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응원의 외주화
겨우내 체중이 3㎏ 불었다. 처음엔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이 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동그래진 것을 보고는 단순히 살이 찐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도 절제의 기회는 있었다. 올 초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착용하고 실험해볼 일이 있었다. 음식별로 달리 튀는 혈당 스파이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게 맞는 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었다. 강력한 변수라 할 수 있는 우리집 냉동실은 맛집 그대로의 풍미를 재현한 떡볶이와 리소토, 해장국으로 차 있었고, 나는 이 재고의 양만큼 부지런히 포동포동해졌다.
20여년 축적된 다이어트 노하우를 총동원한 답은 이렇다. 저녁 8시 넘어서는 맥주도 입에 대지 않는다. 달고 짠 음식은 피한다. 버터가 들어간 빵, 특히 크루아상은 일주일에 한 개만 먹는다. 음식물 섭취 뒤에는 절대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나를 혹사시키지 않으면 체중 감량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이대로는 최근 앓는 발 관절 통증도 이겨낼 수가 없다. 여기까지가 내가 스스로에게 불어넣는 설득의 논리다. 이런 맛깔나는 논리는 챗GPT도 쉽사리 만들 수가 없다. 이렇게 답할 따름이다. “체중이 조금 늘었군요! 간단한 팁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규칙적인 운동, 식사 관리, 충분한 수분 섭취, 적절한 수면.”
인공지능의 대답이 신통치 않은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될 것이다. 일단 위에서 보듯, 나에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문제 해결 방법을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설령 그 방법이 잘못됐을지언정 나라는 개인에겐 가장 효과적이다. 내가 정말 답을 몰라 챗봇에 묻는다 할지라도, 나라는 개인의 모든 내러티브를 지표화해 알고리즘에 넣는다는 건 영 어렵다. 개인맞춤형 답변에 이르는 길이 퍽 먼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챗봇이 빼어난 언변으로 나를 설득해 완벽한 해결책을 준다 해도, 우리 엄마처럼 내 행동을 제어하긴 힘들다. 스마트폰 스스로 내가 배달 앱과 마트 앱에 들어가는 걸 막는 날이라도 온다면, 스마트폰 업체와 해당 회사 간 소송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개인화 헬스케어 앱 회사들은 사용자가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움직이도록 만드는 방법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꾸준히 데이터를 모아 때마다 조언을 던져주고, 적절한 식단을 짜서 배송도 해준다. 주변에 함께 운동할 사람들을 찾아주고, 관리 잘하고 있다고 틈틈이 토닥여주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용자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사용자들은 친구들과의 술 약속, 인스타그램의 맛집 피드, “대충 살자”는 메시지가 담긴 쇼트폼 같은 유혹에 쉬이 꺾인다. 명약이 있어도 먹지 않으면 효과가 없듯, 헬스케어 앱들은 정답을 쥔 채 사용자들을 움직일 방법으로 고심한다.
여러 난관에도, 개인적으로 헬스케어 서비스들을 응원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에게는 잘하든 못하든, 더 나은 행동을 독려하고 함께 완주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에 지친 개인들이, 결코 지칠 리 없는 기계에 나를 응원해달라고 외주를 주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개인을 정말 잘 구슬려 기어이 건강하게 살도록 돕는 서비스들이 나와서, 힘을 팍팍 받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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