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네팔!] 밀린 숙제 같던 메라피크에 오르다

조진수 네팔·히말라야 전문 사진가 2024. 4. 2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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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곤·마칼루BC~셀파니콜·메라피크 등정
콩메딩마 포카리와 메라피크 전경.

11월 16일_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낙석사고

겨우 서너 시간 잤을까. 몸은 무겁지만 좀 나아진 느낌이다. 해발 5,000m대에서 야영하면 깊은 잠을 자기는 어렵다. 자다가 깨기를 반복해서 피로가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스태프들의 사정 역시 비슷하다.

메라피크 베이스캠프(5,350m)로 향한다. 작은 고개를 넘자 콩메딩마 포카리가 나타났다. 규모가 꽤 크고 아름답다.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촬영했다. 아쉽게도 호수가 얼어 있어 설산의 반영은 담지 못했다.

급경사 언덕을 내려가자 로지가 나타나고,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낙석 지역을 지났다. 네팔은 지형상 산허리에 길을 내는 경우가 많다. 산길을 걷다 보면 낙석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 돌이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뚜렷한 대책도 없다. 낙석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피해서 갈 뿐이다. 네팔 고산에는 이런 위험한 길이 부지기수다. 현지인들은 운명을 신에게 맡기고 산길을 오간다.

메라 베이스캠프를 향해 오르는 스태프들.

멀리 메라피크를 등정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하이캠프에서 야영하고, 새벽 2시경 출발해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한다. 늦어도 오전 안에 하이캠프까지 내려올 수 있다고 한다.

오후 2시경 메라피크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참고로 우리처럼 콩메딩마를 경유하는 코스는 극히 이례적이다. 고테 - 탕락·카레를 경유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카레에서는 하이캠프로 직행도 가능하다.

파브르 공항에서 쬬뜩 근처까지는 지프 운행이 가능하다. 쬬뜩에서 고테를 지나 카레에 당도하려면 도보로 4~5일쯤 걸린다. 단기간에 메라피크(6,476m)를 등정할 수 있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

고소에 적응할 시간이 넉넉하다고 볼 순 없다. 참고로 젊고 건강하다고 고소의 위험성을 얕잡아보면 절대 안 된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가능하면 몸이 고소에 충분히 적응하길 기다렸다가 등정하기를 권한다.

내일은 7명만 하이캠프로 올라간다. 등정 3명, 지원 4명이다. 나머지 스태프들은 카레로 내려가서 휴식하며 대기한다. 하이캠프로 가져갈 장비와 식량을 꾸리고, 스태프들의 짐을 재분배한 후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겼다.

작은 티하우스에서 우리 팀과 프랑스 팀이 어울려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산에서는 쉽게 가슴이 열린다. 서로 간에 이해타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돌아가면 열렸던 가슴은 다시 닫히고 만다.

인간의 마음은 이곳 날씨처럼 천변만화한다. 스스로 짓고 부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산은 변함이 없다. 언제나 다가오는 사람을 묵묵히 품어준다.

메라피크(6,476m) 정상에서 벰바 셰르파와 같이

11월 17~18일_살인적 추위 속에 정상으로

메라 하이캠프로 향했다. 심하지 않은 너덜지대로 완만한 경사길이다. 메라 라까지는 20분쯤 걸린다. 고갯마루에서 녹아내린 물이 거대한 고드름 커튼을 만들었다. 커튼의 높이는 30m, 폭은 150m는 넘어 보인다.

메라 라(5,415m)를 넘어서면 눈과 얼음의 세계. 경사도는 30도 이상으로 판단된다.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고, 고글은 필수다. 눈에 반사되는 자외선은 강렬해서 육안이 장시간 노출되면 설맹에 걸릴 수 있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으나 셀파니콜이나 웨스트콜에 비하면 위험은 훨씬 덜한 편이다. 무엇보다 빙벽을 타는 구간이 없다. 위험은 적고, 걸어서 등반할 수 있다는 점이 메라피크의 가장 큰 매력이다.

5,000m대 산을 두루 경험한 사람들이 다음 단계로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소에 대한 대비는 철저해야 한다. 며칠 전 이곳을 찾았던 말레이시아 여성이 고소로 인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오 무렵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전에는 자유롭게 텐트를 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현지인들이 2인용 텐트를 쳐놓고 사용료를 받고 있다. 1인당 35달러이다. 워낙 협소해서 달리 텐트를 칠 만한 장소는 없다.

메라 하이캠프에서 바라본 메라피크를 오르는 사람들.

다음날 새벽 2시경에 메라피크 등정에 나섰다. 캄캄한 밤이라 헤드랜턴에 의지해 올라간다. 나와 클라이밍 셰르파, 벰바 셰르파는 로프로 서로를 연결했다. 누군가 크레바스에 빠지면 나머지 두 사람이 구조해야 한다.

