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할아버지 떠나고 '무연고 강아지'로…꼼짝없이 안락사였다
중랑구청 동물보호팀 공무원은 보호소 보내는 대신 '안락사' 없는 팅커벨프로젝트에 연락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13개월 돌봄 받다가 1개월 '임시 보호' 후 입양
경계심 많던 강아지, 집에 오니 "표정이 정말 편안해졌어요"
[편집자주] 10일. 유기동물이 보호소에 들어오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기한이 끝나면 대부분 '안락사' 됩니다. 잠깐만 살려주어도 두 번째 기회가 생깁니다. 가족을 만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거지요. 그게 '임시보호'입니다. 그리 열한번째날을 선물해준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와보는 낯설고 새로운 집. '여긴 어디지', 하며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탐색하는 듯했다.
홍영후씨(45)와 장은영씨(44) 부부는 그런 강아지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영후씨가 말했다.
"저희가 어디서 본 건 또 많아서요(웃음). 2시간 동안 모른척하면서 거실에 누워 있었어요. 미나 긴장했길래,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요. 그러다 침실로 들어갔지요. 미나가 캔넬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졸졸졸, 침실로 따라 들어온 미나는 멀뚱멀뚱, 영후씨와 은영씨를 바라봤다. 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침대 앞에 있는 몽실이에게 영후씨가 말했다. "미나야, 편하게 여기로 올라와!"
폴짝, 강아지는 침대에 올라와 곁에 가만히 앉았다. 그런 미나를 맘껏 쓰다듬어 주었다. 임시 보호를 하는 첫째 날이었다.
몽실이와 함께 살던 존재는 80대 할아버지였다. 찾는 가족 하나 없이 홀로 살던 노년의 외로움. 몽실이는 자식보다 나은 가족이며, 곁을 부지런히 내어주는 가장 좋은 '단짝'이었다.
할아버지는 산책할 때마다 몽실이를 데리고 다녔다. 삶은 미약하게 쪼그라들었으나 사랑만큼은 동그랗고 컸다. 매일 동네에선 흰 머리에 지팡이를 쥔 이와, 쫑긋한 두 귀로 킁킁 냄새 맡으며 경쾌하게 걷는, 둘의 뒷모습이 천천히 움직였다.
계절이 활짝 피는 5월. 오래 피어 있었던 노년은 바닥에 툭, 낙화하듯 몸이 떨어졌다. 급성 뇌경색이었다. 작다란 몽실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팔다리가 마비되었다. 할아버지는 남은 삶을 침상에서 마무리했다. 그걸 돌봐주던 게 김옥례 할머니(요양보호사)였다. 연고 없는 할아버지를, 곁에 있던 몽실이를, 옥례 할머니가 돌보았다. 맘 따뜻한 할머니는 하루 4시간을 봐주다, 나중엔 그 집에서 잠까지 자며 보살폈다.
옥례 할머니는 정든 강아지가 걱정돼 견딜 수 없었다. 어렵사리 작은 아파트에 데려왔으나, 힘든 생계 때문에 집을 오래 비워야 했고, 돌볼 처지도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고심하다 중랑구청에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건 김가희 주무관(32)이었다. 당시 중랑구청 보건행정과 동물정책팀에서 일하고 있었다(지금도). 몽실이 이야기를 들은 가희씨는 실은 정해진대로 유기동물 보호소를 안내하면 되었다.
그러나 가희씨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짧은 열흘의 시간. 데려갈 가망성이 희박한 공고 기한이 지나면 절차대로 안락사가 된단 것을. 그것 때문에 늘 괴로웠었단다.
몽실이만큼은 다른 방법을 찾아 살리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안락사가 없다는 동물구조단체를 찾았다. 매달 유기동물을 살려 입양 갈 때까지 센터에서 돌봐주는 곳이 있었다.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였다.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는 자체 시스템에 따라, 회원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50명 넘게 동의하면 구할 수 있는데, 155명이 지지했다. 몽실이가 비로소 살 수 있게 됐다.
몽실이는 황 대표와 팅커벨프로젝트 간사들과 봉사자들의 돌봄을 받았다. 이듬해 봄엔 벚꽃 구경을 가서 예쁜 사진도 잔뜩 찍어주었다. 좋은 가족 만났으면 좋겠어, 모두가 같은 바람.
1년을 넘어 13개월이 흘렀다. 올해 3월 20일. 이제 4살이 된 몽실이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영후씨와 은영씨 부부가, 몽실이를 '임시 보호'하기로 한 거였다.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입양을 더 못 가니 더 마음이 갔단다. 좋은 이들이었다. 처음부터 입양을 맘에 품었으나, '임시 보호'로 시작했단 이유가 따뜻했다.
"미나(몽실이의 바뀐 이름)도 우리 집이 살기 괜찮은지 확인해봐야 하잖아요. 오래오래 함께 살아야 하니까요."
임시 보호한 지 한 달.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겠단 생각에 부부는 미나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4월 17일. 집밥을 먹게 됐단 소식에, 팅커벨프로젝트 회원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기쁘고 귀한 날이라고, 정말 축하한다고.
미나도 집에 온 지 불과 한 달 만에 많이 변했다. 은영씨가 말했다.
"미나 눈빛이 점점 변하는 걸 저희도 느껴요.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지그시 바라볼 때가 있는데, 몇 번을 울었어요. 진짜 마음을 우리한테 주는구나, 그런 게 느껴져서요."
'어떻게 이리 마음을 다 줄 수가 있을까'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당직을 서는 직장이라, 영후씨가 고단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미나가 현관에 이미 서 있었다. 흥분해서 껑충껑충 뛰고, 집안을 돌며 반가워서 몇 바퀴를 돌고, 품에 안겨 영후씨의 얼굴을 쉴 새 없이 핥아주었다. 하룻밤 못 보았다고, 그게 너무 반가워서.
좋은 가족 만나 편안한 걸 보면, 그동안 힘들었던 게 다 씻긴다고. 세 가족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황 대표가 말했다. 그리고 미나가 입양된 건, 이런 의미가 또 있다고 했다.
"제2의 견생을 살게 해주신 것도 있지만, 미나가 있던 자리(팅커벨입양센터)가 비었잖아요. 안락사 명단에 있는 유기견을 구조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생긴 거예요. 미나한테는 새 삶을 선물했고, 다른 애들한테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신 거예요."
에필로그(epilogue).
영후씨와 은영씨 부부가 전했던 남은 이야기 하나. 그게 참 좋아서 끝으로 남겨두었다.
"미나가 처음에 왔을 땐, 며칠은 밖에서 소리가 나도 잘 짖지 않았어요. 그래서 얘가 안 짖는 아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밖에서 소리가 나면 짖더라고요."
처음엔 뭘 해달란 요구도 잘 안 하던 미나가, 요즘은 뭔가 표현도 한다고. 한 번씩 낑낑거리기도 하고.
영후씨는 그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짖거나 낑낑거리는 모습인데, 그게 왜 좋으셨던 걸까요."(기자)
"미나가 더는 불안해하지 않고,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영후씨)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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