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신과 인류 미래를 위한 'G-램프' [기고]
올해 봄은 유난히도 화사하다. 화려하게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온 공원을 뒤덮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셀카를 찍으며 다시 돌아온 우리의 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사실 최근 몇 년은 인류에게 대재앙과도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재앙 앞에서 나약한 인간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실로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한 페이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두웠던 역사를 이겨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했는가?
필자는 RNA라는 핵산을 이용해 연구하는 발생생물학 분야의 과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인류를 덮쳤을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이 위험을 이길 백신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정도였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백신은 대부분 단백질을 이용한 백신이었고, 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가장 먼저 상용화된 백신은 단백질이 아니라 RNA였다. 헝가리 출신의 커털린 커리코 박사는 변형된 RNA가 그 수명이 훨씬 더 길며 (일반적인 RNA의 경우 수명이 약 10시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인체 내 면역계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가 DNA가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한 중간 산물 정도로만 여겼던 mRNA(전령 RNA)가 소위 대박을 친 것이다.
이러한 전령 RNA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개발됐을 때 필자는 뒷목을 붙잡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몇 날 며칠 밤을 새운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커리코 박사의 발견은 흔히 중고교 생물학 교과서에도 언급되는 운반RNA(tRNA)의 변형된 염기를 mRNA에 적용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 아이디어인가? 다른 과학자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이러한 기초 과학의 아주 작은 발견이 인류의 궤멸을 막을 백신을 만드는 위대한 초석이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오직 그녀의 이 작은 호기심만이 그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처럼 기초과학은 현대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반 요소이며, 이는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모든 기술적 혁신과 직결돼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기초과학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거나, 단순히 중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수능시험을 위한 골치 아픈 필수 과목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컴퓨터, 인터넷, 의학 기술 등 현대사회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들은 모두 기초과학 연구의 결과물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대중의 이런 인식은 기초과학 연구는 당장 실생활과 관련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늘 우리 옆에서 문명의 발전과 함께 우리의 삶을 혁신해주고 있었고,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더불어 기초과학은 새로운 발견과 이해를 통해 우리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자연 현상의 이해 등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기초과학은 인문학, 사회과학과 더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궁극적으로 기초과학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확보하고, 기술적 혁신을 이루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말 그대로 기초 학문이다.
이러한 기초과학의 육성을 위해 정부와 기업, 학계 등의 투자는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고 세계적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최근 교육부가 기초과학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만든 'G-램프사업'은 기초과학자들에게 반가운 한줄기 불빛이 아닐 수 없다. 'G-램프사업'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초과학 연구의 추진을 통해 대학의 연구기반을 강화하고, 우수 신진연구인력을 적극 활용하여 지속가능한 공동 연구체계 플랫폼을 구축하고 활성화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필자가 속해 있는 사업단을 비롯해 현재 8개의 램프사업단은 이 사업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우수한 신진 연구자들이 꼭 하고 싶었지만, 연구비 지원이 없어 혼자 고민하고 호기심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초과학의 문제들을 유능한 박사후 연구원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행복하게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연구자들에게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의 발전과 혁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대중과 입법권자들이 이러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하루 빨리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발전된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자 권리이다.
이현식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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