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빌리 워커 인터뷰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4. 4. 2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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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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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글랜알라키 마스터 디스틸러 빌리 워커. 2024.4.23 /김지호 기자

망해가거나, 망한 증류소를 인수해서 부활시키는 게 ‘취미’인 인물이 있습니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빌리 워커 이야기입니다. 벤리악, 글렌드로낙, 글렌글라사 등 이름만 들어도 굵직한 증류소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갔습니다. 그가 손만 대면 죽어가던 유령증류소도 마법처럼 살아났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뀌었습니다.

1945년 스카치의 본고장 덤바튼에서 나고 자란 빌리는 어릴 때부터 위스키 산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1967년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전공한 화학은 훗날 위스키의 풍미와 블렌딩 기술의 근간을 구축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빌리의 여정은 1972년 발렌타인을 시작으로 히람 워커 앤 선즈(Hiram Walker & Sons), 인버 하우스(Inver House)와 번 스튜어트 사(Burn Stewart Distillers)로 이어졌습니다. 2004에는 벤리악 디스틸러리 컴퍼니(BenRiach Distillery Company)를 설립했으며 벤리악(BenRiach), 글랜드로낙(GlenDronach) 및 글랜글라사(Glenglassaugh)의 3개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를 인수해 운영했습니다. 빌리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시점이죠. 500만 파운드에 인수됐던 이름조차 낯설었던 증류소들은 빌리의 손에서 재탄생했고 2016년 2억 8500만 파운드로 브라운 포맨 그룹에 매각됩니다. 한화로 약 4300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그의 은퇴를 예상했지만, 2017년 글랜알라키(GlenAllachie) 증류소를 인수하면서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스카치 업계에 몸담은 지 어느덧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빌리 워커는 현재 글랜알라키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입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위스키 생각만 합니다. 올해 나이 80을 앞둔 그의 열정은 여전히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지난 23일, 10년 만에 한국을 재방문한 빌리 워커를 여의도에서 만났습니다.

◇스카치 업계를 대표하는 장인이자 성공한 사업가 빌리 워커.

스코틀랜드 글랜알라키 증류소 모습. 2024.2.24 /김지호 기자

-글랜알라키 증류소의 냉각수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는 빌리 덕(Billy Duck: 빌리 워커의 오리)들과는 이미 안면을 텄어요. 아쉽게도 그날 현장에는 안 계셨던 거 같았어요. 이렇게 한국에서 만나 뵙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이 궁금합니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글랜알라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래서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10년 전에는 한국을 1년에 4번씩 방문하기도 했어요. 한국은 스카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였어요. 이번 방문을 통해서 한국 위스키 시장의 흐름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코틀랜드인이에요.

아직 잠깐은요. (웃음)

-업계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어요. 빌리 워커에게 위스키란?

저는 51년 동안 위스키를 마셔왔어요. 위스키는 제 인생이나 다름없어요. 인생의 70%는 위스키와 함께였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혹시 생애 첫 위스키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발렌타인 21년이었어요. 부끄럽지만 제 나이 15살 때였어요. 아버지의 술장에서 꺼낸 술이었죠.

-딘스톤, 토버모리, 벤리악, 글렌드로낙 등. 당시 망하거나 이름 없는 증류소들을 전부 부활시키셨어요. 어떤 기준으로 증류소들을 선택했는지. 해당 증류소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었을까요?

일단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는 증류소를 골랐어요. 역사적으로도 소외된 곳들. 이미 유명해진 곳들은 다른 사람의 개성이 스며 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죠. 빈 도화지에 새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들을 찾았어요. 증류소를 고른 후에는 위스키의 재고 상태를 확인했어요. 저숙성부터 고숙성 위스키까지. 전체적인 구성이 골고루 잘 잡힌 증류소가 필요했어요. 신제품 개발이나 장기적인 사업 계획까지 고려한 셈이죠. 전반적인 구색을 갖추기까지는 보통 6년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2016년 글렌드로낙 증류소를 매각했을 때 은퇴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새로운 증류소로 돌아왔어요. 부와 명예를 다 이뤘는데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건, 실패할 가능성에도 다시 노출된다는 거잖아요.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는 건가요?

