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기 늘어나는 증여성 직거래…잘못하면 세 폭탄
직장에서 은퇴한 임 모(69) 씨는 자신이 소유한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하려다 직거래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증여보다는 매도 형태로 자녀에게 아파트를 넘기는 것이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임 씨는 "1주택자인데 자녀에 증여했을 증여세가 저가 양도 시 내는 양도세보다 100배 이상 높았다"며 "집값도 다소 떨어진 시점이어서 작년 말에 직거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직거래는 중개인을 끼지 않고 당사자끼리 계약하는 것으로 주로 부모와 자녀, 법인과 법인 대표 등 특수관계인간 거래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특수관계인간 거래의 대부분은 증여성 저가 양수도 목적입니다.
현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신고가액이 최근 3개월 내 거래된 실거래가보다 30% 낮은 금액과 3억 원 가운데 적은 금액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정상 거래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중개인을 끼지 않아 중개수수료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금 측면에서도 대체로 절세 효과가 큽니다.
자녀에게 고가의 주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내는 상속세와 증여세보다 양도세가 더 낮은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 59.96㎡의 경우 이달에 16억 9천100만 원에 직거래가 이뤄졌습니다.
바로 전달의 중개거래로 신고된 금액 19억 5천만 원 대비 3억 원가량 싼 금액입니다.
전용 84.82㎡는 지난해 7월 직거래 신고 금액이 19억 원으로, 같은 달 실거래가(22억∼23억 원)보다 3억∼4억 원가량 낮습니다.
이런 직거래는 주로 집값 하락기에 급매물 거래가 많을 때 급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오늘(25일) 연합뉴스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공개된 서울 아파트 거래 신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직거래 비중이 전체 거래의 7.8%로 작년 3분기 4.8% 대비 3.0%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1분기(9.1%) 이후 3분기 만에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2022년에 떨어졌던 집값이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와 작년 3분기에 전고점 시세에 육박할 정도로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4분기 들어 집값 고점 인식에 부담감,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대출 중단 등으로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작년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3분기에 가장 많았다가 4분기 들어 감소했습니다.
올해 1분기에는 거래가 다시 늘고 점차 상승 거래도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자 직거래 비중이 3.8%로 감소했습니다.
김종필 세무사는 "특수관계인간 저가양도는 매도 시점이 자유로운 만큼 가격이 상승할 때보다는 떨어질 때가 적기"라며 "급매 거래가 많으면 실거래가가 내려가고, 하락한 금액에서 최대 3억 원까지 거래가를 낮출 수 있어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습니다.
근래 직거래가 가장 많았던 때는 2022년입니다.
7월에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가파른 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집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하반기 직거래 비중이 평균 19.1%에 달했습니다.
특히 실거래가가 급락한 2022년 4분기는 전체 거래량이 2천250건에 불과했는데, 직거래가 486건으로 21.6%를 차지했습니다.
현 정부가 2022년 5월부터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를 유예한 것도 증여성 저가 양도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증여 대신 저가 양도를 하면 세금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연합뉴스가 신한은행 우병탁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에게 의뢰해 시가 20억 원짜리 아파트를 단순 증여했을 때와 저가 양도했을 때 세금을 비교해 봤습니다.
A 씨가 1주택자이고, 10년 전에 10억 원에 구입한 주택을 20억 원에 자녀에게 단순 증여할 경우 자녀가 내야 할 증여세는 6억 140만 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A 씨가 이를 시세보다 3억 원 낮은 17억 원에 자녀에게 저가 양도를 한다면 A 씨가 내야 할 양도세는 1천375만 원입니다.
증여했을 때보다 무려 6억 원 가까이 세금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다만 이때 거래 신고는 17억 원에 하지만, 양도세는 시세 수준인 20억 원에 신고했다고 가정한 금액입니다.
양도세는 증여세와 근거법이 달라 시세의 5% 이내 또는 3억 원 가운데 적은 금액으로 매도가를 신고해야 해 양도가액을 최대한 낮춰도 19억 원 이상이어야 합니다.
만약 A 씨가 1주택자가 아닌 다주택자라 해도 내년 5월까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유예된 상태여서 양도세는 3억 2천만 원 정도로 증여세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A 씨의 자녀는 저가 양수에 따른 취득세 절감 효과도 있습니다.
A 씨가 1주택자이고, 저가 양도한 주택이 비규제지역이라면 자녀는 20억 원에 대한 증여 취득세로 8천만 원을 내야 하지만, 저가 양도를 하면 취득가액이 17억 원으로 줄어 5천610만 원만 내면 됩니다.
만약 A 씨가 다주택자이고, 규제지역(강남3구·용산구)에서 단순 증여를 한다면 증여 취득세만 2억 4천800만 원에 달합니다.
저가 양도 시 내야 하는 취득세의 4배가 넘습니다.
매매가가 이보다 낮은 경우에도 절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B 씨가 5년 전에 6억 원에 매입한 주택을 시세(12억 원)보다 3억 원 낮은 9억 원에 저가 양도하는 경우 B 씨가 1주택자라면 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아 양도세가 '0원'입니다.
그러나 이를 12억 원에 단순 증여를 하면 자녀는 약 2억 9천만 원의 증여세를 내야 합니다.
B 씨가 다주택자인 경우에도 12억 원에 대한 양도세가 2억 440만 원으로 증여세보다는 낮습니다.
다만 저가 양도할 때는 자녀가 부모님에게 부동산 대금을 지급할 수 있고, 관련 금융기록이 있을 때만 거래가 인정됩니다.
양수자가 양도자에게 실제 대금을 지급한 내역을 입증하지 못하면 국세청이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추징하게 됩니다.
양도 금액이 시세보다 3억 원 이상 낮은 경우에도 증여세를 추징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제 현장에선 자녀의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세를 낀 거래도 많이 이뤄집니다.
저가 양도를 한 부모가 양수자인 자녀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매각 대금으로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동산 업계는 이러한 저가 양도가 합법적이긴 하지만 고가 양도와 마찬가지로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고가 양도는 시세 띄우기 목적이 의심되고, 저가 양도는 과도한 가격 하락과 거래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2022년부터 고가·저가 직거래가 시세 교란과 함께 편법 증여와 명의신탁 등 불법 거래 행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보고 정기적으로 기획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저가 양도 시 부모가 해당 주택에 전세를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편법 증여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국세청 관리 대상이 된다"며 "전세 계약 만기 후 부모와 자녀 간 보증금이 실제 오갔는지 여부를 국세청이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병탁 부지점장은 "저가 양도라도 해도 경우에 따라 증여세보다 양도세가 많은 경우도 있고 자칫 국세청의 관리 대상에 오를 수 있는 만큼 신중히 따져보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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