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금리’ 상승이 미국 금리인하 미룰까

이종태 기자 2024. 4. 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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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이 ‘중립금리 상승’론을 받아들이는 경우, 기준금리 인하 스케줄 역시 크게 바뀔 것이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중립금리 논의를 살필 필요도 있다.
2월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매장 앞에 ‘직원 모집 중’ 팻말이 놓여 있다. ⓒAFP PHOTO

미국의 일자리가 자꾸 늘어나는 바람에 전 세계 투자자들이 시름에 잠겼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하에 제동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이 내리지 않으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내리기 어렵다.

지난 4월5일, 미국 노동부는 3월의 ‘농업 이외 일자리’가 전월(2월)보다 30만3000건이나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실업률은 2월의 3.9%에서 3.8%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연준의 정책위원들은 기준금리(4월 초 현재 5.25~5.5%)가 “2024년에 0.7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그렇게 하겠다는 소리다. 오는 6월부터 1회에 0.25%포인트씩 세 차례에 걸쳐 인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투자자들이 열광했다. 금리인하는 자산(주식·부동산 등)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연준이 실제로 금리인하에 돌입하려면 퍼즐 한 조각이 더 필요했다. 미국 경기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는 확고한 지표다. 투자와 소비가 줄고 노동자들의 취업이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들어 매달 나온 일자리 관련 수치는 번번이 시장의 기대를 배신했다. 특히 3월의 일자리 증가량은 시장 예측치(20만 건)를 10만 건이나 웃돌았다. 연준도 놀랐을 것이다. 2022년 봄부터 불과 1년 6개월여 동안 기준금리를 5%포인트 이상 올렸다. 권투경기라면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을 연타로 상대방에게 먹인 격이다. 그러나 상대 선수(미국 경제)는 여전히 팔팔하다.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5%(특히 4분기는 연율로 3.3%)에 달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연준의 고위급 인사들과 유력 이코노미스트들 가운데 일부는 ‘상대 선수의 체력이 예측보다 훨씬 강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제학적 표현으로 바꾸자면 ‘미국 경제의 중립금리가 상승했다’.

중립금리란?

누군가가 ‘지금의 금리는 낮은 편인가, 높은 편인가’라고 질문하면, 상당수는 ‘높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러나 ‘낮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현실에서 금융거래가 이뤄진다. 다음 질문. ‘금리가 높다고(낮다고) 느낀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혹시 자신의 소득을 ‘기준’으로 원리금 상환액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금리가 높다’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보편적 기준이 아니다. 개인의 소득은 매우 다양하다.

주류경제학이 그 ‘기준’을 고안해냈다. 예컨대 금리가 낮으면 소비·투자의 증가로 물가가 오를 것이다. 금리가 높으면 물가는 내릴 것이다. 그렇다면 ‘물가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금리’를 다른 금리들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기준’으로 삼아 ‘(물가에 대한) 중립금리(neutral rate)’라고 부르면 어떨까? 이 중립금리는 금융시장에서 ‘자금의 수요(기업)-공급(가계)’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주류경제학의 세계관에는 중립금리와 뗄 수 없는 짝들이 있다. 예컨대 노동시장이다. 노동자는 임금이 높을수록 노동을 더 많이 공급(취업)한다. 기업은 임금이 낮을수록 더 많은 노동자를 수요(고용)한다.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임금과 고용량(취업자의 수)이 결정된다.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수준에서 일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고용되었다는 의미다. 주류경제학은 이 상태를 ‘완전고용’이라고 표현한다. ‘그 임금으로는 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고용보다 여가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므로 실업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렇게 ‘완전고용’된 노동자들이 해당 시점의 생산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물건들의 총가치가 바로 국내총생산(GDP)이다. 이 물건들의 가격(물가)은 재화시장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정해진다. 금리가 중립적이므로 물가는 변동하지 않는다.

이처럼 중립금리와 완전고용에 기반한 경제는, 국가 내에 있는 자원(자본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없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체제로 가정된다. 정부나 노동조합이 금융·노동·재화 시장의 가격(금리·임금·물가)을 인위적으로 변경하지 않을 때 성취되는 ‘꿈의 세계’다.

꿈은 이뤄진다. 더 많은 사람이 믿을수록 꿈은 현실에 가까워진다. 은행 예치금 금리나 채권금리(수익률) 등은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고 수치로도 게시된다. 중립금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다. 중립금리를 게시하는 기관은 없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중앙은행들은 ‘중립금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기준금리 결정의 잣대로 삼는다. 이 가상의 중립금리는 현실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어떻게?

