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노동자의 친구’ 남현섭 기리는 기금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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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노동자의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잊고 싶지 않은 분이어서 그렇다. 요즘은 노무사가 많아져서 (남 전 국장이 일했던) 산재노협 일이 줄었지만, 그들이 산재 피해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움직였던 그런 역사는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재단이 산재 노동자 여러 사람을 지원해왔다. 그걸 보고 우리도 돈만 받는 게 아니라 작은 돈이라도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아름다운재단이 산재 피해자들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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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21]
‘산업재해 노동자의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동시에 산재 피해자이기도 했다. 25살 때인 1992년 공장에서 손가락 4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일터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복잡한 장애등급 판정 등을 받은 경험적 지식을 활용해 2001년부터 서울과 인천의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산재노협)에서 상담부장과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산재 노동자들을 도왔다. 그러다 다시 생계를 위해 입사한 한 폐스티로폼 파쇄공장에서 2016년 3월29일 상반신 압착사고를 당해 숨졌다. 그의 이름은 남현섭이다.
그가 사망한 지 8년 만에 그를 기리는 ‘남현섭 기금’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금 조성을 추진하는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알리다
—먼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묻고 싶다.“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을 계기로 1999년 만들어진 연구소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화학물질이나 반복적인 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연구를 한다. 화학물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분석실도 갖추고 있다.”
—연구소에서 2021년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포도밭출판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2019년 연구소가 생긴 지 20주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우리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봤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온 일은 이름이 없던 질환에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이름을 붙이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그 고통이 함께 노력하면 없앨 수 있는 것임을 알릴 수 있게 책을 써보자고 했고, 그래서 쓰게 됐다.”
—이 책 인세 500만원으로 아름다운재단에 남현섭 전 사무국장을 기억하는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고 들었다.“남 전 국장은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분이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서울 구로공단 근처 병원에 가면 자신이 공장에서 다쳤는데 산재인지 모르는 분이 많았다. 남 전 국장은 피해 당사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선생님 산재니까 보상 신청할 수 있다’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일깨워주던 그런 분이었다. 2000년대 초반 산재를 통해서 남 전 국장과 만났고 큰 공감대를 이뤘다. 그래서 산재노협, 인천산재노협, 건강한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에 있는 남현섭을 기억하는 활동가들과 고민을 나눴고, 의기투합해서 씨앗기금을 만들었다.”
잊지 않으려, 고통 함께 줄이려
—남현섭 기금을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가.“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잊고 싶지 않은 분이어서 그렇다. 요즘은 노무사가 많아져서 (남 전 국장이 일했던) 산재노협 일이 줄었지만, 그들이 산재 피해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움직였던 그런 역사는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재단이 산재 노동자 여러 사람을 지원해왔다. 그걸 보고 우리도 돈만 받는 게 아니라 작은 돈이라도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아름다운재단이 산재 피해자들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금은 어떻게 활용하나.“아직은 모른다. 그때그때마다 가장 기금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있을 것 같다. 목적 기금이 아니어서 아름다운재단이 산재 피해자들과 건강권 운동을 하는 분들을 위해 스스로 주제를 발굴해내실 거라고 생각한다. 2024년 4월24일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재단에서 기금 조성을 축하하는 자리가 예정돼 있다.”
—<한겨레21>을 포함한 언론에 하고픈 말은.“많은 분들이 아름다운재단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이 진행될 수 있게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한겨레21>을 비롯한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다뤄주시면 좋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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