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분신 방조범' 됐던 형틀목수, 1년 만에 무혐의 받았지만… [스프]

원종진 기자 2024. 4.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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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고 양회동 분신 방조' 무혐의 받아든 건설노조원 홍성헌 씨 인터뷰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소속 양회동 씨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앞 잔디밭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사망했다. 그런데 2주여 뒤인 5월 16일, 분신 상황이 찍힌 CCTV 화면 사진이 유력 일간지인 <조선일보>에 실렸다. 유족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없었다. 기사에는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는 제목이 달렸다.


기사의 파급은 거대했다. '노조 운동을 위해 죽음을 이용한다'는 취지의 댓글이 삽시간에 수천 개 달렸다.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연일 엄포를 놓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SNS에 기사를 공유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곧이어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는 분신 현장에 있던 건설노조원 홍성헌 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공갈 협박'이라는 혐의가 붙은 피의자라고는 하지만, 분신한 이의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 뒤의 '음모론'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유력 언론과 최고위 공직자를 매개로 유포된 그 의혹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1년이 지난 뒤, 분신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기획 분신' 내지는 '분신 방조' 의혹을 받은 홍 씨는 경찰로부터 혐의가 없다는 통보를 받아들었다. 홍 씨의 정신과 육신은 무너졌으나, 그 누구의 사과도 없었다. 유력 일간지와 국토장관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던 언론들은, 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홍 씨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엔 인색했다. <더스피커>는 아직은 그날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홍 씨에게 어렵사리 인터뷰 승낙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의 목소리를 자세히 전한다.

"동네 후배를 분신 방조하는 놈이 어딨습니까"

Q. 사건 당시 언론과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고 양회동 씨와 홍 씨의 관계를 건설노조원-민주노총 간부로 묘사했다.

A. 제 고향이 속초 아야진이에요. 그리고 회동이가 교암 사람이에요. 바로 옆 동네죠. 그러니까 우리 후배라고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친구들끼리 이렇게 해보니까 우리 학교도 동창이더라고요. 그리고 나보다 학교로는 한 7년 후배고 또 걔네 큰형이 우리 동창이에요.이름이 회동이, 특이하니까 제가 그냥 희동이 희동이 이렇게 불렀어요.

회동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가 당적(黨籍)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에요. 고향에서 먹고 살게 사실 속초는 마땅치 않으니까 노가다 하면서 먹고 살았는데, 진짜 우리는 그냥 뭐라 그래야 되나... 좀 막말로 노가다 대우 안 받고 그래도 이런 단체에 들어오면 막말로 '당신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 소리는 안 듣잖아요. 옛날 노가다가 그래요.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노조 한 거고 아시다시피 또 강원도가 노조 생긴 지가 그렇게 오래 안 됐어요. 그렇게 살기 위해 들어간 단체인데 뭐 단체가 시켜서 분신을 하라고 한다고요? 그런 일이 세상에 어떻게 있습니까?

Q. <조선일보>는 분신 당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고, 국토교통부 장관도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A. 사건이 있던 날에, 제가 그 친구 전화가 와가지고 거길 갔어요. 갔더니 벌써 거의 이성을 잃었더라고요. 내가 이런 얘기는 잘 안 했는데, 회동이가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하는데, 그냥 눈이 완전히 갔어요. 제가 "형하고 저 안에 들어가자. 라이터만 놓고 형이 판사 만나게 해줄게 가자" 별말을 다 했어요.

그다음에는 기억이 다 조각나서 사실 정확하지가 않아요.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 말에 의하면 불이 붙는 순간 내가 뒤로 팍 넘어가서 주저앉았다 그러더라고요. 진짜 기억이 그때 잘렸어요, 막. 그런데 몇 분 동안 뭘 하고 있었냐고요? 응, 나 보고 뭐라 그랬던가, 왜 그냥 거기 있었냐. 그러면 몸에 뿌리고 라이터를 들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딱 당기면 끝인데 그럼 내가 그럼 설득하는 게 먼저지 그사이에 어디 소화기를 찾으러 갔다 와야 되나요? '니 잠깐 있어. 내가 소화기 가지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있어' 이렇게 해야 되나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고향 후배가 죽는데 그거 보고 있을 놈이 어디 있어요?

낙인이 찍히고 악마가 돼버렸다

Q. '음모론'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나?

A. 진짜 애들이 나한테 인터넷 글 올라온 거 보지 말라고, 내가 그때 워낙 상태가 안 좋을 때니까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댓글을 보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잘난 노조 조끼 벗어갖고 빨리 꺼야지' 이런 댓글이 막... 제가 오죽했으면 <조선일보> 기자한테 전화했겠어요, 술 먹고. 그때 내가 그랬어요. "인간적으로 당신은 그냥 진보 보수를 떠나서 진짜 묻고 싶은데 아직도 내가 분신 방조를 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제가 언제 그렇다고 했습니까?'. 그래서 진짜 생각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걸 기획하고 방조를 한 의혹이 있다는 이런 글을 쓰면 그냥 글 하나 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거 당하는 사람은 장난 아니거든요. 제가 이거를 겪고 연예인들이 극단적인 선택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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