연준은 나름의 방법에 따라 중립금리를 ‘추정’한다. 만약 경기가 과열되어 있다면 기준금리를 ‘추정 중립금리’보다 높게 설정한다. 경기침체 시기엔 중립금리의 밑에 기준금리를 둬야 한다. 연준은 2019년 이후 미국의 중립금리를 2.5~2.6%로 추정해왔다. 기준금리를 이보다 훨씬 높은 5.25~5.5%까지 끌어올린 것은 경기를 침체시켜 물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정도의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에 비해 크게 높지 않거나 심지어 밑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 실제 중립금리가 연준의 추정치(2.5~2.6%)보다 훨씬 높은 4%로 올라 있다면, 연준은 결코 투자자들이 바라는 만큼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다. 오히려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립금리가 상승(혹은 하락)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기 위해 자금을 더 많이 수요한다. 중립금리는 상승한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미래의 경제성장률(과 투자자금 수요)도 낮아지기 때문에 중립금리는 하락한다. 고령층 비율이 커지면 저축(자금 공급)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중립금리는 하락한다. 정부부채가 늘면(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금리(수익률)가 상승한다(국채 가격과 수익률은 반비례한다). 세계화가 순조롭게 진척되던 2000~2010년대 중반엔 한국·일본·중국 등 수출 대국들이 무역흑자로 미국의 국채를 대량 매입했다. 그 덕분에 미국 금융시장에선 자금 공급이 크게 증가하며 중립금리가 하락했다고 한다.

중립금리 상승은 경제 시스템 변동을 의미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은 미국 12개 지역에 설치된 연방준비은행들의 연합체로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이다)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의 중립금리는 실질 기준(중립금리-인플레이션율)으로 1960년대엔 5%에 달했으나 이후 계속 떨어져 최근에는 1% 주변에 머물고 있다. 60여 년 동안 4%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2022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회복기’엔 중립금리가 잠시 1%대 중반으로 올라가기도 했으나 다시 떨어지는 추세라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판단한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생산성 상승률의 지속적 저조, 출산율 하락, 고령층 증가 등 장기적 경향의 결과로 해석된다. 장기적 경향은 쉽게 변하지 않으므로 미국 경제는 2022년 이전 저금리 체제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도 비슷하다.

2017년 1월18일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한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AP Photo

그러나 상당수 경제 전문가와 심지어 연준 고위 간부들의 생각은 다르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4월6일(3월 고용 발표 다음 날) 〈블룸버그〉와 한 인터뷰에서 “중립금리가 연준의 추정(2.5~2.6%)보다 훨씬 높다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다”라고 말했다. 그가 추정한 미국의 중립금리는 무려 ‘4% 이상’이다. 투자자들의 ‘6월 기준금리 인하 개시’설에 대해서도 서머스는 찬물을 뿌렸다. “최근 드러난 사실과 추세를 고려할 때 (6월의 금리인하는) 부적절한 조치다. 기준금리를 오히려 올려야 할 실질적 필요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서머스는 국채 수익률(장기 차입비용) 역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인 닐 카시카리는 2022년 5월 이후 인플레율이 크게 떨어진 것 역시 연준의 금리인상 효과보다는 공급 측면의 개선 덕분이란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팬데믹 당시 거리두기와 봉쇄 등으로 재화 공급량이 크게 떨어지며 물가가 급등했는데 생산능력이 복구되면서 인플레율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카시카리는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가 여전히 팬데믹 이전의 낮은 중립금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금리인하 반대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니애폴리스 연은의 보고서(2월20일)는 총재의 입장과 결을 달리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요약하면, “지난 수십 년간 금리를 하락시킨 근본 요인인 생산성 성장 둔화와 인구 고령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금리에 하방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국 정부의 부채가 늘어난다고 해서 중립금리가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며 뉴욕 연은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미국 연방 부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5년부터 2019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했지만 중립금리는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앞으로 연준이 ‘중립금리 상승’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기준금리 인하 스케줄 역시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그 밖의 관점에서도 이 논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립금리 상승’은 사실상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자본주의 전반의 시스템적 변동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듯이, 중립금리 상승은 생산성이 높아져 투자가 늘어나고 출산율이 개선되며 글로벌 자금의 미국 쏠림현상이 약화된다는 의미다. 지난 20~30여 년간 전 세계를 풍미했던 신자유주의 기조가 퇴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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