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마시며 암(癌)을 이긴다”

윤성철 2024. 4. 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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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현 대한해부학회 전 회장, 차(茶) 이용한 새 임상 모델 꿈꾸다

차(茶, tea)가 단순 기호품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1930년대부터다. 일본에서부터 시작됐다. 차가 몸의 면역력 증강은 물론 통증을 없애주는 항(抗)염증, 항산화(抗酸化) 작용까지 한다는 숱한 논문들이 쏟아졌다,

최근엔 차의 항암(抗癌)효과가 주목을 받는다. 폴리페놀, 다당류, 테아닌 같은 차의 주요 성분들이 암 예방하는 효능이 크다는 것이다. 암세포가 새 혈관(신생혈관) 만드는 것을 막는다는 연구도 나왔다.

그렇다면 병원에서의 '표준암치료'의 사전, 사후에 차가 역할을 할 공간이 생긴다. 대한해부학회 회장을 역임한 유영현 전 교수(동아대 의대)가 은퇴 후 암 환자들과 차담(茶談)을 나누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

평생 기초의학자로 살아온 유영현 전 교수는 요즘 차를 통해 암 환자들을 돕는 새 치료법에 골몰하고 있다. [사진=유영현 제공]

"우리 몸은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를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그 ATP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7가지 조(助)효소(coenzyme)가 필요해요. 그런데, 차 안에 그런 조효소가 6가지나 들어있다는 겁니다."

수술이나 항암제, 방사선치료 받느라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 있는 암 환자가 몸을 추스르는데 차가 특별한 효능을 발휘하는 이유다.

평생 기초의학 해오던 그가 숙원사업으로 꼽은 일은...

그는 장수(長壽)와 직결된 미토콘드리아 연구와 세포사(死) 연구의 국내 권위자. 세계적인 SCI급 학술지에 200편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 공로로 대한의학한림원 정회원도 됐다.

유 교수는 "일본에서 실험을 해보니, 작은 찻잔 10잔, 커피잔으로 치면 5잔 정도만 매일 차를 마셔줘도 몸의 기능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라고도 했다.

여기에 지난 2020년, 연세대 의대는 차 관련 의학 논문 64편을 메타분석 해보니 차가 11가지 암 발생률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특히 구강암은 38%나 낮춰주고, 유방암(25%), 담관암(23%), 자궁내막암(22%), 간암(13%) 발병률도 낮춰준다 했다.

암 환자는 대개 몸이 차다. 특히 배 쪽이 차다. 그런데 차를 마시고 30분쯤 지나면 배가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차가 소화기 상피세포 미토콘드리아에 조효소들을 공급하면서 발열(發熱)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배뿐 아니라 등까지 따뜻해지면서 땀이 나기도 하는 것은 그래서다.

"특히 ATP 신생은 암 환자에겐 정말 중요합니다. 그 ATP가 우리 몸의 모든 활동에 에너지를 주니까요. 근육운동, 신경운동, 소화기능, 뇌기능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실 차를 오랫동안 마셔왔다. 물 대신 차를 마신 차력(茶歷)만 벌써 20년째.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온갖 차를 가리지 않았다. 한때 책장을 가득 채웠던 논문들과 장서들을 밀쳐내고 지금은 그 자리를 차로 채웠다.

유영현 교수가 차담을 나누는 곳은 그가 평생 몸담았던 동아대병원 인근 앨앤더슨병원(병원장 김호용). 수령 80년 넘은 삼나무, 편백나무 무성한 구덕산 입구여서 '숲치료'와 '차치료'를 겸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차(茶)치료는 정년 퇴직하면 그가 꼭 해보려 했던 숙원(宿願)사업.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 숲치료와 차치료로 암 환자들 새 희망 찾아

"암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기 쉬워요.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대학병원 주치의는 그런 암 환자의 속마음까지 헤아리기엔 여력이 없죠. 대학병원 외래 현장은 너무나 바삐 돌아가니까요."

반면, 암 환자는 물어볼 게 너무 많다. 자기에게 왜 그런 암이 생겼는지, 치료받으면 나을 수는 있는 건지…. 하지만 외래 진료 '3분짜리 문답'만으로는 그런 궁금증을 풀기 너무 어렵다. 설사 들었다 해도 이해조차 쉽지 않다. 암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도 수두룩하다.

그가 앨앤더슨병원에서 매주 열고 있는 차담회. 옥상 창문 너머로 동아대병원이 보인다. [사진=유영현 제공]

그는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동안, 시간은 천천히 흘러갑니다. 이 시간이 암 환자들에게 특히 중요한 심리적 안정을 선물하지요. 저는 평생 기초의학을 공부한 사람이잖아요? 암이 생긴 원리라든지, 왜 이 치료제를 쓰는지 등을 설명해 드릴 수 있죠. 게다가 저는 6년간 분석심리학을 경험한 적도 있어요. 환자 마음마저 살펴 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표정들이 다시 밝아지더군요."

그게 차담의 특별한 가치다. 어쩌면 대학병원 주치의들이 미처 하지 못한 ▲암 예방법 ▲치료 과정의 몸 관리 ▲암 재발 방지, 거기다 ▲암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까지 곳곳의 공백들을 두루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암 치료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기전(長期戰)이죠. 저와 함께 차담 횟수를 늘려갈 때마다 환우들 몸과 마음에서 생기는 변화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차를 통한 '암 심리치료'라고나 할까요. 사이코온콜로지(Psycho-oncology)에 새로운 임상 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 교수는 평생 해온 기초의학, 이론의학을 뒤로 하고 이젠 차와 의학을 융합한 '생활의학' 현장으로 막 진입했다. 그의 손에서 파이펫(Pipette)은 떠나보냈지만, 그 대신 '찻잔'이란 새로운 실험도구가 자리잡았다.

"차 권하는 의사"의 새로운 시도가 구덕산 숲치료와 더불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해낼 수 있을지 궁금한 것은 그 때문이다.

윤성철 기자 (syoo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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