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차 MVP의 비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

김다은 기자 2024. 4. 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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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의 12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견인한 위성우 감독과 2년 연속 MVP를 수상한 김단비 선수를 만났다.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 소속 위성우 감독(왼쪽)과 김단비 선수가 4월9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김단비 선수(아산 우리은행 우리WON)는 올해 은퇴할 생각이었다. 서른네 살. 2007년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에서 뛰고 있다. “계속 농구를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욕심 아닐까,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은퇴 시기를 저울질해왔다. 그게 올해였다.

‘오래 뛴’ 선수인 건 맞다. 한국 여자 농구의 새로운 장을 연 WKBL은 1998년 7월 여름에 개막했다. 올해로 리그가 26년이 됐으니 17년 차인 그는 한국 여자 프로농구 역사의 대부분을 ‘자신의 역사’로 함께한, 몇 안 되는 현역 선수다.

동시에 그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3월30일,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이하 우리은행)은 청주 KB 스타즈(KB 스타즈)와의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4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2023~2024 W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팀으로 시즌을 마쳤다. 김단비 선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으며 승리의 주역임을 입증했다. 그는 2022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15년간 몸담은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이하 신한은행)를 떠나 우리은행에 합류했다. 이적 첫 시즌에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1위를 하며 통합우승을 이끌었고, 생애 첫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올해도 그 영예를 이어갔다.

올해 챔피언결정전에서 김 선수는 총 경기시간 40분 중 평균 38분38초를 뛰었고 평균 21.7득점에 6.5리바운드, 6.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정규리그에서는 개인 기록들도 경신했다. 1월27일 열린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40득점을 해 본인 통산 한 경기 최다 득점을 했다. 3월에는 여자 프로농구 선수 역대 최다승(318승)을 이뤘다. 올해의 김단비를 두고 누가 은퇴를 말할 수 있을까? “인생도 농구도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웃으며 ‘실패한 인생 계획’을 털어놓는 김 선수, 그리고 이번 시즌 우승을 일궈낸 ‘WKBL의 지략가’ 위성우 감독을 만났다. 위 감독은 2012년 우리은행에 부임한 이후 12시즌 동안 정규리그 9차례 우승과 챔피언결승전 8차례 우승을 일궈낸 인물이다.

국내 최초로 이룬 12번째 우승

챔피언결정전 우승 소감을 묻자 두 사람 모두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라고 답했다. 김단비 선수는 이렇게 후회하지 않은 시즌은 처음이라며 “농구와 관련해서는 후회를 많이 한다. ‘슛을 한 번 더 쏠걸’ ‘그때 수비를 이렇게 할걸’, 그런데 이번 시즌만은 그런 마음이 안 들었다. 이것보다 내가 더 잘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위성우 감독도 “우승해서 좋은 건 며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다르다”라고 했다. “선수들이 정말 고맙다. 감독이 아무리 뭘 하자고 해도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힘들어서 발이 안 떨어지는 게 보이는데도 끝까지 경기를 뛰어줬다. 너무 힘들 땐 ‘1분만 바꿔달라’고 하더라. 그것마저 데드볼 상황(파울, 터치아웃 등으로 플레이가 중단된 상태)이 안 나오면 못 바꿔줬다.”

사실 위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선수들에게 ‘우승 안 해도 된다. 대신 정말 재미있는 경기를 하자’고 했다. 5차전까지라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양복 다섯 벌을 준비했다. 4차전에서 승부가 결정돼 다 못 입었다. 좋은 일이다(웃음).”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이 3월30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KB 스타즈를 꺾고 우승했다. ⓒ연합뉴스

이번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선 우리은행이 달성한 12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다(위성우 감독 부임 이전에 4차례 우승이 있었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라 불리는 야구·축구·농구·배구 남녀 팀을 통틀어 우승을 12회나 한 팀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2위는 KBO 한국시리즈에서 11회 우승한 KIA 타이거즈(해태 시절 포함)다.

모두의 예상을 깬 승리이기도 했다. 전문가 대부분은 승률 90.0%로 정규리그 1위(27승3패)를 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온 KB 스타즈의 승리를 점쳤다. 지난해 공황장애 등으로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국보급 센터’ 박지수 선수가 이번 시즌에서는 경기력을 완전히 회복했기 때문이다. 박 선수는 이번 정규리그 29경기에서 평균 20.3득점, 15.2리바운드,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고 정규리그 1~5라운드 MVP를 모두 휩쓸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에는 ‘챔피언결정전의 사나이’ 위성우 감독이 있었다. 그전까지 신한은행에서 코치를 맡았던 위 감독은 2012년 우리은행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12시즌 동안 일곱 번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었다. 올해 여자 프로농구 감독 최초로 정규리그 300승(2024년 1월 기준)을 달성하기도 했다. 위 감독이 사령탑으로 부임하던 당시 우리은행은 4시즌 연속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저녁 식사를 담당하는 식당 근무자들이 퇴근을 못해 원성이 자자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다. 결과는 우리은행 통합우승이었다. 위성우 감독이 부임 첫해에 이룬 성과였다. 이후 우리은행은 여섯 시즌 내리 통합우승 트로피를 놓치지 않았다.

