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K] 4·3 폭발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최초 보고서’ 뒷이야기

안서연 2024. 4. 2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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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KBS는 그동안 4·3 당시 군경이 방치한 폭발물로 희생된 어린이들을 발굴해 연속 보도해드렸는데요.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서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 기자, 4·3 폭발사고 최초 보고서였죠.

기존에 알려졌던 표선국민학교 폭발사고 이외에 또 다른 폭발사고 희생자들을 새롭게 알게 됐는데요.

이 사고들을 파고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답변]

네, 올해 1월이었죠.

4·3특별법에 명시된 4·3기간을 2년 가까이 지나 폭발사고로 숨진 어린이 2명이 희생자로 결정됐습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희생자 결정만 기다리던 고령 유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해드린 적 있는데요.

이들이 결국 4·3 희생자로 결정된 이후, 폭발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이 과연 이들뿐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취재해보니, 군경이 주둔했던 해안마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폭발사고가 더 있었다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앵커]

서귀포 표선초등학교, 그러니까 당시엔 표선국민학교였죠.

이곳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는 이미 알려졌었잖아요?

[답변]

네, 맞습니다.

1950년 7월 표선국민학교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어린이 30여 명 희생됐단 얘기는 학교 위령탑에도 쓰여 있는데요.

유일하게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된 폭발사고입니다.

취재진은 어떻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됐는지 주목했는데요.

65년 만인 2015년 사건을 공론화시킨 건 형제를 잃은 동생들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형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목격자들을 찾아가 진술을 듣고, 제적부까지 확인하며 또 다른 유족들을 찾아 사건을 공론화시킨 겁니다.

취재진 역시 수소문 끝에 충북 청주에 사는 당시 목격자를 만나 폭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

과거 서귀국민학교였던 서귀포초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시기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해 보도했는데,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거죠?

[답변]

네, 맞습니다.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보면 학생 희생자 명단에 서귀국민학교 서근숙이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학교에서 폭발물로 인해 후유장애를 갖게 됐다며 본인이 신고한 건데요.

피해 장소가 학교인 만큼 희생자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은 일단 서근숙 할머니를 찾아가봤습니다.

서 할머니는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76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사고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는데요.

서 할머니에 따르면 1949년 3월 개학날 운동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28명이 다치고 5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파편에 맞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서 할머니는 자신이 희생자로 인정되자, 숨진 친구인 고 김춘강의 가족에게 연락했다고 합니다.

고 김춘강의 큰언니는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사고 당시 기억을 털어놨는데요.

교실 바닥에 뚫려있는 구멍에 9연대가 폭발물을 넣어놨고, 아이들이 이걸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 참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실제 취재진이 확보한 당시 생활기록부에는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생활기록부를 뒤져본다면 또 다른 희생자들을 찾아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앵커]

이뿐만이 아니었죠.

북촌국민학교 인근에서도 폭발사고로 어린이들이 숨졌다면서요?

[답변]

네, 안타깝게도 폭발사고 피해는 더 있었습니다.

북촌국민학교에서는 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는데요.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순경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수류탄을 갖고 놀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순경 놀이를 하고, 갖고 놀던 장난감이 하필 수류탄이었단 점에서 공포스러웠던 당시를 떠올려볼 수 있는데요.

이 수류탄이 터지면서 6살, 7살 난 어린이 두 명이 숨지고 2명은 한쪽 눈이 실명되는 등 후유장애를 갖게 됐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숨진 고 황태석의 유족이 지난해 희생자 신청을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고 황태석의 죽음을 목격한 생존자는 70여 년간 살아남은 미안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당시 사고를 털어놨는데요.

또 다른 피해자들도 희생자로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앵커]

폭발사고 피해를 뒤늦게 털어놓는 분이 또 있었죠?

이분 역시 북촌국민학교 인근에서 수류탄을 주웠다면서요?

[답변]

네, 앞서 말씀드렸던 북촌국민학교 인근 폭발사고를 취재하면서 4·3북촌유족회장님을 뵙게 됐는데요.

이분과 얘기하던 중 폭발사고 피해가 또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든셋의 원홍택 할아버지의 사연이었는데요.

원 할아버지는 북촌국민학교 집단 학살 당시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돼 보육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학교 언저리를 맴돌던 원 할아버지는 수류탄 하나를 줍게 됐는데요.

이걸 갖고 보육원에서 친구와 갖고 놀다, 친구는 숨지고 원 할아버지는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원 할아버지는 여지껏 이 피해 사실을 꺼내놓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후회해봤자 소용없지 않느냐'는 할아버지 말 속에서 마음에 박힌 굳은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앞서 언급했지만, 4·3 기간을 지나 폭발사고로 숨진 어린이 희생자 2명의 유족도 만나봤죠?

이들은 어떻게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던 건가요?

[답변]

4·3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때까지인데요.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어린이 2명이 폭발사고로 숨진 건 4·3 기간이 2년 지난 1956년 5월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엔 불인정될 뻔하다 심사 보류로 재조사가 이뤄진 끝에 어렵사리 희생자로 인정받게 됐는데요.

군부대 설치 여부를 따져볼 때 4·3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어제 보도에서 보니 폭발사고로 희생된 게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더라고요.

이 사고 역시 4·3 기간을 지나 발생했던 것 같은데요.

[답변]

네, 어제 이 시간 폭발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네 자매의 사연을 전해드렸는데요.

지난해 남원 어린이 희생자 심사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4·3 기간을 지난 사례라는 이유로 불인정된 건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수소문 끝에 희생자 인정을 신청한 유족들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고 3개월 뒤인 1954년 12월 송당 민오름에 갔던 아버지가 폭발물을 밟고 숨진 사연이었습니다.

대들보였던 아버지가 숨지면서 어린 네 자매와 지적장애가 있던 어머니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는데요.

네 자매는 10년 전부터 두 차례나 아버지를 4·3희생자로 신청했지만,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초 기간이 지나도 희생자로 인정된 사례가 나온 만큼, 이 사고 역시 재심사가 필요한 부분인데요.

현재는 희생자 신청 기간이 아니다 보니 유족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사례마다 잣대가 달라선 안될텐데요.

꼭 제대로 된 조사라도 받아보면 좋겠습니다.

안 기자, 취재하면서 고생 많으셨을 텐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답변]

일각에서는 폭발물 피해가 군경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닌 만큼, 희생자로 보기 어렵단 얘기도 있는데요.

한 유족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수류탄을 아이들이 만들었겠습니까, 아니면 그 부모가 만들었겠습니까, 군인이나 경찰이 흘린 수류탄으로 꽃 같은 아이들이 희생된 거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4·3이 아니었더라면 이 아까운 생명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동안 폭발사고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지만, 더 늦기 전에 진상 조사를 통해 희생자를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앵커]

4·3이 남기고 간 또 다른 과제를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안 기자,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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