세 명이 연결되어 있어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매서운 찬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온다. 양편에 간간이 크레바스가 있고, 길은 그 사이로 이어진다. 클라이밍 셰르파에 의하면 길이 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계속 오르막길이다. 경사도만 자주 바뀔 뿐이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바람은 더욱 강해졌다. 새벽 5시경 정상 밑에 도착해서 약 1시간 동안 해뜨기를 기다렸다. 동상이 걱정될 정도로 살인적으로 추웠다.

여명이 밝아와 정상에 올랐다. 남쪽은 5,000m대의 고만고만한 산으로 구름이 짙게 끼어 있었다. 동쪽은 초오유,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칸첸중가 등 해발 8,000m를 넘어서는 고봉들의 파노라마다. 바렌체도 가깝게 보였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피켈을 아이스에 박아서 몸이 날아가는 상황을 방지하고, 등정 인증 사진만 얼른 찍고 내려왔다. 하이캠프로 내려와 지원조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 카레로 향했다.

셀파니콜과 메라피크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숙제와 같았다. 몸은 만신창이 되어 걷기 힘들 정도였으나 마음은 그야말로 후련하고 개운했다.

메라 하이캠프지 앞의 아이스지대 풍경.

11월 19일_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단잠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긴 단잠을 잤다. 어제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정신없이 잤다. 하이캠프와 메라피크를 경험한 직후라 카레에서는 고소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누적된 피로가 조금은 해소되어 몸이 가볍다.

카레(5,045m)는 밤에도 전등불이 환하다. 자가 수력발전 시설을 가동하기 때문이다. 로지 10여 채가 성업 중이고, 하이캠프를 오가는 소형 헬기까지 뜨고 내린다. 헬기는 나이 많은 유럽인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카레에서는 베이스캠프를 거치지 않고 하이캠프로 직행할 수 있다. 메라피크 등정을 안내할 클라이밍 셰르파들이 상주해서 빠른 섭외가 가능하다. 고소에 적응을 완료한 사람들은 대부분 직행하는 편이다.

메라 라에서 본 카레마을 전경(5,045m).

카레를 뒤로 하고 탕낙(4,356m)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이다. 출발할 때는 햇빛이 산에 가려 응달진 곳이 많다. 쌀쌀하고 어두워서 새벽길을 걷는 착각마저 든다. 고도를 낮추고 햇빛을 받자 따스함이 느껴진다.

탕낙에 도착했다. 마을 앞 드넓은 초지에는 돌이 수북하다. 수년 전 위쪽의 호수가 범람하면서 굴러 내려온 돌들이다. 물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높은 지대로 대피했으나 가축들은 일부 희생되었다고 한다.

탕낙을 지나 동굴곰파를 방문했다. 벰바 셰르파에 의하면 티베트에서 불상 등을 가져오던 사람이 이 동굴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다음날 길을 떠나려고 했으나 불상이 꿈쩍도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동굴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서으레에 있는 티하우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짐을 나르는 노새와 쬬빠, 마부들로 붐볐다. 카레와는 멀고 고테와는 가깝다. 내려오는 짐꾼과 올라오는 짐꾼이 모두 시장기를 느낄 만한 좋은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고 내려가는 길의 오른쪽 산에서 돌이 떨어진다. 히말라야는 원래 바다였다가 융기한 지역이다. 흙에 묻혀 있던 크고 작은 몽돌이 빗물에 드러나면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바람만 불어도 돌이 떨어진다.

야마일로다라 로지 전경.

갑자기 스태프들의 휴대폰이 바빠졌다. 고테(3,691m)에서 전파를 받고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테에 도착했다. 과거에 방문했을 때는 로지 몇 채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큰 마을로 변해 있다.

우리가 묵을 고테의 로지는 카레 로지 주인의 형이 운영한다. 점심을 먹었던 티하우스도 집안사람이 운영한다고 한다. 마칼루 B.C와 비슷한 사례다. 트레커가 증가하는 추세에 발맞춰 나름 성공한 사람들이다.

고테·탕낙·카레·하이캠프·메라피크는 비교적 짧은 시간과 저렴한 비용이 장점이다. 고소 적응을 한 중급자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11월 20일_아기자기한 히말라야 저지대의 매력

고테를 떠나 차타랄라로 향했다. 계곡을 왼쪽에 두고 산길을 걷는다. 밤색의 산양 떼가 경사가 심한 너덜지대를 내려가 계곡으로 피한다. 아마도 우리의 기척을 감지한 모양이다. 덩치 큰 수컷이 침착하게 무리를 이끈다.

툴루둥가(4,300m)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벰바 셰르파가 현지인에게서 귀가 솔깃한 정보를 입수했다. 쬬뚝 위쪽에 길이 뚫려서 차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차타랄라 방향은 이틀 걸리고, 쬬뚝은 하루 반나절이면 가능하다.

고테마을에서 만났던 라마승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티하우스/초르덴과 법당을 새로 만들고 있다.

