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 뭐길래… 대구시-시민단체의 ‘동상이몽’

명민준 기자 2024. 4. 2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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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박정희 동상 건립 추진
“과거 산업화 정신 재조명 목적”
시민단체 “독재자 기념 안 돼”… 중구선 순종 황제 동상 철거 잡음
“일본 강압에 의해 대구 방문” 주장… 교통 혼잡 문제도 겹쳐 결국 철거
24일 대구 중구 대구시의회 앞에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관계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 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에서 동상을 건립하거나 철거하는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해당 인물의 역사적 평가를 놓고 시민단체와 역사학계 등의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다.

대구시는 지역의 관문으로 불리는 동대구역 광장과 대명동 대구 대표도서관 공원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과 2·28자유정신이 공존하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도시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시는 이를 위해 올해 첫 추경예산에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 관련 예산 14억5000만 원을 배정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26일 관련 조례안을 심사할 방침이며 시는 조례가 제정되면 전문가로 구성된 동상건립준비위원회를 출범해 올해 안에 제반 절차를 마칠 방침이다.

이를 놓고 23일 제308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가 열린 대구시의회에서는 비판 의견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육정미 의원은 “해당 사업은 공론화를 통해 여러 의견을 들어본 후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것이 순서”라며 “이런 절차가 빠진 것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독선적 행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시민단체들도 반발하고 있다. 서울과 인천, 부산, 광주 등 전국 19개 지역 운동단체 연대체인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24일 시의회 앞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 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세금으로 유신 독재자를 기념하는 정치적 목적의 조례를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앞서 22일에는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같은 장소에서 “전국의 국민, 세계의 시민이 첫발을 내딛는 관문 동대구역에 독재의 화신인 박정희의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낯이 뜨겁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이 같은 반대 의견에도 기념사업을 강행할 의지를 보이고 있어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홍 시장은 “대구는 제2의 산업화 시대를 열어가야 하며 과거의 자랑스러운 역사 재조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산업화의 상징인 대구가 박정희 기념사업을 당당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2일 대구 중구 달성공원 앞에 설치돼 있던 순종 황제 동상이 철거되고 있다. 뉴스1
대구 중구에서는 순종 황제 동상 철거 문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중구는 최근 공공조형물심의위원회를 열고 달성공원 정문 앞 순종 황제 동상과 안내 비석 등을 철거하고 보행섬 등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중구는 앞서 2013∼2017년 도시활력증진사업으로 수창동∼인교동으로 이어지는 2.1km 구간에 어가길을 조성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1909년 1월 남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것을 재현한 테마거리로 구국·항일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순종의 남순행이 당시 일제가 반일 감정을 무마하기 위해 순종을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어가길과 동상에 대한 반발 기류가 형성됐다. 게다가 주변 교통 혼잡 문제까지 불거져 어가길을 다시 없애 달라는 주민들과 상인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결국 철거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역사학계와 순종 황제 동생 의친왕의 후손들은 중구에 “동상을 철거하더라도 폐기하지 말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의친왕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중구와 관련 논의가 오가던 차에 22일 저녁에 동상의 발목을 자르고 갑자기 철거해버렸다. 남은 조형물이라도 조선왕릉 유릉 등에 모실 수 있도록 보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구 관계자는 “해당 구간에 교통량이 많아 비교적 차량 통행량이 적은 저녁 시간에 철거한 것이다. 업체 계약 문제도 있어 공사를 미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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