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해결 위해 외국인 데려와 최저임금 배제? 서민 호주머니 털겠다는 발상"

정지용 2024. 4. 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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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전지현·최영미 인터뷰>
"돌봄 노동, 개인에 떠넘기지 말고 국가가 해결해야" 
"정부 최저임금 차등적용 추진 땐 바닥 경쟁 시작될 것"
"홍콩 싱가포르 등 출산율 재고 안 돼, 왜 그런 주장 하나" 
"최저임금 1만원 돌파? 당연한 인상... 그 이상 필요"
최영미(왼쪽), 전지현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육아·간병 문제를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 해결하겠다는 얘기죠.”

전지현(53) 민주노총 전국돌봄노조 위원장과 최영미(62) 한국노총 가사돌봄서비스 지부장은 ‘돌봄 노동에 외국인을 최저임금 미만으로 고용하자'는 한국은행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돌봄 서비스를 확대해 해결해야 하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마치 개인이 비용을 들여 해결할 문제처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두 사람은 최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노동자 측 위원으로 선정됐다. 노동계가 최임위 노동자 위원으로 ‘돌봄 노동자’를 추천한 경우는 처음이다. 두 위원은 “정부가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밀어붙이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돌봄 노동자 당사자로서 차등적용을 막기 위해 위원을 맡게 됐다”고 했다.

전지현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본보와 인터뷰하며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불법은 아니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1988년 식료품·섬유·의복 등 12개 업종에 한 차례 적용된 후 다시 시행된 적은 없어 그동안 '사문화된 조항'으로 꼽혔다. 그러나 한국은행과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①돌봄 서비스업에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고 ②외국인도 돌봄 노동자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며 기류가 변했다.

전 위원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경영계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오랫동안 요구했고 윤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라며 “돌봄 노동을 시작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점차 확대해 나가려는 것 같다”고 했다. 최 위원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시작되면 우리 노동시장은 ‘바닥 임금 경쟁’이 일상화될 것”이라며 “결국 일자리 질은 더 나빠지고 노동 취약계층인 여성과 청년이 더 나쁜 일자리로 내몰릴 수 있다”고 했다.

노동계도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가 빠지고 개인 부담을 늘리는 방안에는 반대한다. 전 위원은 “한국은행의 제안은 개인에게 싼값으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서민 지갑을 털어 육아·간병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 좋은 방식”이라고 했다.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공적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영미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이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며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미만 지급은 국제 기준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 총재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보고서에 "공감한다"고 했다. 워싱턴 특파원단 제공·뉴스1

홍콩·싱가포르·대만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했지만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 위원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0년 넘게 논의해서 내놓은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근로시간 단축, 여성에 육아 부담을 주는 사회분위기 개선,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주거비용 해결 등”이라며 “고민 끝에 나온 정책을 발전시키거나 개선해야 하는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 출신인 전 위원은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히 겪는 당사자다. 그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자격증 보유자가 250만 명이 넘는데 현장 노동자는 60만 명에 그칠 정도로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며 “대부분의 노동자가 월급제가 아닌 시간제여서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민주노총 실태조사 결과 요양보호사 세전 임금은 171만 원으로 최저임금 월급(206만 원)보다 낮다.

최 위원은 20년 넘게 돌봄 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가사노동자 보호법 제정 운동을 벌여온 노동 운동가다. 그는 “육아와 간병 등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면 돌봄 노동이 괜찮은 일자리가 되고 당연히 사람들이 일하려 할 것”이라며 “정부가 임금을 높이고 일자리를 안정화시키는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노년알바노조, 노년유니온 등 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적용 노인 제외 고령노동자 당사자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서울시의회 의원 38명이 노인들을 최저임금법 적용 제외 대상으로 하자는 최저임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며 이를 규탄했다. 연합뉴스

이들은 최저임금을 향한 관심이 ‘1만 원 돌파’에 쏠리는 상황에도 우려를 표했다. 올해 최저임금 9,860원에서 140원(1.4%)만 올라도 1만 원을 넘는다. 전 위원은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해 노동자 실질 임금은 하락했다”며 “내년 최저임금은 물가 인상률을 반영해야 할 뿐 아니라,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줄일 정도가 돼야 한다”고 했다. 최 위원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당장 최저임금 적용이 어렵다면 최임위에서 ‘최소한 이 정도는 줘야 한다’는 권고안이라도 내야 한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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