올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과 KB 스타즈는 4차전에 이르는 모든 경기를 평균 5점 내외의 점수 차로 초접전을 이어갔다. 특히 1차전에서는 4쿼터 초반까지 10점 차로 끌려가던 우리은행이 경기 종료 1분26초를 앞두고 역전에 성공하며 이번 시즌 홈경기 전승(15승)을 기록한 KB 스타즈의 무패 행진을 끊어냈다. 이날 경기가 열린 청주실내체육관(2889석)은 전석 매진이었다. 구장을 가득 채운 KB 스타즈 팬들의 환호를 잠재운 역전승이었다.

김단비(180㎝)는 자신보다 16㎝ 크고 여덟 살 어린 박지수를 따라붙어 상대하며 공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포인트가드 박지현이 공을 돌리며 코트 위를 지휘하면 나윤정·박혜진·이명관·최이샘이 안팎에서 슛을 터트리며 KB 스타즈를 흔들었다. 위성우 감독은 “힘들게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온 모든 경기들이 연습이 됐다. 우리는 박빙 승부를 계속 해와서 열세에 몰려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올해로 데뷔 17년 차를 맞은 김단비 선수는 2년 연속 WKBL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시사IN 박미소

농구의 매력은 10초를 남겨두고도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스포츠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은 짜릿한 역전승을 자주 거뒀다.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김 선수는 승리에 대한 집념과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답했다. “남들이 다 진다고 했으니 져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졌다. ‘무조건 이기자!’ 이러면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더라. 대신 후회 없이 우리 하던 거 제대로 하자고 생각하고 경기를 뛰었다. 그러고 나니 이겨 있더라(웃음).”

필사의 각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대신 ‘다 같이 연습해온 플레이를 제대로 하자’라는 욕심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질 때 지더라도 우리 걸 못하고 지면 너무 찜찜하다. 그간 준비해왔던 걸 다 하고 와야 후회가 없다. 우리은행의 저력은 빨리, 많이 뛰고 기회가 올 때 자신 있게 슛을 쏘는 거다.”

위성우 감독은 상대 팀이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도 ‘우리 플레이’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고 말한다. 전술을 짜기 위해 미국 프로농구(NBA)나 유럽 농구 등을 즐겨 본다. 패턴 플레이를 중심으로 영상을 보고 여자 선수들의 피지컬과 국내 룰을 고려해 재구성하며 익힌다. 하지만 “1000가지 플레이를 만들어도 그걸 선수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라고 위 감독은 말했다. “내가 연구하는 것은 어떤 패턴 플레이를 할 것인가가 아니고, 그 플레이를 선수들이 ‘어떻게’ 하도록 할 것인가이다. 선수들이 스피드와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열세에 처해도 민첩하게 ‘우리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

훈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또 있다. 위 감독은 우리은행의 ‘비장의 무기’를 이타심이라고 말했다. “강팀이란 이타적인 팀이 된다는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난 팀인데도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자신의 득점, 퍼포먼스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료에게 좋은 찬스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농구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보잘것없는 선수가 된다.” 그런 기준에서 위 감독은 김단비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전체의 균형을 볼 줄 아는 선수라는 뜻이다. 지난 시즌 김 선수를 우리은행으로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져도 괜찮다, 우리 플레이를 하자”

반면 김단비 선수는 “은퇴하기 전에 농구를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은행에 왔다. 열 살 때부터 농구공을 놓지 않았던 아이는 어느덧 한국 여자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되었지만 여전히 “더 나은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 지난해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농구에 책임감을 느낀다. “경기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일반인보다 좀 더 농구 잘하는 사람이 인기를 끄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나부터 발전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길도 선택할 수 있어야 여자 프로농구가 좀 더 큰 리그가 되지 않을까? 내 모습을 보고 농구 모임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좋은 농구를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선 ‘최고의 위치’에서 언제든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최고를 유지해야 해’ 이런 마음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농구를 하면서 우승도 해보고, 꼴찌도 해봤다. 제일 아래에 있는 것 같았는데 더 내려가기도 하더라. 그래서 어디에 있든 ‘조금 더 올라가자’라는 마음을 갖는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만 유지한다.”

17년 차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농구를 더 잘하고 싶다는 선수, 그리고 최고의 농구는 이타적인 농구라고 말하는 감독이 포즈를 취하며 코트 위에 섰다. 텅 빈 코트 위에 농구화 밑창이 미끄러지는 소리, 농구공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 팬들의 열광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들이 선 우리은행 체육관에는 챔피언결정전 우승 깃발 12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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