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그 많던 선거 현수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현종 기자 2024. 4. 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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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전 중구 대흥공원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수거한 폐현수막을 정리하고 있다. 대전 중구에서 수거되는 현수막은 연간 30톤, 그 가운데 4톤가량은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소각 처리된다. /신현종 기자

많은 이야기를 남긴 채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도시를 어지러이 감싸고 있던 선거 현수막이 철거되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바로 당선사례 현수막이 빈자리를 채웠다. 선거철이면 겪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번 선거에는 유독 크기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어보려는 현수막들이 많았다. 건물 전체를 에워싸는 초대형 현수막이 등장하는 진풍경도 이어졌는데 홍보 효과 보다는 너무나 압도적인 길이와 넓이에 오히려 공포감을 느낀다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선거가 끝난 후 그 많던 현수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정치 관련 현수막은 정당 정책 홍보 현수막과 후보자의 선거운동 현수막 등 2가지가 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걸리는 후보자의 현수막과는 달리 정당 현수막은 선거운동 기간에는 설치가 금지된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후보의 현수막은 철거되는데 보통 선거철에 발생하는 폐 현수막의 양은 1000톤을 가뿐히 넘긴다. 수거는 구청 등 담당 부서에서 하는데 최근에는 정당이나 후보자 측에서 자체적으로 회수해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수거된 선거 관련 현수막들은 일반 현수막과는 달리 재활용이 어렵다. 후보의 얼굴이나 이름이 인쇄되어 있는데다 문구 자체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반 현수막의 재활용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폐 현수막의 특성상 인쇄용 잉크가 묻어나거나 돌가루가 날리기도 하고 인체에 닿았을 때 안전성도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재활용 제품 자체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 일반적인 폐 현수막의 활용도는 20~30% 선이다. 나머지 물량은 대부분 소각된다.

현수막 원단이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되어 있고 화학염료로 인쇄하기 때문에 매립한다고 해도 토양오염의 원인이 되고 소각 역시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이어진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1.2㎏짜리 현수막 1장을 소각하는 데는 6.28㎏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지난 18일 대전 중구 선화동 푸른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폐현수막을 이용한 장바구니를 제작하고 있다. 수거한 현수막은 마대·장바구니 등으로 재생산되어 공공기관이나 전통시장 등 나눔이 필요한 곳에 무료로 나눠준다. /신현종 기자

재활용되는 현수막은 쓰레기를 담는 마대자루나 장바구니, 에코백 등으로 만들어져 전통시장이나 공공기관에서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배포된다. 정부는 폐 현수막의 재활용을 늘리기 위해 지자체와 기업 간 연계를 돕고 관련 사업비를 지급,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과연 폐 현수막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처 방안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많은 비용을 들여 현수막을 재활용해 무상으로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도 디자인과 품질이 좋지 않아 나서서 가져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수막은 선거를 치르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지만 가장 좋은 대안은 현수막 자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현수막이나 벽보를 이용하여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도시 미관과 환경을 해치는 현수막 없이 선거 부스를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선거를 치르는데, 고민해보면 우리에게도 SNS를 활용하는 등 대체 가능한 많은 경로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95%를 넘는다. 기껏 1~2줄짜리 정보만 전달할 수 있는 현수막에 의존해야만 하는 환경도 아닌 것이다.

자연분해가 되는 친환경 현수막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기존 현수막 대비 가격이 2배 이상 비싸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대안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당 스스로가 입법을 통해 선거현수막 규제 법안을 만드는 등 현수막을 지양하고 선거 문화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정치와 환경은 분명히 한발 짝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난 18일 대전 중구 선화동 푸른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폐현수막을 이용한 장바구니를 제작하고 있다. 수거한 현수막은 마대·장바구니 등으로 재생산되어 공공기관이나 전통시장 등 나눔이 필요한 곳에 무료로 나눠준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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