위스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전 회사를 제 뜻대로 매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꽤 실망스러웠던 결정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공동 투자자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결국 저에게는 매듭짓지 못한 사업으로 남게 된 것이고요. 그 사이 글랜알라키 증류소를 인수할 수 있는 행운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어떤 원동력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고 있나요?

위스키 만드는 게 여전히 너무 재밌어요. 위스키의 특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나무를 이해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오크통을 굽고 태우는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풍미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화학 반응들. 예를 들어 셀룰로스 성분이 설탕 역할을 하고 타닌은 시나몬, 백두구(Cardamon), 정향(Cloves), 육두구(Nutmeg)와 같은 스파이스를 만들어 줍니다. 락톤(Lactone) 성분은 코코넛 같은 풍미를 짙게 해주죠. 다양한 맛들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고 조합하는 과정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50년 넘게 한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초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나요.

아니요,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약학 연구 화학자로 시작했어요. 4년 중 2년은 페니실린을 발효하는 데 시간을 썼어요. 페니실린을 발효하는 일은 알코올을 발효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고 지루한 일이었어요. 당시 마스터 블렌더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뒤도 안 보고 도망쳤습니다.

-곧 있으면 나이 80세를 앞두고 있어요. 평소 후각이나 미각을 섬세하게 관리하는 법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노화 과정은 미각과 후각을 무디게 해요. 그래서 중요한 시음이 있는 날은 몸과 마음이 가장 맑은 오전 시간대에 진행합니다. 보통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 공복 상태로 시음하죠. 물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오크통에 진심인 글랜알라키 증류소

-글랜알라키는 어떤 곳이었고 그곳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증류소 뒤쪽으로 벤리네스 산이 있고 앞쪽에는 스페이강이 흐르고 있어요.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루고 있는 셈이죠.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싱글몰트를 만든 적이 없었던 증류소라는 점이었어요. 완벽한 백지상태였죠. 그때부터 글랜알라키 증류소의 성격이나 DNA를 설정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증류소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80만 리터에 달하는 물량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다는 것도 중요했어요. 예전부터 설정됐던 기준값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증류소였던 것이죠.

-증류소에 남아있던 오크통 재고 관리를 어떻게 했습니까? 인수 당시 증류소 내 모든 오크통의 맛을 직접 보셨는지요.

증류소에 남아있던 위스키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정리하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4만~5만 개의 오크통을 일일이 직접 맛봐야 했던 작업이었죠. 정리와 동시에 새로운 위스키도 만들어야 했어요. 당시 증류소가 갖고 있던 캐릭터가 셰리와 가장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했어요. 그 즉시 원액을 셰리 오크통으로 옮기기 시작했어요. 이 작업만 7년이 걸렸던 셈이죠. 이제 첫 번째 고비는 어느 정도 넘긴 거 같아요. 그렇다고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에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죠.

-늘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요. 수많은 오크통을 섞으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 각 오크통이 가진 특징과 최종 결과물에 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모든 오크통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오크통의 종류에 따른 특징을 알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요. 위스키 맛의 70% 이상은 오크통이 결정해요. 제아무리 훌륭한 스피릿도 오크통 없이는 위스키가 될 수 없어요. 저희는 프랑스, 헝가리,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 오크통을 받고 있어요. 올로로소와 페드로 히메네즈는 말할 것도 없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오크통을 찾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의 미즈나라나 몽골리안, 콜롬비안, 인디언 오크. 최근 미국에서는 꽤 재밌는 친커핀 오크를 찾았어요. 아직 찾지 못한 오크는 갈리아나 오크이고 올해 찾을 계획입니다.

-오크통마다 스윗 스팟(Sweet Spot: 위스키가 가장 맛있는 순간)을 찾는 비법이 있다면?

무한한 헌신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오크통을 살피면서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초창기에 가끔 스위트 스팟을 놓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위스키는 어디까지가 과학의 영역이고 어디까지 우연인지.