시간 절약을 위해 쬬뚝으로 방향을 틀었다. 컨디션 난조로 뒤에 처진 5명의 포터가 문제였다. 의논 끝에 클라이밍 셰르파와 라마승 망갈자를 남겨두었다. 포터들을 기다렸다가 밥을 먹이고, 뒤쫓아 오도록 했다.

이곳부터 산이 깊어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큰 통나무 다리를 지나면 다시 오르막이다. 쬬빠 두 마리는 무거운 등짐을 지고도 험한 길을 잘도 걸어간다. 쬬빠는 소와 야크의 교잡종으로 야성이 거의 사라졌다.

부라스다라 티하우스에서 잠시 쉬어간다. 부근에서 여러 마리의 노란목도리담비가 뛰어놀고 있다. 몸무게는 3kg 정도로 작고 귀여워 보이나 실상은 치명적인 포식자다. 30kg가 넘는 동물을 거뜬하게 사냥하는 독종이다.

티하우스 하나를 더 지났다. 히말라야 흰꼬리원숭이 수십 마리가 텃밭에서 수확하고 남은 야채를 뜯어먹는다. 쫓아내면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숲의 먹이가 부족해서다. 인간이 숲을 잠식하면서 생겨난 불편한 장면이다.

야마일로다라(능선)로 향했다. 깎아지른 급경사의 산을 올라야 한다. 바라만 봐도 기가 질린다. 티하우스의 주인과 계곡에서 쬬빠를 몰고 가던 마부는 넘어가려면 두 시간쯤 걸린다고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스태프들은 짐을 짊어지고 있어 시간이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옷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초콜릿과 비스킷, 볶은 옥수수 등을 먹어가며 힘을 냈다. 스태프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발을 옮긴다.

저녁 6시경에 헤드랜턴을 켜고 캄캄한 밤에 야마일로다라에 도착했다.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오래 걸은 날인 것 같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휴대폰 소리가 소란스럽다. 전파를 받고 메시지 음이 계속 딩동딩동 울려 댄다.

지프 3대를 불렀다. 내일 오전 11시에 쬬뚝 위쪽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파브르 공항까지 가는 데 대당 2만5,000루피(한화 30만 원)를 달란다. 너무 지쳐버렸다. 차를 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히말라야 저지대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간다. 현지인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 고산과 달리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11월 21일_지프 2대를 20명이 나눠 타고

온몸이 뻐근하다. 잠을 푹 잤는데도 말끔히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운전사와 약속한 장소까지 가려면 세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아침 6시에 출발했다.

경사가 심한 길을 지그재그로 한참을 내려갔다. 카르카가 나온다. 2007년에는 목동이 사용하던 돌집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로지가 들어서 있다. 트레커의 방문이 늘어나자 현지인들은 상업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

카르카를 지나자 작은 계곡에 물레방앗간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때마침 현지인이 옥수수를 빻고 있다. 곡식을 넣는 나무통이 있고, 옥수수가 떨어지면서 맷돌에 갈리는 구조다. 생각보다 곡식이 곱게 갈린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 마루턱에 오르자 티하우스가 나온다. 고테에서 만났던 라마의 여동생이 운영한다. 옆에는 제법 큰 초르덴(탑)을 짓는데 거의 완성 단계다. 이들과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쬬뚝마을 위쪽의 찻길에서 지프차에 짐을 싣고 있는 스태프들.

쬬뚝마을에 도착했다. 계단식 밭은 많으나 놀고 있는 밭이 많다. 젊은이들은 도시와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가서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네팔의 산간 마을도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지프를 타려면 30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더운데다 지쳐서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마니스톤이 연달아 보인다. 온통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고 글씨는 검정색으로 칠해 놓았다. 이런 식으로 마니스톤을 훼손한 곳이 많아 아쉽다.

약속한 장소에는 지프 2대가 왔다. 한 대는 미션이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운전사는 자신들의 불찰을 인정했다. 결국 웃돈을 주기로 하고, 지프 두 대에 20명이 타고 출발했다. 작은 짐칸이 있어 가능했다.

길이 워낙 엉망이라 사륜구동으로 겨우겨우 엉금엉금 이동했다. 바퀴가 빠지면 스태프들이 차에서 내려 돌을 깔고 진행해야 했다. 빵금마을을 지나자 도로 사정은 좀 좋아졌다. 그래봐야 시속 20~30km를 넘기지 못한다.

오후 4시경 셀러리에 도착했다. 가까운 거리에 파브르 공항이 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포터 일부는 내일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간다. 나머지는 벰바 셰르파의 마을로 가면서 도중에 하나둘 내릴 예정이다.

이번 트레킹은 셀파니콜과 메라피크가 중점이었다. 두 곳은 밀린 숙제나 다름없었다. 빠진 퍼즐을 맞추는 시간이기도 했다. 빼놓고 지나쳤던 지역을 찾아 낱낱이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히말라야는 자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인류의 유산이다. 앞으로도 이 유산을 널리 알리고 기록하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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