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방이 거의 없어 맛 자체가 담백하니 기름진 삼겹살과 곁들이면 퍽 어울린다.

대부분 횟감이 아니라 익혀 먹는 까닭에 주꾸미는 보통 살아 있는 상태로 유통하지 않는다. 전남 장흥군 득량만을 비롯해 충남 보령시 무창포, 태안군 몽산포, 서천군 등이 주요 집산지이며 이들 지역에선 활어 상태의 주꾸미를 맛볼 수 있다.

주꾸미는 작지만, 그 안에 품은 영양가는 뛰어나다. 주꾸미에는 ‘쓰러진 소도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낙지보다 많은 100g당 1305㎎의 타우린이 함유되어 있다. 타우린은 피로 해소와 자양강장제로 쓰이는 영양소다.

‘봄 도다리’의 정체(?)도 알아보자. ‘봄 도다리 가을 전어’가 된 것은 순전히 ‘도다리쑥국’의 지명도와 인기 때문이다. 해쑥과 도다리를 넣어 끓여 먹는 도다리쑥국이 봄날의 별미인 것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사실 도다리는 가을에야 제철을 맞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살을 찌우고 겨울 산란기를 거치고 나면 ‘몸을 막 풀고’ 매우 허약해진 상태다. 뼈는 약해지고 살은 부드러운 상태다. 그래서 횟감이 아닌 국거리로 먹는 것이다. 국거리로서는 제철이 맞는 셈이다.

이름부터 봄 내음 물씬 풍기는 봄동 배추 역시 실은 겨울에 나는 것으로 3∼4월 봄 시즌부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때는 월동 배추인 봄동 대신 ‘결구배추’를 수확한다. 이름에 속은 기분이다. 아무튼 어쨌거나 ‘봄’ 자가 붙은 먹을거리의 유혹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개체 감소가 걱정되고 입맛에 죄스럽다면 그저 알배기 주꾸미를 피하고 도다리의 시원한 국물에 맛을 들이면 될 일이다. 대신 반대급부로 봄철에 제철이 아니라던 것이 의외로 봄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겠다.

흔히 연말 겨울에 맛있어 찾는 대게는 4월에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대게는 대개 허물을 벗으며 몸집을 키우는데 허물을 벗기 전엔 먹이를 전혀 먹지 않아 수율이 낮아진다. 대게는 2∼3월에 허물을 벗는다. 이때 막 허물을 벗은 ‘홑게’가 나온다. 이후 부지런히 먹어 살을 꽉꽉 채운 4월 대게는 수율도 좋고 값도 싸서 대게를 즐기기에 딱 좋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으니 찾아가면 겨울보다 대접받고 더욱 잘 얻어먹을 수 있다.

황태도 그렇다. ‘얼었다 녹았다’에 방점을 두면 으레 겨울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출하 시기는 4월부터다. 겨우내 숙성시킨 단백질 덩어리인 햇황태의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을 때가 봄이다. 햇황태가 좋은 이유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원래 건어물이란 오래 묵을수록 잡내를 빨아들여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까닭에 새로 출하한 황태 본연의 향기는 이때만 느낄 수 있다.

성미 급한 봄은 곧 지나겠지만 봄날의 맛은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강렬한 봄날 먹거리의 유혹엔 간혹 인간의 오해가 낳은 오류가 섞여 있다지만 사실 그리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제철이 아니라도 식성에 따라 더 맛있게 느낄 수도 있다. 주꾸미와 도다리, 대게와 황태 등 2024년 새봄에 즐겨보는 맛의 추억은 세상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오래도록 남을 테니 말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 나정순할매쭈꾸미 = 서울 용두동 주꾸미 골목의 인기 노포. 본관과 별관을 나눠 자리가 꽤 있는데도 늘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주 매콤하게 무쳐낸 주꾸미를 주물로 뜬 번철에 볶아 먹는 집. 입안이 화끈해질 정도로 매운 가운데도 주꾸미의 식감과 감칠맛이 살아 있다. 서울 동대문구 무학로 144. 1인분 1만5000원.

◇ 교동집 = 역시 칼칼한 고추장 양념에 볶아내는 주꾸미로 유명한 집. 베트남산을 쓰지만 회전이 좋아 사철 탱글탱글한 주꾸미를 맛볼 수 있다. 매운 양념에 잘 어울리도록 냉동 삼겹살을 곁들여 ‘쭈삼’으로 많이 먹는다. 삼겹살 기름이 더해지며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매운맛을 가실 요량으로 주문하는 묵사발도 맛있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08. 1만5000원.

◇ 삭금쭈꾸미 = 주요 산지답게 주꾸미를 잘하는 집이 많다. 읍내에 있는 삭금쭈꾸미는 각종 방송 및 SNS를 타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맛집. 버섯과 건어물 등 각종 재료에 우린 육수에 큼지막한 주꾸미를 넣고 샤부샤부로 데쳐 먹는 방식이 기본인데 볶음과 숙회, 무침 등 다양한 양념으로도 맛볼 수 있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물레방앗간길 14. 볶음 4만 원부터.

◇ 불금탕 = 토요시장에서 각종 해산물을 내는 집. 소고기와 가금류 등을 다양한 해산물과 접목한 탕, 볶음 요리도 전문이다. 주꾸미의 경우 데침과 무침, 볶음으로 요리해 주는데 일단 그 크기에 먼저 놀란다. 작은 문어만 한 크기의 주꾸미를 다양한 맛으로 배 터지게 즐길 수 있다. 마무리로 양념에 볶아낸 볶음밥도 빼놓을 수 없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1길 53. 시가.

◇ 동해식당 = 도다리쑥국의 본향은 역시 통영이다. 경남권에서 많이 먹는 가정식이지만 통영의 향토요리로 퍼진 덕이다. 주메뉴부터 찬까지 철저히 통영식으로 내는 향토식당으로 복국처럼 맑은탕으로 끓인 도다리쑥국에 솥밥과 다양한 반찬을 차려낸다. 볼락 등 제철 생선을 바삭하게 구워주는 생선구이를 곁들이면 더욱 풍성해진다. 경남 통영시 동충4길 54. 1만8000원.

◇ 동방횟집 = 경남 일대 대부분의 맛집들이 요즘 다 그렇듯 도다리쑥국을 낸다. 부드러운 살을 시원한 국물과 함께 떠서 한술 떠넘기면 향긋한 봄 내음이 입에서 떠날 줄 모른다. 맑은 탕은 역시 관록과 요리 기술이 중요하다. 시그니처 메뉴 격인 가오리조림도 유명하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원로 20.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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