위스키 블렌딩은 과학과 경험, 직감의 영역입니다. 직감을 통해 결정을 내리지만 결국 과학이 결괏값을 증명해주죠. 오크통 내부를 얼마만큼 굽고 태우느냐에 따라 위스키 맛이 바뀌는 것처럼요. 마스터 블렌더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과학이 이를 대신 설명해 줄 것입니다.

-빌리 워커 하면 셰리가 떠올라요. 언제부터 셰리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

셰리에 관한 관심은 딘스톤 증류소에서 시작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글렌드로낙 증류소에서 셰리에 대한 갈증을 풀었던 것 같아요. 글렌드로낙 증류소는 역사적으로 꾸준히 셰리 오크통을 취급해 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셰리 오크통을 올로로소, 피노 등으로 따로 분류하지 않고 단순히 셰리로 일반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글렌드로낙은 셰리 오크통에 대한 제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셰리 위스키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지점이죠.

-글랜알라키 증류소에서 숙성 중인 오크통이 몇 개인지. 그 중 셰리 오크통이 차지하는 비율이 궁금해요.

현재 16개의 숙성고에서 6만 개의 오크통이 숙성 중입니다. 그중 75%가 셰리 위스키입니다.

-피트 위스키의 특징은 저숙성에서 더 잘 나타나요. 숙성연수가 높아질수록 신사적으로 변하기 때문이죠. 보통 셰리 위스키가 가장 무르익는 시점은 언제라고 보시나요?

좋은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는 숙성연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셰리 오크통의 영향력이 점점 짙어져요. 피트 위스키의 경우 5년에서 8년 사이에 개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정점을 찍는 순간 캐릭터가 점점 온순해지죠. 위스키에서 페놀과 피트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버진 오크통은 조금 달라요. 버진 오크통의 경우 스위트 스팟이 4~5년 차에 찾아오는 거 같아요.

-셰리 외에 여러 가지 와인 오크통을 사용하고 있어요. 가끔 와인 오크통을 잘못 쓰면 되게 맵거나 좋지 않은 풍미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일단 증류소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와인 오크통을 선택해야 합니다. 와이너리들의 이름을 전부 나열하긴 어렵지만, 이탈리아 볼게리 지방의 그라타마코(Grattamacco)와 같은 와이너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굉장히 훌륭한 와이너리라고 생각해요.

와인 오크통은 위스키를 숙성할 때 내부를 불로 그을리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증류액과 오크통 간에 화학 반응이 발생하려면 상대적으로 긴 숙성 시간이 필요해요. 오크통 내부를 태워서 빠른 반응을 유도하는 오크통과는 차이가 있죠.

저희는 평소 타닌감이 너무 강한 와인은 피하는 편입니다. 보통 와인 오크통을 사용할 때는 4년 정도 외부에서 건조한 오크통을 선호합니다. 타닌감이 많이 희석된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프랑스 와인의 경우 타닌감이 상대적으로 강합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어떤 와인 오크통을 선호하시는지. 가끔 리오하 와인을 쓰시는 거 같아요.

보통 와인 오크통을 활용한 숙성은 5% 미만,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집니다. 100% 리오하 와인 오크통에서 숙성된 제품을 보실 일은 없을 거예요. 와인 오크통은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최대한 와인의 좋은 풍미만 뽑아서 쓰려고 해요. 와인 오크통이 위스키에 너무 과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인공 색소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위스키 색이 유난히 진해요. 셰리 위스키를 숙성할 때 혹시 오크통에 셰리가 남아있는 상태로 스피릿(Spirit: 증류액)을 채우시는지 궁금합니다.

스피릿을 오크통에 채우기 위해서는 안에 다른 액체가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셰리 벗(Sherry But : 500리터) 같은 큰 오크통보다는 혹스헤드(Hogshead : 250리터)처럼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시켰을 때 색이 짙게 배요. 전부 오크통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색입니다.

◇글랜알라키 10 CS(Cask Strength: 캐스크 스트렝스)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글랜알라키 마스터 디스틸러 빌리 워커. 2024.4.23 /김지호 기자

글랜알라키 10CS는 수많은 국내 알라키 팬들의 오픈런을 유도했던 위스키입니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품이죠. 알라키 10CS는 기본적으로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한 제품으로 증류소의 방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코어라인 중 하나입니다.

