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저 편 음악감상실, MZ 놀이터 되다

정인덕 기자 2024. 4.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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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한다. 유행하는 옷차림부터, 음식, 공간까지도 시간에 따라 사그라졌다 다시 탄생하길 반복한다. 많은 것이 변하지만 음악을 향유하는 방법 만큼 크게 바뀐 것이 있을까.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부산을 포함한 전국에서 음악감상실이 유행했다고 한다. 음악을 듣고 싶다면 카세트 테이프나, LP 등 실물 음반이 있어야 했는데 모든 곡을 소유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젊은이들은 광복동의 ‘무아(無我)’나 ‘필하모니’ 등 유명한 음악감상실에 모여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24년, 휴대폰에서 터치 한 번 만으로 세상의 모든 곡을 들을 수 있는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든 모습들이다.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듣고 싶은 곡을 편리하게 들을 수 있는 지금, 다시금 음악감상실이 부산에 생겨난다. 이전처럼 DJ가 사연을 읽어주며 음악을 재생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차분히 자신의 취향에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이 주’가 되는 공간들이다. 방문자의 입소문으로 이미 누군가의 소중한 ‘애착공간’이 되어 버린 공간 두 곳을 소개한다.

‘잔향실’에서 방문객이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최근 이곳은 다른 지역의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부산의 ‘숨은 핫플’로 부상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전포동 ‘잔향실’

- DJ에게 전하는 나만의 신청곡

잔향실은 부산에서 가장 젊은이가 많이 찾는 전포동에 자리해 있다. 전포동은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최근 새로운 가게가 생겨나고 있는 동성초 인근에 있다.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좁지만 깔끔하고 현대적인 건물의 4층 꼭대기에서 잔향실을 만날 수 있다.

꼬불꼬불한 계단 끝에서 만난 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영화관에 온 듯한 차분한 공간이 펼쳐진다. 파란색으로 물든 카펫이 바닥을 채우고, 원목을 자재로 한 타공판과 뻥 뚫린 통유리가 사방을 둘러싼다. 좁은 공간을 개방감 있고 따뜻한 분위기로 바꿔낸다. 진한 갈색으로 만들어진 푹신한 1·2인용 소파 6개가 2열로 나란히 줄지어 프랑스 포칼(Focal) 사의 스피커를 바라보고 있다. 스피커 위에 자리한 포스터는 계절에 따라 바뀌어 시점마다 공간 분위기를 좌우한다.

이곳은 배치된 종이에 신청곡을 적어 DJ에게 전달하면 방문객의 곡을 차례로 재생해 주는 단순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장르나 곡의 개수에 제한은 없다.

방문객 이유진(여·27) 씨는 “잔향실의 매력은 서로의 취향을 공유한다는 점에 있다. 신청한 곡이 여러 명이 함께 있는 공간에 크게 틀어지는 순간 마치 라디오에 보낸 사연과 신청곡이 울려 퍼지는 듯한 민망함 또는 반가움을 느낄 수 있다”며 “직접 경험해 보진 않았지만, 과거의 음악감상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신청한 음악도 들으며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2022년 12월 15일 운영을 시작했다. 북적북적한 전포동에서 차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공간을 열었다. 이름은 잔향실을 디자인하며 영향을 받았던 동명의 한 음악공간에서 차용했다. 잔향실 관계자는 “음원 원본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도록 HIFI 음원 장치를 사용한다. 시중에 워낙 고가 장비가 많아 최고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일반인이 감상하기엔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며 “평소 자주 듣던 곡이 잔향실에서 어떻게 다르게 들리는지 비교하면 더 즐겁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1인 9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통상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자리가 비었을 땐 방문예약도 가능하다. 음료는 필수로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거나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뮤직컴플렉스 서울 부산점

- 1인당 1LP…취향껏 듣자

‘뮤직컴플렉스 서울’ 부산점에서 방문객이 헤드폰을 끼고 LP 음악을 듣고 있다. 박재욱·김해수 독자 제공


잔향실이 음악을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 ‘뮤직컴플렉스 서울’ 부산점에서는 자신의 취향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테이블당 1개의 턴테이블이 배치돼 원하는 곡을 LP로 들을 수 있다.

뮤직컴플렉스는 부산도시철도 오시리아역 인근 복합문화공간 미식일상 1층에 자리한다. 이곳은 신도시 속에 만들어진 장소답게 화려한 공연장 같은 모습이다. 1층과 2층을 합해 826㎡(250여 평)가량 공간에는 넓게 펼쳐진 무대를 바라보고 70여 개 테이블이 배치돼 있다. 각각 테이블 위에는 LP 플레이어와 헤드폰이 설치됐다. 2층은 공연장으로 꾸며진다. 강렬한 붉은 조명에 비치는 검정색 소품들은 정돈된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곳은 처음 입장할 때 음료 1잔만 구매하면 원하는 시간 동안 원하는 곡을 감상할 수 있다. 매장에는 재즈와 팝, 록, 한국음악 등 장르를 망라한 총 1만여 장의 LP앨범이 있는데, 판매용을 제외하면 모두 들을 수 있다. 방문객 김민주(여·28) 씨는 “음악 앨범을 실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LP앨범에 들어있는 설명도 읽어보고, LP판을 직접 만져보고 플레이어에 재생까지 해보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며 “1곡씩 음악을 소비하므로 전체 앨범을 들을 기회가 적은데, 앨범단위로 감상하게 되니 몰랐던 곡을 알게 된다. 아날로그 특유의 음질을 느껴볼 수 있는 매력도 있다”고 말했다.

공간은 지난해 12월 1일 문을 열었다. 2022년 서울 인사동에 처음 개장한 이후 큰 인기를 얻어 2호점을 개점했다. 이름에는 음악을 이용한 다양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뮤직컴플렉스 서울 부산점 관계자는 “테이블에 설치된 음향기기가 각각 다르다. 음질은 앰프와 헤드폰 턴테이블 케이블 중 하나만 바뀌어도 차이가 있다. 한 앨범을 여러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자랑거리”라며 “계속 LP를 모아가고 있다. 대중적으로 많이 찾는 곡으로 먼저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입장할 때 구매하는 음료는 모두 2만 원이다. 매주 토요일 2층 공연장에서는 음악 공연이 열린다. 이용객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지금은 재즈 장르로 시작하지만 로컬 밴드등 지역 예술가와 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 왜 유행인가

- 힙스터 다 모이는 음악감상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요인으로 음악감상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말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흥행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음악을 매개로 젊은이가 모이는 공간은 항상 존재했다”며 “복고 열풍이 불어오는 만큼 과거의 문화가 다시 주목받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종의 체험소비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사람들은 블루투스 등 음향기술이 발전하며 사람들은 신기술에 흥미를 느껴왔다. 하지만 기술이 고점에 다다른 만큼 실증을 느끼고 다시 아날로그한 음악감상 공간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며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과 새로운 공간에서 조명과 장비 등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은 분위기나 기분에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집에서 고독을 피하고자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군중속의 고독’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이런 경향도 투영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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