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오스템 前 직원에 고액 추징한 법원... “범죄수익 향유 기회 뺏어야”

이현승 기자 2024. 4.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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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5억 횡령한 오스템 前 재무팀장, 918억 추징”
당장 반환 가능한 돈 빼고 국가가 환수하란 것
법원, 횡령범에 추징 드물어... “기업이 알아서 회수”
가족 동원해 다양하게 범죄수익 은닉한 피고
法 “이익 향유 기회 뺏어야” 추징 사례 늘 듯

회삿돈 22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스템임플란트 전직 재무팀장 A(47)씨에 대해 지난달 대법원이 ‘징역 35년과 추징금 918억원’을 선고했다. 추징 액수가 횡령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자 “이러니 횡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이 금액은 회사에 반환된 돈과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은 채권을 제외한 액수다. 나머지 금액은 전부 국가가 찾아내 돌려주라고 한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은 그동안 횡령 사건에서 몰수·추징을 최소화하고 기업에 범죄 피해 금액을 직접 민사소송 등으로 돌려받도록 판결해 왔다. 이번에 이례적으로 고액을 추징한 것은 A씨 횡령액이 워낙 클 뿐 아니라 가족을 동원해 다양한 형태로 범죄수익을 은닉한 점을 고려한 결과다. 국가가 범죄수익을 빼앗아 출소 후 이익 향유 기회를 박탈해야 한다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향후 범죄수익 은닉 사실이 드러난 범죄자에 대해선 법원이 몰수·추징을 적극 선고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중앙연구소의 모습. / 뉴스1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가 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A씨는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회삿돈을 15회에 걸쳐 본인 명의 증권 계좌로 빼낸 혐의로 2022년 구속기소 됐다. 이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 횡령 금액’이란 기록을 남겼다.

A씨에게 최종적으로 선고된 추징금 918억원은 횡령 금액 2215억원에서 A씨가 반환한 돈 335억원, 금괴와 까르띠에 시계 등을 매각해 회수한 돈 639억원, 예금과 부동산 등의 반환 채권 323억원을 빼고 남은 돈이다. 법조계에선 “그동안 법원이 기업 횡령 사건에서 몰수·추징을 기각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금액을 선고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은 범죄 피해재산의 몰수·추징은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범죄 피해재산은 원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게 원칙인데, 국가가 몰수·추징한 뒤 돌려주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해진다고 판단해서다.

과거 법원 판례를 보면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는 ➀피해자 수가 많고, 피해자 스스로 피해 금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경우 ➁범죄수익의 은닉 또는 해외 반출로 인해 피해자가 자력으로 범죄수익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 ➂피해자와 피고인의 인적 관계 또는 피해자의 정신적·경제적 상황 때문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해회복을 구할 수 없는 경우 등이다.

이는 대부분 개인이 피해자인 경우에 적용됐고 기업은 몰수·추징이 기각되는 사례가 계속 있었다. 기업은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회복을 위해 손해배상청구권, 재산 반환청구권 등을 행사하고 민사소송도 빠르게 제기하므로 법원은 ‘피해회복이 곤란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오스템임플란트도 횡령 사실을 인지한 후 A씨가 보유한 일부 재산에 대해 권리이전 합의서를 체결하고 손해배상을 받기로 합의하는 등 환수에 적극 나섰다. A씨는 이런 점을 토대로 횡령 금액 전액이 몰수·추징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손해배상 합의는 피고인이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손해배상액을 확정한 것에 불과할 뿐 현실적인 피해회복까지 이뤄진다고 단정할 수 없고 권리이전 합의서를 통해 구체적 권리를 확보한 재산 범위는 전체 범죄피해자산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동시에 “범죄수익이 금괴, 명품 시계, 리조트 회원권, 오피스텔 등 다양한 형태로 은닉·보관 돼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해졌고 정당한 국가 형벌권 행사에도 상당한 장애와 비용을 초래했다”며 “피고인이 당초 계획한 ‘출소 후 이익 향유 기회’를 박탈할 필요성이 있다”라고도 했다.

이 판결에 대해 2018~2019년 대검찰청 초대 범죄수익환수과장을 지낸 김민형(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범죄자가 가족이나 지인을 동원해 자금 세탁을 하는 경우에는 부패재산몰수법에 규정된 몰수·추징의 요건을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진일보한 판시로 보인다”라며 “횡령 사고 발생 때 수사 초기 단계에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 범죄자의 재산를 동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 졌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다른 기업 횡령 사건에서도 법원이 고액 추징을 선고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2~2020년 우리은행 자금 707억원을 빼돌려 주식 등에 투자한 전직 직원과 그 동생에 대해 이달 14일 법원은 징역 15년(형), 12년(동생)을 선고하고 674억원을 추징하라고 했다. 2016년부터 6년간 회삿돈 24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계양전기 전 직원에게는 작년 6월 징역 12년과 가상화폐 42만여개 몰수, 203억원 추징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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