-가격이나 접근성적인 측면에서 10CS(Cask Strength: 캐스크 스트렝스)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숙성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입문서와도 같은 셈이죠. 알라키 증류소에서 10CS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앞으로 몇 배치까지 출시할 예정인지.

현재의 배치가 이전 배치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제품입니다. 저희가 만드는 주력 상품 중 하나죠. 10년이면 나쁘지 않은 숙성연수입니다. 항상 엄선된 양질의 셰리 오크통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5배치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상큼한 포도와 진한 밀크초콜릿 맛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에서 알라키 열풍을 일으킨 배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배치를 거듭할수록 부정적인 평가가 늘어나고 있어요. 가격은 오르는데 맛은 떨어진다는 평이 많아요. 이러한 시장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보통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악평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반면 긍정적인 사람들은 꾸준히 새로운 위스키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면서 즐기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악평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10CS를 만들 때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양한 오크통을 통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역할은 모든 오크통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예를 들면 페드로 히메네스, 올로로소, 아메리칸 버진 오크와 와인 오크통을 조합한 제품을 마신다고 가정해볼게요. 페드로 히메네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체리와 같은 달콤한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올로로소는 모카, 다크초콜릿, 건포도 같은 맛 부각해 줍니다. 버진오크는 바닐라, 꿀과 같은 노트를 증폭시켜 주죠. 와인 오크통은 타닌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유 없는 조합은 없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아직 과소평가 돼 있다고 생각하는 증류소나 브랜드가 있는지요. 여기만큼은 제대로 한번 살려보고 싶다.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대답하겠습니다. 만약 그 기회가 찾아온다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증류소가 있습니다. 공론화 시키는 순간 그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어서 말을 아끼겠습니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는 안 보이는 서명 같은 게 있어요. 피카소나 고흐처럼 그림체만 봐도 누군지 알 수가 있는 것처럼요. 소비자들이 당신의 위스키를 마셨을 때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블렌더가 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저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제 헌신을 그렇게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좋은 원액이 전부 소진되면 증류소를 팔고 또 다른 곳으로 옮길 것으로 예측해요.

글랜알라키 증류소는 제 야망의 결과물입니다. 7년에 걸쳐서 겨우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첫 번째 스테이지를 끝낸 셈이죠. 제 목표는 스페이사이드 최고의 증류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팀원들은 본인들이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글랜알라키 피트 라인은 미클토어(Meikle Toir)로 계속 가는 것인지.

네, 미클토어로 계속 갑니다. 아일라 피트와 메인랜드 피트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미클토어에서의 최종 목표는 페놀의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병원스럽지 않은 제품을 내놓는 것입니다. 시장조사 결과 요오드나 병원향이 과하게 들어가지 않은 피트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판단했어요. 아일라에서 나오는 해양퇴적물보다는 나무나 식물 등의 분해로 만들어진 메인랜드 피트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메인랜드의 피트는 아일라섬의 피트에 비해 단맛이 더 강합니다.

그렇다고 피트가 너무 약한 것은 원치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페놀 수치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중류 를 찾아서 60~65ppm 정도의 스피릿을 활용합니다. 절대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평소 데일리로 마시고 있는 위스키는.

위스키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매일 위스키를 마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 마신다고 한다면 글랜알라키 15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글랜알라키 마스터 디스틸러 빌리 워커. 2024.4.23 /김지호 기자

-후계자에 대해서 생각해보셨나요? 증류소의 다음 마스터 디스틸러.

아직 안정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아들이 했으면 좋겠지만, 이미 본인만의 위스키 사업을 즐기고 있어서 뜻대로 될 거 같진 않습니다. 아직은 현역으로 증류소에 남고 싶습니다.

-한국 위스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틀에 걸쳐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한국인들이 가진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위스키 시장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보고 있어요. 이들이 나아가 위스키 시장을 주도하고 또 글랜알라키를 대표하는 소비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을 마시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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