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기도하면 살아난다"…시신 관찰 1년간 '부활 일기' 쓴 20대 신도

김송이 기자 2024. 4.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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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돌코헨'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에 심취 [사건 속 오늘]
동거인 죽자 시신과 생활…월세 꼬박꼬박 내며 소생 기대
2022년 6월 30일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포항의 한 주택가에서 발견된 백골 상태의 시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1년 전 오늘, 한 교회 목사가 망자를 기도로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다며 숨진 친동생의 시신을 2년간 유기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 2022년 초여름 시신 발견한 집주인…월세는 꼬박 입금됐다

2022년 6월 30일 오전 7시쯤 경북 포항 남구의 한 상가주택에서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수상한 냄새와 끝없는 해충의 습격에 이웃들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찾아온 집주인이 숨진 세입자 A 씨를 발견한 것. 한 번도 월세가 밀린 적 없었기에 집주인은 세입자의 죽음을 눈치챌 수 없었다.

A 씨의 시신에서는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았고 외력의 흔적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진 A 씨는 독신의 50대 후반 남성이었다. 시신만 봐서는 사망 시점을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숨져있던 안방이 아닌 작은방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통해 경찰은 A 씨의 사망 시점을 2년여 전인 2020년 6월 3일로 추정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방안 수색하다 발견된 수상한 일기장…부활 기다리며 쓴 관찰지였다

일기장은 숨진 A 씨의 것이 아니었다. 일기장에는 시신과 약 1년간 동거했던 20대 남성 B 씨의 충격적인 기록이 담겨있었다. B 씨는 2020년 6월 5일, '엊그제(3일)부터 삼촌(A 씨)의 의식이 없다'고 썼다. B 씨는 나이가 많은 A 씨를 삼촌으로 불렀다.

일기장 내용에 따르면 A 씨는 사망 한 달여 전부터 건강이 악화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기장 속에 타살 정황은 없었다.

A 씨의 시신을 관찰하며 기록을 써 내려갔던 B 씨는 '삼촌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다'며 사후 1년이 다 되도록 '부활'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B 씨는 시신이 부패하면서 배출된 체액을 몸에 있던 나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동거 초기에는 시신과 접촉하기까지 했다. 시신이 살아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쉽게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 '삼촌'이 살아나길 기다렸다는 청년…부활 믿음 깨진 후에도 월세 입금하며 시신 방치

그렇다면 B 씨는 가족도 아닌데 어째서 서른 살 정도 차이 나는 A 씨 시신 곁에 머물러 있었을까. 해충과 악취에 장악됐을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B 씨를 버티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A 씨의 건강보험공단 진료 기록에는 그가 병원을 찾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A 씨의 월세를 대신 납부한 건 B 씨였다. A 씨가 숨진 이후로도 계속 월세를 내며 그의 죽음을 감춘 B 씨는 경찰 신고 후 사건화가 되자 "그땐 내가 정상이 아니었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B 씨는 군대 전역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자신에게 먼저 동거를 제안한 게 A 씨였다고 했다. 2019년 7월부터 함께 살며 가족만큼이나 각별했다는 A 씨가 부활한다면 "삼촌(A 씨)에게 제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보여 주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고 B 씨는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청년을 시신 옆에 묶어뒀던 '가돌코헨' 그는 누구인가

B 씨의 일기에는 '가돌코헨'이라는 낯선 용어가 계속 나오는데 B 씨는 가돌코헨의 지시를 따랐다. 마치 왕과 노예처럼 종속적인 관계였던 가돌코헨과 B 씨는 사이비 교주와 신도 사이였다.

구약성경에 사용되는 언어인 히브리어로 '코헨'은 '제사장', '가돌'은 '큰'이란 뜻이다. '대제사장'이란 뜻의 '코헨가돌'을 틀리게 쓴 '가돌코헨'은 사이비 교주가 일부러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단어를 골라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신격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충격적이게도 B 씨에게 A 씨의 부활을 약속한 가돌코헨은 A 씨의 친형 C 목사였다. C 목사는 A 씨가 발견된 날,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고 찾아온 유일한 가족이었다. C 목사는 당시 자신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동생이 코로나로 사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와 B 씨는 모두 C 목사의 교회를 다니던 신도들이었다. C 목사는 동생 A 씨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가 숨졌을 때도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했다. 동생이 죽은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고, 그 말만 굳게 믿으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따라 쉬지 않고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포항 OO진리교회 C 목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거짓 예언에 속은 신도들 다 떠났지만…곁에 남은 2명의 열혈 신도

C 목사는 자신이 병을 고쳐준 사람만 서른 명에 이른다고 했다. 부활 일기를 썼던 B 씨 역시 고등학생 때 처음 C 목사를 만난 뒤로 병 치유와 대학 입학, 그리고 취업까지 연이어 기적을 만났다고 했다.

C 씨의 교회에는 그곳에서 치유를 경험했던 이들을 비롯해 한때는 신도들이 꽤 있었는데, C 씨는 2015년 대지진으로 종말이 올 것이라며 신도들에게 자신의 교회가 안전한 피난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C 씨가 예언한 날이 지나도 종말은 오지 않았고 신도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때 교회에 남았던 단 두 사람이 바로 C 씨의 동생 A 씨와 부활 일기를 썼던 B 씨였다. 종말도 오지 않고,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동생 A 씨까지 돌연 사망하자, C 씨는 B 씨에게 '부활'을 주장하며 계속해서 헛된 믿음을 주입했다.

◇ 끝까지 따랐던 두 신도에게 가장 잔혹했던 사이비 목사

2023년 4월 18일 B, C 씨는 시체 유기 혐의로 각각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C 목사를 믿은 B 씨는 죽은 A 씨와 1년을 지냈지만 정작 친형인 C 씨는 단 한 번도 현장에 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코헨가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 시간 동안 인류를 구할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C 씨는 숨진 지 2년 만에 발견된 동생의 시신을 인수하지도 않았고, 이 때문에 A 씨는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지자체에 의해 화장됐다. 또 사이비 목사에게 세뇌당한 20대 청년 B 씨에게 남은 건 전과 기록뿐이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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